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신간 목록을 훑어보다가 시몬 베유(Simone Veil)의 새 책을 발견했다. 그때 내가 본 책은 ‘꿈꾼문고’에서 나온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었다. 이 책 표지에는 유대인을 뜻하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게다가 책 제목도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니, 나는 당연히 그 유명한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중력과 은총>, <신을 기다리며>를 쓴 철학자 시몬 베유의 새 책인가 싶었다. 그녀에게 이런 저작이 있었다고? 의아한 마음으로 책 소개를 읽어보다가 뜻밖의 문구를 발견했다. “1974년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 일명 ‘베유 법’을 통과시키며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선 프랑스 정치인 시몬 베유.” 아하, 그제야 동명이인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시몬 베유의 글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사서 읽게 된 책이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다. 책을 받아들고 맨 먼저 읽은 장은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 그녀가 의회에서 연설했던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위한 투쟁’ ‘유럽을 위한 투쟁’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으로 이루어지고, 거의 연설문을 글로 담았다. 여성해방과 관련된 글 중심으로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는데, 이윽고 시몬 베유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 <나, 시몬 베유>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다. 연설문을 죽 읽어가는 것보다 자서전을 먼저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노란 책부터 읽기를 마쳤다.

두 책의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나, 시몬 베유>는 그녀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시작해서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겪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대학을 진학하고, 교정행정국 판사가 되고, 프랑스 보건부 장관에 올라 임신중단 법안을 통과시키고, 유럽의회 최초 선출직 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숨 가쁜 삶이 펼쳐진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이 ‘홀로코스트/유럽해방/여성해방’으로 크게 분류한 것과 거의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런 삶을 바탕으로 시몬 베유의 정체성을 단 두 개로 정의하라면 ‘유대인’과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시몬 베유는 강제수용을 겪었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타인의 존재를 모욕하고 격하시킬 수 있는 모든 것에 극도로 민감해졌다.’고 말한다. ‘신체적으로 밀착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소외를 싫어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마치 감옥 내의 투사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다’.(<나, 시몬 베유>, 115쪽)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정체성 못지않게 현재의 시몬 베유를 있게 한 존재로 어머니를 꼽을 수 있겠다. 베유의 집안은 화목했지만 아버지는 가부장제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집에서 정치는 언급될 수 없는 주제였는데,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우파 일간지를 구독했고, 어머니는 사회주의 경향의 신문을 구독했으며 아버지 몰래 중도좌파 또는 좌파 잡지를 읽었다. 그런 틈에서도 베유는 ‘아버지의 결정이나 금기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 같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게다가 베유와 언니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너무 (경제적으로) 의존한다고 생각했고,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경제적인 자율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가계부를 상세히 보고해야 했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준다. 그들은 유념해 듣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 교훈이 담긴 충고였다. “일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베유와 자매들은 여성은 남편이 반대하든 아니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와 독립’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몬 베유가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프랑스로 돌아와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그 사이에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고 마침내 변호사협회에 등록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녀의 남편은 불만을 터뜨린다. 그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사회 경력도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재능 있는 아내가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베유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뭐야? 당신 일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일하기로 했잖아.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국립행정학교에 가서 잘 되고 있잖아. 내가 일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했지만 베유는 자신의 남편이 이토록 부정적인 답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남편 또한 아내가 직업을 갖는 것을 거북해한다. 게다가 그는 법의 엄밀성과 힘을 믿으면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베유가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데 반해, 그녀의 남편은 돈을 낼 수 있는 의뢰인의 입맛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변덕스러움만을 보았다. 만일 이때 베유가 남편 뜻에 따라 집안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임신중단법은 어떻게 됐을 것이며, 과연 그녀가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묻히게 되었을까? 그저 가족 묘지에, 남편 옆에 이름 없는 여인으로 묻혔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시몬 베유의 삶을 일일이 옮길 필요는 것을 것 같다. 다만 그녀는 고통의 역사를 몸소 겪은 뒤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게 하지 않으려고, 다시는 그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는 점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베유 자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여성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살아갈수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얻은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베유가 여성이기 때문에 한 여성이 일이 덜 고된 작업반으로 그녀를 지정해서 옮겨주며 보호해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모든 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녀가 보기에 ‘여성을 위한 기회는 그저 운에 맡겨져 있었고 법이나 제도를 통해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차별을 시정하는 대가로, 사회는 여성이 신음하는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구체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회의 불평등과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조치란 성차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통합과 결속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표지를 다시 보니 ‘다윗의 별’로만 보이던 그것이 이제는 장미꽃처럼 보인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바친 사람, 세상에 장미꽃을 주고 간 사람. 그녀, 시몬 베유.


당시 나는 남자들이 임신중단보다 피임에 더 적대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피임은 여성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이전까지는 남성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도로 여성에게 가져온다. 그러므로 피임이란 이전부터 내려져오던 관념을 문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심중단은 여성을 남성의 전권으로부터 면하게 해주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을 멍들게 하는 것이었다. (<나, 시몬 베유>, 152쪽)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의회에서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송구합니다만, 우선은 여성으로서의 저의 신념을 나누고자 합니다. 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비탄에 빠진 이 여성들을 누가 보살피고 있습니까? 현재의 법은 여성들을 오욕, 수치, 고독에 빠뜨릴 뿐 아니라 익명의 존재로 만들고 구속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상태를 감추어야 하고, 곁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한 줄기 빛이 되어 도움과 보호를 제공해줄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집니다.” (<나, 시몬 베유>, 270쪽)

“우리는 여성의 직업 활동과 더불어 여성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용어들과 함께 종종 따라오는 잘못된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일을 해야 한다 혹은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여성 해방이나 속박이냐 같은 논쟁 대신, 저는 여성들이 바랄 수 있고, 바라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택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여성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삶의 틀과 환경이 세워지고, 이어서 여성의 존재 방식의 모델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공권력의 책무는 여성들의 이러한 욕구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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