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싱의 글은 오래 전에 한 에세이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이제는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어떤 계기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 그 글이 지닌 고독하고 쓸쓸한, 그러면서도 유려한 문장은 마음에 스민 채 고스란히 남았다. 그 뒤로 기싱을 더 알고 싶어서 <봄의 수상>이라는 제목의 작은 문고판을 사서 한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봄의 수상>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노라니, 기싱은 담백하지만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삶의 온갖 비밀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섬세한 눈을 지닌 작가였다. 그의 에세이만이 아닌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 바람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올해 이 책, <이브의 몸값 Eve's Ransom> 출간 소식을 접했다. 기싱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어떤 내용일지 가늠해봤다. ‘몸값’, 그러니까 ‘Ransom’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이브라면 아마도 여성 이름일 것이다. ‘Ransom’은 납치된 사람이나 포로의 몸값을 뜻하기도 하고, 죄 갚음 또는 해방, 몸값을 치르고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어쨌든 이브의 몸값인 것을 보면, 이브라는 여성이 납치를 당했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자유를 억압받는 환경에 놓여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몸값을 치르고 자유를 되찾아준다는 내용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다. 혹시 조지 기싱의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기싱은 매춘을 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그러니까 몸값을 치르기 위해) 절도죄를 저지른 뒤 감옥에 갇혀 퇴학당한 경험이 있다. ‘이브의 몸값’이라는 제목은 이런 내용이 아닐까 상상하게 했다.

나의 이런 예상은 얼마쯤은 맞고 어느 정도는 빗나간다. 이 작품의의 주인공 ‘모리스 힐리아드’는 반복되는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낭만주의자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그는 제도공이라는 직업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며 하루하루 불행하게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빚을 갚지 않았던 사업가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436파운드의 빚을 돌려받게 된다. 436파운드라고 하면 체감이 잘 되지 않는데, 현재 환율로 헤아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약 7천만 원에 해당한다. 7천만 원이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사실 인생을 새로 쓴다든가 할 만한 돈은 아니다. 7억이라도 그럴 것이다. 70억이라면 좀 많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은가? 당신에게 어느 날, 7천만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직장을 때려치우기에도 애매한 돈이다. 어디 멀리 여행을 다녀올 정도랄까.

힐리아드도 이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물론 마음에도 없던 제도공 자리는 집어던지고 그 돈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리라 다짐하고는 자유를 찾아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예상치 못한 외로움에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살던 하숙집에서 보았던 사진 앨범 속의 여인 ‘이브 매들리’를 직접 만나보리라 마음먹는다. 런던으로 떠난다고 하니, 하숙집 주인인 브르어 부인은 오랫동안 이브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서 이브가 사는 주소를 건네주며,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한다. ‘반은 슬프고 반은 웃고 있는’ 이브의 얼굴을 찾아 힐리아드는 런던으로 떠난다.

주소가 있으니 그녀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힐리아드는 선뜻 이브 앞에 나타나 자신이 이러이러한 일로 찾아왔노라고 말하지 못한 채, 그녀가 사는 집 근처에 방을 빌리고 멀리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가 지켜보는 바에 따르면 앨범 속에서 본 그 웃고는 있지만 어쩐지 슬픈 듯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브는 너무나도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며, 쾌활하며 밝다. 힐리아드가 상상했던 여성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상이 어긋나자 당황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브에게 이끌리고, 결국 그녀 앞에 나타나 자신을 소개하기에 이른다. 이브가 떠나온 더들리와 그곳의 하숙집, 브르어 부인 이야기를 꺼내자 경계하던 그녀도 곧 안심하고 힐리아드와 조금씩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단 이 마음의 크기는 힐리아드와 이브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이브의 생활은 지켜볼수록 베일에 가려져 있다. 힐리아드 뿐만 아니라 독자도 섣불리 그녀가 어떤 삶을 사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녀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위험에 처했고, 그 때문에 자주 우울해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힐리아드 또한 이브가 처한 암담한 상황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되고 마침내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자신이 경비를 다 댈 테니 함께 파리로 떠나자고. 힐리아드는 신사로서 못할 짓을 하고 싶지는 않기에 이브는 물론 그녀의 친구 패티까지 동행하면 더 좋겠다는 단서를 단다.

이쯤에 이르면 독자는 또 다른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나라면 어떨까? 만일 내가 ‘힐리아드’라면, 7천만 원쯤 돈이 있는데,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함께 파리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할 것인가? 단, 그 제안은 사랑이 아닌 우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오로지 그녀를 구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저 함께 파리에 머물면서 여행을 통해 그녀가 현재의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오직 그녀가 새 생활을 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주는 ‘인간적인 우정’에 그쳐야만 한다! 자신 있는가? 내가 만일 ‘이브’라면 어떤 남자가, 그것도 나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지니고 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남자가 친구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가자고, 그것도 경비를 모두 대주겠다는데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아무런 사심도 없이(!) 단지 내 건강과 내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돕고자 하는 마음뿐이라는데, 이 제안을 정말 받아들여도 될까? 독자는 이렇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브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망설임 끝에 힐리아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만일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의 절반 이상의 이야기는 쓰이지 못했을 테니까. 게다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을 테니까.

파리에서 그들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예상할 수 있듯이 힐리아드는 점점 이브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결국 이브에 대한 애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상태까지 이른다. 그러나 과연 이브도 그러할까? 두 남녀가 파리라는 낭만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우연히 손에 들어온 436파운드의 돈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의 영원함을 맹세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브는 힐리아드가 상상했듯이 ‘단순’한 여자가 아니다. 힐리아드가 반했던 그 사진 속 여성에 대해 이브는 “아, 그 별 볼 일 없는 사진!”이라며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슬프고, 고독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옷도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하게 입은 그런 아가씨를 기대”했다는 힐리아드에게 “기가 죽고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낫다면서 자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브는 가난을 두려워한다. 그녀의 인생 복표는 “나 자신이 살려고 발버둥 쳤던 수년간의 투쟁으로부터. 그리고 참담했던 과거로부터.”(102쪽) 달아나는 것이며,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가난을 두려워한다. “결혼 후 가난은 혼자 있을 때의 가난보다 천배나 나쁜 것”(196쪽)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러나, 힐리아드 손에 있는 돈은 고작 7천만 원일 뿐이다. 그 마저도 이 파리 여행이 끝나면 얼마가 남을지 알 수 없다. 그런 그와 그녀가 이 여행이 끝난 뒤에도 함께 할 수 있을까?

힐리아드는 이브에게 약간의 돈으로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 ‘이브의 몸값’을 힐리아드 그 자신이 치른 셈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유를 찾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더 원했기에 두 사람의 운명은 뜻하지 않은 길로 나아간다. 이 책을 읽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힐리아드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브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상대를 나쁜 남자라고 또는 나쁜 여자라고 비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두 사람 모두 436파운드라는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인간의 자유를 살 수 있다’고, 아니 한때나마 그럴 수 있다고 믿은 가엾은 청춘들일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궁핍한 생활로 늘 전전긍긍하며 고통받았던 조지 기싱, 그의 초상이 엿보인다.

<이브의 몸값>을 다 읽고 난 뒤 <봄의 수상>을 펼쳐서 오랜만에 다시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노라니, 이브도, 힐리아드도 결국 기싱의 또 다른 자아라는 생각이 들어 이 청춘들의 모습이 더 가련하게 남는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돈으로는 가장 귀중한 것을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상식적인 말은 아직 돈의 결핍을 경험하지 않은 것을 입증한다. 내가 버는 수입이 1년에 불과 몇 파운드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 생활에 일어났던 그 모든 비애와 절망을 생각할 때에 나는 금전의 위력에 그만 아연해진다. 나는 빈곤 때문에 즐거운 기쁨을 얼마나 잃어버렸던 것인가. 누구나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는 그 여러 가지의 단순한 행복감을 말이다. 해가 갈수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보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데서 비애가 생기고, 오해가 생기고, 아니 잔인하리만큼 친구와 소원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줄여 버리거나 아주 금해버리기도 한 간단한 위안과 만족도 수없이 많다. 나는 단순히 내 처지가 궁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친구를 잃어버렸다. 친구로 만들 수 있었던 사람들도 결국 낯모를 사람이 되고 말았다. 쓰라린 고독감. 즉 머리속으로나 친구가 그리워 못 견딜 때 닥쳐오는 그 고독감이 가끔 나의 생활을 저주했던 것이지만 그것도 오직 내가 가난한 탓이었다. 일체의 도덕적 선행은 모두 국가의 화폐로 보답할 수 있다고 말해도 하등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에게는 빈곤을 피하도록 노력하라는 훈계가 필요 없었다. 런던의 많은 다락방은 내가 그 달갑지 않은 빈곤이라는 동거인과 싸우기에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끝내 나와 동거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일종의 자연의 모순이다. 지금도 가끔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그 생각이 막연한 불안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빈곤이 주는 아픔’, <봄의 수상>,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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