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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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좋아하게 되는 책이 있다.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이 온통 마음을 휘어잡을 때도 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10대 레즈비언 소녀의 성장담이라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어느 날,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정체성을 깨달으며 고민하고 방황하고, 상처받고 그러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 가는 그런 과정…….

<사라지지 않는 여름>도 그런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런데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 작품은 90년대를 배경으로 그 시절의 문화와 그때 10대였던 아이들의 마음, 생각, 행동, 말투 등이 놀랍도록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진다. 주인공 캐머런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인 아이린, 린지, 콜리, 제이미, 애덤, 제인, 마크, 에린 등등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옆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이 아이들은 ‘제이미’ 정도만 빼고는 다들 캐머런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남과 다른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상처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맞서 싸우려 한다. 심지어 ‘콜리’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콜리는 아주 먼 후일, 캐머런과 함께 보낸 그 여름을 떠올리며 사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록 부모님과 강압적인 오빠 등등 주위 상황 때문에 자신의 다이크 기질, 아니 양성애 기질을 완전히 잠재우고, 세상에서 기대하는 ‘예쁜 이성애자 여성’으로 살아가게 될 지라도, 그 여름을 쉽게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풋풋한 사랑과 이제 막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호기심, 열정, 장난기 섞인 대화들이 줄곧 귓가에서 머문다. 마치 캐머런의 그 여름처럼.

열두 살 캐머런은 어린 시절 단짝 친구인 아이린과 어느 여름 장난처럼 첫 키스를 하게 된다. 그 첫 키스는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캐머런과 아이린은 어른들 눈을 피해 또 다시 서로의 입술을 찾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여자끼리 키스하면 안 된다고 누가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이다. 키스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며, 같은 학년 아이들도, TV에서도, 영화에서도, 세상에서도 다들 그렇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 루트 비어, 훔친 풍선껌, 도둑 키스’ 무엇보다 언제나 함께인 아이린 등등 열두 살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던 캐머런 앞에 어둠이 닥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캐머런은 ‘엄마 아빠는 우리 일을 몰라, 엄마 아빠는 몰라, 그러니까 우린 안전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아이린과의 키스가 들키지 않았다는,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에 캐머런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이 죄책감을 내내 떨쳐버리지 못한다.

할머니와 이모의 보살핌 속에 캐머런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그 사이에 장난처럼 키스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진 ‘린지’와도 연인이라기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우정을 나눈다. 린지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혁명적이며 대항문화적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또래인 캐머런보다 일찌감치 동성애 세계에 눈을 뜨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아이이다. 그리고 캐머런은 린지를 통해 ‘동성애자의 언어’와 ‘세계’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콜리’를 만나게 된다. 콜리는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아이로, 린지나 아이린처럼 성적 취향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부류이다.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남자친구도 있는데 콜리는 캐머런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다. 단지 우정일까? 혼란스러운 캐머런은 콜리를 마음에서 자꾸 내몰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나는 그냥 알맹이 없는, 실없이 웃는 아이일 뿐이라고 애써 거짓으로 꾸미면서 콜리를 멀리해도 둘은 어느덧 가까워지고 결국 이 관계는 파국을 불러온다.

아이린과의 키스를 부모님한테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두려움 많고 소심한 캐머런이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이 폭로되는 것, 그러니까 ‘아웃팅’만큼 끔찍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다. 할머니와 이모가 캐머런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극단적인 조치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기독교 캠프에 보낸다. 그곳에서 캐머런의 동성애 성향을 억누르고 정상으로 ‘바로잡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콜리로 인해 아웃팅당하고, 기독교 캠프에 끌려가면서도 캐머런은 내내 콜리의 체취를 그리워하며 콜리를 생각하고, 언제쯤 콜리 테일러를 미워할 수 있을지, 그러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자신을 아프게 했어도 도저히 미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기독교 캠프에서는 캐머런처럼 동성애 성향으로 말미암아 가족의 손에 강압적으로 끌려온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런 아이들끼리 모아두면 연애를 하라고 더 부추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캠프는 엄격한 규율과 삼엄한 감시로 그런 싹을 잘라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캠프의 교사인 리디아는 세상에 동성애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동성애는 일명 동성애자 권리 운동가들이 주입한 신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캐머런의 증상은 ‘동성매력 장애’라면서 이 장애를 캠프에서는 모두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캠프에 따르면 수영을 잘하는 캐머런에게 ‘수영이나 육상처럼 운동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환경도 동성매력 장애 증상을 부추기는 요인이란다. 어디 그뿐인가, ‘남자아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부적절하고 건강하지 못한 패턴’이나 ‘건강하지 못한 모방 욕구’, ‘여자다운 옷차림이나 스타일을 권유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함’, ‘엄마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자 못함’, ‘현실 도피를 위한 물건 훔치기’ ‘동성과의 적절한 관계 형성 능력 부족(아이린)’, ‘비밀스런 영화 보기 의식’, ‘부모님을 대체하는 루스 이모에 대한 분노=여성성에 대한 저항감’, ‘영화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집착’, ‘린지의 영향력’ 등등이 모두 동성매력 ‘장애’를 부추기는 요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원인을 제거하면 캐머런은 이성애자로 돌아서게 될까?


나는 내가 아이린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처음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았다. 아홉 살 때였다. 여덟 살이었나? 그전에는 유치원 선생님인 필딩 부인에게 반했다. 도대체 여섯 살의 나이에 나를 ‘동성매력장애로 고통 받게’ 만들 일이 뭐가 있을까. (2권 54쪽)


이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캐머런를 비롯해 이 기독교 캠프에 갇힌 아이들이 ‘동성매력 장애’라고 부르는 질병을 고쳐서 이른바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병이 아니고, 장애는 더더욱 아니며 고쳐서 정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저 캠프에서는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일을 하게 될 뿐이다. 캠프에서의 삶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삶’이며 ‘호박 속에 갇힌 선사시대 벌레의 삶’이다. ‘죽었지만 확실히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얼어붙어 유예된 상태’. 이런 상황을 캠프의 아이들, 그러니까 캐머런, 제인, 애덤, 마크, 에린 등등은 알고 있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진짜 자신을 숨긴 채 적응하는 척, 달라지는 척하면서 그 시간을 견딘다. 견디는 동안 감시의 눈을 피해 자기들만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기독교 캠프의 논리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게이나 다이크 기질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이루어지는 ‘적합한 성역할 활동’을 보면 실소가 터진다. 아니 씁쓸한 분노랄까. 남자아이들은 팀 스포츠, 낚시, 하이킹을 하고 이웃 목장을 몇 시간 도우면서 카우보이 일을 한다. 여자아이들에게 적합한 성역할 활동이란 머리를 크게 부풀린 미용사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가고, 제빵 수업을 받고, 화장법을 배우고, 인형을 가지고 와서 임심과 신생아 돌보기를 하는 것이다. 수영에 소질이 있고, 수영팀 여자아이들이 거의 모두 코치인 테드를 짝사랑할 때, ‘테드 코치처럼 되고’ 싶은 캐머런, 그래서 시합이 끝나면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고 사다리 없이 팔 힘으로 수상안전요원석에 훌쩍 올라가고 지프를 모는, ‘수상안전요원 대장’이 되고 싶은 캐머런에게 화장법이나 제빵 기술, 임신과 출산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캠프에서는 누구도 캐머런을 ‘캠’이라고 부를 수 없었는데, 리디아의 말에 따르면 이미 중성적인 이름을 더 남성적으로 들리게 하는 애칭이기 때문이다. 오마이갓! 육두문자로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캐머런, 아니 너는 캠이야. 수상안전요원 대장이 되고 싶은, 여자를 사랑하는 캠이라고!


“신앙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를 배반하는 몸을 지니는 것보다는 자기 좆을 잘라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 지옥에서 누가 어떻게 그 녀석을 구해주겠어?” (2권 187쪽)

“세상에.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2권 202쪽)


애덤의 말 그대로 이 기독교 캠프는 ‘신앙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로 10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나 성역할까지 고정하려고 들고 있다. 그러나 제인이 아는 한,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알다시피, 지금까지 치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동을 바꿀 순 있지만 감시가 없어지는 순간 다 끝”이며 “행동이 변화했다고 해서 내면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치료라는 건 없으니까.” 다들 더는 비용을 낼 수 없어서 떠나거나, 아니면 졸업해서 떠난다. 그것도 아니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든지. 이런 미래 앞에 캐머런, 아니 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소심하고 두려움 많고, 자신의 정체성을 누군가가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10대 소녀는 이토록 폭압적인 기독교 캠프에서 마침내 자기만의 길을 나아간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하기보다는 끌어안고 사랑하는 쪽으로. 수면 아래가 아닌, ‘호안선 너머, 숲 너머, 울퉁불퉁한 산 너머, 그 너머, 그 너머’ 온 세상으로 나아간다. 아마 그 세상에서는 상처받을 일이 또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린과 보낸 여름, 콜리와 보낸 여름은 사라지지도 않고, 누군가가 억지로 지워내려 한다고 지울 수도 없다. 그 여름 자체가 캠의 일부였고, 정체성 그 자체였으므로. 그 여름을 간직하고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는 캠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게 된다. 너의 여름은 찬란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찬란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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