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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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채 150쪽을 넘지 않는 이 작은 책은 많은 것을 공감하고 생각하게 한다. 가벼운 부피감 때문에 휴가 때 손쉽게 읽을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호기롭게 펼쳐들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쉬이 나가지 않았다. 낯선 작가의 익숙하지 않은 화법때문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제목,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내용들, 그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때문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꽃이 피고 모든 것이 분주하게 시작된다. 마치 삶이 시작되듯이……. 그러나 아침에 솟아오른 해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저물고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감하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어둠이 찾아오고 꽃도 어느새 졌다. 삶이 끝나듯이……. 

<아침 그리고 저녁>도 어느 한 사람의 ‘아침’을 그리면서 시작된다. ‘올라이’라는 이름의 어부, ‘마르타’라는 아내를 둔 그는 이제 곧 자식을 얻을 예정이다. 아이는 지금 제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기 위해 씨름 중이다.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겪는 가장 힘든 싸움 중 하나일 것이다. 어머니 몸속에서 나와 저 밖의 험한 세상에서 제 삶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는 엄마와 떨어져 혼자가 된다.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드디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내아이라는 산파의 말에 올라이는 아이에게 제 아버지의 이름,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할아버지의 이름인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꽃이 피듯 새 생명의 탄생한 것이다.

이제 어부 올라이의 아들, ‘요한네스’의 삶이 그려지는가 싶은데, 작품은 훌쩍 모든 것을 뛰어넘어 ‘저녁’ 그러니까 황혼에 접어든 그의 삶을 보여준다. 낮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생략한 채 벌써 해가 저물 때가 된 것이다. 아버지처럼 마찬가지로 조용한 바닷가에서 어부로 살아가고 있는 ‘요한네스’. 늘그막에 접어든 그는 아내도, 자식도 없는 집에서 홀로 아침을 맞이해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오늘 하루는 어찌 보낼까 궁리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오늘은 여느 날과 왠지 다른 느낌이다. 집밖을 나서니 이미 죽은 친구인 페테르가 보인다. 그럼에도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아서, 그와 함께 돌아다니며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를 만나기도 하고, 한때 마음을 주기도 했던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인 ‘페테르센’을 만나기도 한다. 가까이 살면서 매일 같이 찾아오는 딸 ‘싱네’는 그가 바로 곁을 지나가는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참 이상한 하루다.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노라면 황혼에 접어든 요한네스의 이 기묘하고도 특별한 하루는 사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하루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순간, 그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올라이가 했던 생각,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그 순간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순간.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순간. <아침 그리고 저녁>은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더없이 담담하게 그리면서 책을 읽는 이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죽음의 순간은 어떠할 것 같으냐고. 저세상이 있다면, 저세상의 모습은 또 어떠할 것 같으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그녀가 늘 쓰던 빨래통은 여전히 요한네스 곁에 남아 있듯이, 누군가 죽으면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요한네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집을 찾은 딸 싱네 또한 아버지의 물건이 고스란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목격한다. 사람은 무로 돌아가도, 사물들은 온전히 남아 그 사람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한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언젠가는 모두에게 찾아올 일이다.

요한네스는 그래도 행복했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직접 찾아와 그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줬으니까.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고깃배를 타고 그와 함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 다른 세상은 좋은 곳일까? 그는 궁금하다. 페테르는 말한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고. 그렇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난다’고, ‘환하기도’하다고(132쪽). 더구나 그곳은 한기도 들지 않고, 무섭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건 모두 거기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세상은 꽤 괜찮은 모습일 것만 같다. 요한네스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페테르와 함께. 그 잔잔한, 무서우리만치 담백한 죽음의 장면이 왠지 더 마음을 울린다.

‘올라이’는 아버지 이름인 ‘요한네스’를 아들에게 붙여주었고, 그 ‘요한네스’는 아버지의 이름을 자신의 일곱 자식 중 한 아이에게 붙여주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계속 이어지는 이름. 삶과 죽음의 영원한 이어짐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침표 없이 죽 이어진 이 작품의 문장처럼 말이다. 책을 덮고 가만히 내가 머무는 공간을 둘러본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질 물건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서 세상에 이별을 고하게 될까. 그리고 정말 저세상은 페테르의 말과 비슷할까? 한여름 휴가에 나는 잠시 죽음을 생각해본다. 그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저녁’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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