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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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결혼과 출산율이 번번이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오늘 본 기사에서도 서울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찍었다고 한다. 부부도 아이를 낳지 않는데, 결혼조차 하지 않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이 둘은 관련 없을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비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죄악시하는 풍조 속에서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모든 점을 헤아려봤을 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결혼해봤자 자신의 삶에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오직 사랑만으로 결혼한다는 말처럼 허무맹랑한 소리도 없을 것이다. 결혼에는 많은 계산이, 돈이 오간다. 그래서 결혼도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던가. 비단 이런 풍조는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만은 아닌 것 같다. 저 19세기 사람 에밀 졸라가 살던 프랑스에서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졸라의 <결혼, 죽음>은 그 시대 결혼과 죽음에 얽힌 세태보고서와 같다.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으로 나눠 그들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과 결혼식 당일,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짤막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그런데 매 이야기가 짧다고 그냥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그런 광경을 그려내는 붓을 든 이가 누구인가, 에밀 졸라가 아닌가. 정말 졸라, 날카롭다.

귀족의 결혼을 보자. 막심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외교 쪽 업무로 나아갈 궁리를 한다. 그의 고모인 뷔시에르 후작부인은 아주 발이 넓은 노년 마님으로, 막심의 미래 설계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렇다면 결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이야말로 한자리 해먹으려면 꼭 필요한 토대’라면서. 아, 이 얼마나 솔직한 말인가. 고모는 마당발을 이용해서 적당한 후보를 찾아 막심의 눈앞에 들이댄다. 막심은 묻는다. “금발이지요?” 그의 질문에 고모는 말한다. “아니 갈색일걸, 사실 나도 정확히 모르겠구나.” 뭐 어쨌든 그게 무슨 대수인가, 확실한 것은 신붓감이 열아홉 살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집안도 좋고 지참금도 어마어마한데, 금발이든 흑발이든 빨강머리든 무슨 상관이랴! 결혼하기까지 그들은 딱 다섯 번 만난다. 그동안 막심이 신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통통한 편이고 피부가 하얗고, 음악을 좋아하고 남자 향수를 싫어하는 듯했으며 클레르라는 이름의 죽은 친구가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쯤이면 충분하다. 집안이 좋은데 뭐, 됐다. 마침내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귀족이니까 주위 눈도 있으니 결혼식 때 불우 이웃 돕기 행사를 살짝 걸친다. 막심과 신부 앙리에트는 각자 천 프랑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다. 열네 달 뒤 둘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것은……. 당신에 상상에 맡기겠다(궁금하면 책을 펼쳐보라. 아마 당신의 상상이 100% 맞을 것이다. 그만큼 결혼은 지리멸렬한 비즈니스가 아닌가).

귀족의 결혼이 사람들 이목을 중시하면서 교묘하게 꾸민 일종의 비즈니스였다면, 부르주아 계급의 그것은 한결 적나라하다. 법조계에서 공부하겠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교 교육을 받게 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 학교 출신이 최근 수지맞는 결혼을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래를 걱정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또 충고한다. “결혼을 하려무나. 집에 여자가 들어오면 빛도 나고 활기도 생기는 법이란다. 부잣집 딸로다가. 아내도 가격이 있으니……. 그래, 데비녀 씨 댁 딸이 괜찮겠구나. 대수공업자 집안인데 지참금이 백만 프랑이라지. 아마, 네게 딱 맞는 비즈니스겠구나.” 오, 이 솔직한 아버지여. 아내도 가격이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아버지여, 결혼이 비즈니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아버지여. 그리하여 아들은 재산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식은 마치 아주 엄청난 자본을 좌우하는 사업 체결에 참관이라도 한 듯’ 치러진다.

부르주아의 결혼이 이럴진대, 상인 계층의 결혼은 더 장사에 가까워진다. 그들의 결혼은 ‘돈’을 위주로 흘러가고, 결혼 후의 삶도 돈을 모으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부부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그 돈으로 파리 서북쪽 조용한 구석에 스위스식 별장을 지어 생활하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오늘날 결혼하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도 거의 이러할 것이다. 아파트 한 칸, 노후에는 교외에 집 한 채 얻기를 바라면서 평생 돈벌이에 집착하는 삶……. 19세기 프랑스인들도 다를 바 없었다. 졸라는 말한다. ‘이 상인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지라도, 분명한 점은 돈을 토대로 잘 짜인 솔직한 동업자’라고. 그런데 서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이 두 부부는 결혼한 후로도 늘 동침한다.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다들 포복절도하리라…….

서민의 결혼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스물다섯 청년 발랑탕은 클레망스에게 반해서 쫓아다니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이것이 사랑인지 단순한 욕정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졸라가 보기에 결혼이란 돈, 아니면 욕정의 해소 그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자리에 사랑이 끼어들 틈은 없다. 사랑이라는 포장이 있을 뿐. 이들의 결혼 후 삶은 비참하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 셋을 기르느라 클레망스의 금발은 누렇게 변하고 얼굴은 상한다. 발랑탕은 술에 절어 생활한다. 잦은 부부싸움과 울어대는 아이들, 남편의 구타 등등. 소란스럽고도 구차한 인생이 이어진다.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의 결혼을 쭉 읽어가다 보면 졸라의 시선이 점점 연민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위와 명예, 돈, 권력을 가진 이들을 묘사할 때는 냉소로 가득 차 있는데, 그래도 돈 없는 약자들의 삶을 그릴 때는 거기에 그나마 안타까움 같은 것이 깃든다. 이런 졸라의 시선은 ‘죽음’을 다룬 이야기들에서 더 뚜렷해진다. ‘죽음’ 또한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부로 나눠서 그려나간다. 귀족의 장례식장은 귀족의 결혼식처럼 허례허식으로 가득하다. 죽은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다들 슬픔을 억지로 꾸며내고 있지만 그들 머릿속은 온통 딴 생각으로 가득하다. 한 노인에게 죽은 고인을 추모하는 말이 들려온다. “마음씨가 고왔으며 관대로움과 선량함이…….” 그 말을 듣던 노인은 턱을 조금 움직이며 중얼댄다. “그래 나도 그런 존재를 하나 알았었지....”라고. 노인에게 그런 존재는 누구였을까. 죽은 고인이었을까? 궁금하면 책을 펼쳐 보라. 졸라는 냉소 속에서 때때로 이런 유머러스함을 발휘한다.

부르주아의 죽음도 모두 돈과 연관된다. 상인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두 계층을 바라보는 졸라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계층이 낮아질수록 연민과 안타까움이 커져간다. 이런 시선은 서민의 죽음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모리소는 얼음 깨는 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런데 이 추위 때문에 어린 아들이 심하게 병들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끔찍한 추위가 아들을 죽일 수 있다보니 얼음이 녹기를 바랐지만 그러면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일하러 갈 때는 허옇게 언 길을 보며 일거리가 있으니 안심’하지만 ‘드러누운 아이를 위해 태양이, 아니 미지근한 봄볕이라도 어서 나오기를 기원’하는 모순에 처한 것이다. ‘빈민에게는 온갖 종류의 날씨도 적’인 셈이다. 결국 얼음이 녹기 시작해 그는 해고당하고 만다. 일자리를 잃어 죽어가는 아이를 지켜 볼 불을 밝힐 양초조차 살 수 없다. 얼음도 녹았으니 아이는 살아나야 할 텐데, 그 간절한 바람은 덧없기만 하다. 아이가 떠난 뒤에야 도착한 구호품. ‘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허탈하게 웃는 모리소를 지켜보노라면 가난한 이들에게 던져지는 삶의 무게로 인해 마음이 잔뜩 무거워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결혼’은 이른바 ‘적령기’가 있어서 대부분 주인공들이 젊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에 비해 ‘죽음’에서는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나이가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에서는 한껏 냉소적이던 졸라가 ‘죽음’에서는 좀 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여준다. 삶 자체가 버텨나가기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책에서 ‘서민의 죽음’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한편, 마지막 3장에 실린 ‘어떤 사랑’은 사랑, 결혼, 죽음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런 단편들을 쓸 수 있었기에 졸라는 그 장대한 루공 마카르 총서를 써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결혼, 죽음>은 졸라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단편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졸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졸라 입문서, 또는 맛보기용으로 꽤 괜찮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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