어제 배송되어 온 <아르헤리치의 말>을 밤 10시가 지나 침대에 누워 펼쳐들었다. 절반쯤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읽다보니 뒷부분이 궁금해서, 그리고 그냥 다 읽겠구나 싶어서 끝까지 다 읽었다. 그러고 나니 밤 1시- 처음에 이 책은 별 넷이었다. 그러다 뒷부분 아르헤리치의 ‘단상’이 적힌 부분들을 읽다가 별 다섯으로 올라갔다. 아침이 되어 북플을 열어보니 은오 님이 “이 시리즈 중에 뭐가 가장 좋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은오 님은 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내가 이 시리즈 중 별 다섯을 준 책 두 권(<르 귄의 말>, <아르헤리치의 말>) 중 하나이리라 추측하고는 <르 귄의 말>이 아니냐고 되물었는데.... 정답은 땡!

이 시리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이다. 자목련 님은 “별 5개와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는 나의 말에 궁금증이 생기신 것 같다. “어떻게 다를까요, 갑자기 궁금” 하고 물으신다. 그리하여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마음산책 말 시리즈에 관한 단상이자 내가 별점을 주는 기준에 관한 글이 될 것 같다.

우선 내가 이 시리즈 중 단연코 좋아하는 책은 앞서 말했듯이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이다.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되팔지 않고 갖고 있고 앞으로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이 시리 중 몇 권이나 읽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로 검색하면 총 25권이 나온다(2023년 2월 기준). 그러나 이중 특별판으로 중복되어 나온(<수잔 손택의 말>, <박완서의 말>, 그리고 이 두 권을 세트로 묶은 것) 3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22권이다. 이중 나는 14권을 읽었다. 읽은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아르헤리치의 말 - 삶이라는 축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어슐러 K. 르 귄의 말 - 상상의 세계를 쌓아 올리는 SF 거장의 글쓰기>
<보부아르의 말 - 자유로운 삶을 꿈꾼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
<뒤라스의 말 -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키키 키린의 말 - 마음을 주고받은 명배우와 명감독의 인터뷰>
<아녜스 바르다의 말 -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긴즈버그의 말 -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프리모 레비의 말 - 아우슈비츠 생존 화학자의 마지막 인터뷰>
<오에 겐자부로의 말 - 후루이 요시키치 대담>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
<헤밍웨이의 말 - 은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
<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읽지 않은 책도 나름대로 분류해보았다.

읽으려고 사둔 책
<칼 세이건의 말 -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한 인터뷰>
저자의 <코스모스>부터 읽고 보려고 일단 사두기만 했다.

앞으로 읽을 예정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 - 영화를 음악으로 기억하게 한 마에스트로의 고백>
<레비스트로스의 말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레비스트로스의 말>이나 <보르헤스의 말>도 모두 저자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봐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사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안 읽을 듯
<스필버그의 말 - 영화적 상상력에 휴머니즘을 녹여낸 거장, 일생의 인터뷰> - 영화를 보면 되지 않을까.....?
<이해인의 말 - 수도생활 50년, 좋은 삶과 관계를 위한 통찰> - 약간 뻔할 거 같은 느낌적 느낌. 너무 착한 말만할 거 같음;;
<박완서의 말 -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예전 한국 여성 작가 특유의 답답한 세계관을 마주할 거 같아서 굳이.....
<파스칼 키냐르의 말 - 수다쟁이 고독자의 인터뷰>- 키냐르 안 좋아함
<코넌 도일의 말 - 셜록 홈스의 작가, 베일 너머의 삶에 관한 인터뷰>- 노관심

위와 같은데, 읽은 책 14권의 별점은 별 넷이 가장 많다. 별 다섯은 유일하게 <아르헤리치의 말>과 <르 귄의 말> 두 권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모두에게 권하느냐! 하면 그건 좀 다른 문제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마음산책 ‘말’시리즈는 인터뷰집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생애나 작품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한 채 집어 들고 읽으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질 때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시리즈 중에서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이다. 이 책은 굉장히 좋았다. 내가 읽은 것으로만 친다면 별 다섯이다. 그런데 왜 별 넷을 주었는가! 하면- 결국 이 인터뷰집은 아녜스 바르다의 생애나 그의 작품, 프랑스 영화계 누벨바그 등을 알지 못한 채 읽는다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고 현타가 올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영화광이고, 그중에서도 프랑스 누벨바그에 관심이 있거나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게다가 이 책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쓰였기에 여성주의 관점의 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분명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것이다. 같은 의미로 <키키 키린의 말>도 내 마음속에서는 별 다섯이지만 일본 영화계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과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 재미와 감동을 못 느낄 것이다.

내가 이 시리즈에 별점이 좀 야박한 이유는 ‘인터뷰집’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이 말 시리즈는 한껏 기대에 차서 펼쳤다가 에이, 고작 이런 내용이야? 하고 실망할 때가 잦은데 전적으로 그것은 인터뷰어의 능력 때문인 경우가 많다. 좋은 인터뷰를 하려면 인터뷰어의 질문이 좋아야 한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질문을 던질 그 대상에 대해 아주 잘 알아야 한다. 예컨대 알라딘 서재 이웃 중에서 누군가 나를 인터뷰하러 온다고 가정해보자. 현시점에서 아마도 내게 가장 좋은 질문을 할 인터뷰어는 공쟝쟝이 아닐까 싶다. 다부장님도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 인간이 인터뷰하러 오면 왠지 질문은 접고 소주 네댓 병 나눠 마시고 헤롱헤롱 안녕~ 헤어질 거 같다. 은오 님은 인터뷰 하러 온 본분은 잊고 아마 계속 결혼해달라고 조르다 결국 거절당한 채 울며 집으로 돌아가서는 아, 내가 오늘 잠자냥 인터뷰 하러 갔었지! 이런 쓸 내용이 없네! 뒤늦게 땅을 칠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정희진 쌤의 강연에서 강의 끝 무렵에 질의응답 시간을 아주 짧게 가졌는데, 어떤 분이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분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질문을 했다. 아마도 그분은 이제 정희진 월드로 발을 디딘 분인 것 같은데, 그분이 질문을 하자마자 그곳에 있던 다른 청중들-정희진 만랩쯤 되는 청중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답했다. “정찬!”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정희진 만랩팬이라면 아마도 이 답에 대한 질문과 어떤 맥락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까지 알 것이다. 그렇다. 좋은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그 대상에 관해 잘 알아야 한다. 최근 읽은 책 중 이런 기준에서 모범사례를 꼽으라면 아쉽게도 ‘말’ 시리즈는 아니고 도나 해러웨이와 그의 제자 니콜스 구디브의 대담을 엮은 <한 장의 잎사귀처럼>을 꼽겠다. 구디브가 해러웨이의 제자이다 보니 그녀를 잘 알아서 그런지 질문이 정말 해박하고 좋다. 질문의 깊이가 남다르니 좋은 답변이 나오고 대화가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이 시리즈 중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특히 <오에 겐자부로의 말>, <프리모 레비의 말>이 심했다. 그 책들은 아니 이런 작가들을 앞에 두고 이따위 질문밖에 못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전 손택의 말>도 그런 의미에서는 굳이 이 시리즈를 읽으라고 추천하게 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후 출판사에서 나온 손택의 일기와 노트 시리즈(<다시 태어나다>,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를 읽거나 글항아리에서 출간한 손택 평전 <수전 손택-영혼과 매혹>을 읽는 편이 훨씬 깊고 풍부하게 손택에 관해 알 수 있다. 당신이 손택 팬이라서 이 책도 갖고 있고 싶다!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내가 그래서 샀다. 말 시리즈 대부분은 읽고 빨리 되파는데 이 책은 그래서 갖고 있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이런 기준에서 별 다섯을 주기엔 좀 무리였다. 내게 별 다섯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누구나 꼭! 읽으면 좋겠다에 방점을 둔 ‘적극 추천’의 개념이다. 그러니까 자우메 카브레, <나는 고백한다>처럼 올타임 넘버원에 속할만한 그런 책이랄까. 그런데 별 넷은 거기에서는 좀 떨어지는 개념이다. 내겐 아주 좋을 수도 있지만 당신에게도 완벽하게 좋을지는 모르겠어요(물론 모든 책에 관한 평가는 상대적이다) 하지만 한번쯤 읽어보시죠. 이런 개념이랄까. 그리고 기대보다 좀 아쉽다 싶을 때도 별 넷을 준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내 마음속에서는 별 다섯이지만 누군가 이 할아버지의 세계를 더 알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에단 호크 감독의 명작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더 추천할 것 같다(나는 극장에서만 두 번 봄 -_-V). 그 영화를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영화에서 이미 접한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난 이 할배를 넘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 책도 팔지 않고 갖고 있다.

책의 내용만 보자면 별 다섯이 틀림없는데도, 어떤 나 개인적인 아쉬움 때문에 별 하나를 깎기도 한다. 이 시리즈 중에서는 <보부아르의 말>과 <긴즈버그의 말>이 그랬는데, 보부아르의 말은.... 아, 진짜 그놈의 사르트르 쉴드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별 하나 깎았고, 진짜 그러기야 보부아르! <긴즈버그의 말>은 정말이지 책 전체가 밑줄 그을 부분으로 넘치는데도 말 시리즈 전체에 대한 뭔가 살짝 아쉬운 마음 때문에 별 다섯을 결국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시리즈 중 은오 님에게 지금 당장 읽어보라고 추천한다면 <긴즈버그의 말>을 꼽겠다. 이 책은 심지어 긴즈버그에 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어도(은오 님은 있을 것 같다만) 가슴 뜨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시리즈 중 유일하게 별 다섯을 준  <아르헤리치의 말>과 <르 귄의 말>은 일단 이 두 사람이 해당 업계(?)에선 매우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 이들의 인터뷰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고(<아녜스 바르다의 말>처럼), 인터뷰어도 나름 준비를 많이 했으며(<아르헤리치의 말>의 인터뷰어 ‘올리비에 벨라미’는 아르헤리치의 전기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쓰기도 했다. 물론 약간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심지어 역자들도 해당 작가나 예술가에 관한 이해가 폭넓어서(특히 <르 귄의 말>을 우리말로 옮긴 ‘이수현’ 번역가) 한결 풍요로운 독서를 할 수 있다. 특히 <아르헤리치의 말>은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뒷부분에 아르헤리치의 단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난 그 부분이 더 좋았다(이 책은 곧 따로 리뷰 쓸 예정).

<오에 겐자부로의 말>, <프리모 레비의 말>, <헤밍웨이의 말>은 기대보다 못해서!! 실망이 커서!! 별 셋을 줬다. 이 경우 책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을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 이라는 의미이다. <헤밍웨이의 말>에는 100자평에 ‘인터뷰를 싫어하는 헤밍웨이인지라 내용이 조금 부실하다. 각 인터뷰마다 헤밍웨이는 인터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러다 보니 인터뷰하러 간 기자들이 펼쳐놓는 헤밍웨이에 대한 인상 비평이나 단상이 더 강한 느낌’이라고 남겼더라. ‘말 시리즈’중엔 인터뷰 자체를 싫어하는 예술가들이 여럿 있다. 그때 그 사람을 어떻게 무장해제하는지도 인터뷰어의 능력인데 그런 점에서 <아르헤리치의 말>은 성공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 아무튼 이야기가 넘나 길어졌다.



자냥오별- (자냥이 보기엔) 완벽하다. 당신도, 당신도 꼭 읽어보시라.
자냥사별- (자냥의 마음속으론 별 다섯일 수 있지만 당신에게도 그럴지는 장담 못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읽어보시라.
자냥삼별- (자냥은 기대하고 읽었는데 실망했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다) 선택은 역시 당신의 몫
자냥이별- (자냥은 이 책을 읽어서 시간이 넘나 아깝다) 당신은 굳이?
자냥일별- (자냥은 이 책을 읽어서 돈도 시간도 넘나넘나 아깝다. 속았다!) 당신도 다른 책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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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2-12 18:12   좋아요 0 | URL
제가 안 읽은 것을 읽으셨군요. ㅎㅎ

dodohw 2023-02-13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리스트 너무 재밌게 보고갑니다. 저도 구매하러 갑니다!!

잠자냥 2023-02-13 12:41   좋아요 0 | URL
재미나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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