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와 애드거 앨런 포. 두 이름을 나란히 놓고 보니 참으로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은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포의 이름에서 자신의 필명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란포는 탐정물이나 판타지, 괴담, 범죄, 호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일본 추리소설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파노라마섬 기담> 또한 확실히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받아 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안에서 직접 포의 ‘아른하임의 영토’가 등장한다.
가난한 삼류작가 히로스케는 신이 만든 대자연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신이 되어 아름다움의 극치인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늘 몽상에 잠겨 있는 인물이다. 히로스케는 자신의 몽상의 기원을 언급하는데, 그중에서도 ‘에드거 앨런 포의 <아른하임의 영토>가 더욱 그를 매혹’했다고 말한다. 포의 ‘아른하임의 영토’는 온갖 조원술을 동원해 만든 지상낙원 ‘아른하임’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히로스케가 포의 아른하임을 언급하는 이 장면은 그가 아른하임 같은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에도가와 란포가 포의 작품에서 착안해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되, 그보다 더 강렬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남기고 싶다는 바람으로도 읽힌다.
히로스케는 마치 음악가가 악기로, 화가가 물감으로, 시인이 문자로 예술을 창조하듯이 생동하는 자연을 재료 삼아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몽상에 빠져 있다. 그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평생 써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돈을 손에 넣는다면……. 우선 광대한 대지를 사들일 텐데, 어디가 좋을까,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부려 내가 늘 꿈꿔온 지상낙원이자, 미의 나라, 꿈의 나라를 만들어 보이겠어.’ 이건 이렇게 하겠다는 둥 저건 저렇게 하겠다는 둥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신의 머릿속에 완전한 이상향을 구축해 낸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몽상일 뿐이다. 현실의 히로스케는 처량하기 그지없어서 하루하루의 생활도 여의치 않은 일개 가난한 학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수완으로는 평생을 바쳐 죽도록 일해 봐야 겨우 몇 만 엔도 모으기 힘들 지경이다. 게다가 ‘보통 몽상가 기질의 사내라 하면 예술에 심취하여 거기서 작게나마 안식처를 발견하기 마련인데, 불행히도 히로스케는 예술적 성향을 가지기는 했지만 지독한 현실주의자여서 몽상 말고는 어떤 예술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할뿐더러 재능조차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하루 무기력 속에 실현 불가능한 상상만 하던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의 욕망을 현실화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때부터 외골수처럼, 미친 듯이 계획을 향해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무인도인 ‘먼바다섬’을 통째로 사들여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서 파노라마섬을 완공하는 것이다. 그저 골방에 처박혀 헛된 꿈만 꾸는 이 무명 작가가 어떻게 그런 이상향의 극치인 파라다이스를 만들 수 있을까? 의아한데, 가장 큰 비밀은 그와 쌍둥이처럼 닮은 대학동창생 고모다 겐자부로의 죽음에 있다. 겐자부로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그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파노라마섬 기담’은 히로스케의 몽상, 겐자부로의 죽음 뒤 그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으로 옮기는 장면, 마침내 파노라마섬이 완공된 부분, 그리고 그 섬을 히로스케가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묘사하는 장면,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히로스케의 몰락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기에 정신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더군다나 히로스케가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이 작품에서 그나마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부분은 히로스케가 완성된 파노라마섬을 돌아보면서 그 섬의 온갖 진귀하고도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인데, 마치 하나의 파노라마 필름을 보듯이 끊임없이 기괴한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장면은 조금 장황하기도 해서 이 작품이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지루하리만치 세세한 묘사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묘사로 란포의 장기인 그로테스크하고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마음껏 엿볼 수 있다. 또한 눈앞에 재현된 환상을 통해 히로스케의 탐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면들을 읽노라니, 애드거 앨런 포의 ‘아른하임의 영토’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집에 있던 <우울과 몽상>을 펼쳐 읽어보았다.
야심을 경멸하는 것이 지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본질적인 원칙 중 하나라는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기 위해 그는 음악가도 시인도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높은 단계의 천재는 반드시 야심적이지만, 그보다 더욱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은 야심이라고 불리는 것을 초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밀턴보다 훨씬 더 위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문 무명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취향에 맞지 않는 노력을 하도록 유혹하는 몇 가지 우연한 사건이 없었다면, 한껏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찬란한 성취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과 몽상>, ‘아른하임의 영토’, 98~99쪽)
위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이 ‘아른하임의 영토’는 ‘파노라마섬 기담’과는 사뭇 다르다. 대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인공적으로 가꾼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그들이 저마다 빚어낸 이상향의 모습은 완벽하게 다르다. ‘아른하임의 영토’의 주인공인 앨리슨은 애초부터 부자인데다가 엄청난 유산까지 상속받는다. 보통 사람들의 재산을 훨씬 초과하는 부를 소유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당대의 갖가지 방종 행각에 흥청망청 빠져들거나, 정치적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귀족 작위를 돈으로 사거나,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혹은 문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의 아낌없는 후원자 노릇을 하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온갖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등등. 그런데 앨리슨은 음악가도 시인도 되지 않는다. 그는 풍경과 정원을 가꾸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뮤즈 신에게 가장 숭고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지고한 아름다움의 형태가 결합된 끝없는 상상력이 펼쳐지는 영역이었다. 또한 그가 생각하기에 이 결합에 들어가는 요소들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꽃과 나무의 다양한 색깔과 형태 속에서, 그는 물질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한 자연의 역동적인 섭리를 본다. “지상에서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겁게 하기.”(<우울과 몽상>, ‘아른하임의 영토’. 99쪽) 이것이 앨리슨의 목표였다.
그래서 앨리슨은 평범한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이러한 환상을 실현하는 데 바치면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의 계획을 혼자 감독함으로써 트인 공기 속에서의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서, 계획을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목표에서,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정열과 아름다움에의 갈망을 만족시킨 영원한 동기에서 그는 행복을 찾았다. 때문에 ‘아른하임의 영토’의 앨리슨이 만들어낸 지상낙원은 ‘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풍요로움, 따뜻함, 고요함, 한결같음, 부드러움, 섬세함, 우아함, 풍성함과 같은 느낌’과 함께 ‘부지런하고, 취향이 세련되고, 멋지고, 까다로운 새 요정의 꿈에서 나타날 듯한, 놀랍도록 발달한 문화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히로스케의 파노라마섬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예술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애초의 생각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는 서로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히로스케의 파노라마 세계는 끔찍함 그 자체이다. 자연을 깡그리 무시하고 비정상적인 취향을 가미해 온갖 인공적 기교를 부려놓은 공간이다. 맹수와 독사로 가득한 동산, 숨 막히는 향기와 인간 세계의 수치를 잊어버린 나체 남녀, 그리고 섬 중앙에서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 풍경 등등. 이 기묘한 세계는 인간 세계의 상식에서 벗어나 어느덧 끝없는 몽환의 경계를 헤매게 만든다. 히로스케와 함께 이 섬을 둘러본 지요코가 느끼듯이 ‘현실 세계는 모두 먼 옛날의 꿈만 같고 부모와 자식, 부부, 주종 같은 인간 세계의 관계 따위는 안개처럼 의식 밖으로 희미해지고 만다.’
“언젠가 이 파노라마를 발명했다는 프랑스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의 의도는 이 방법으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지. 마치 소설가가 종이 위에, 배우가 무대 위에, 저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듯이 틀림없이 그 사람도 자신의 독특한 과학적 방법으로 그 작은 건물 안에 광막한 별세계를 만들려고 시도한 거야.”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 89쪽)
히로스케는 세상에 없는 이상향을 만들고자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애초부터 세상에서 자기 설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비뚤어진 방법으로 이상향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고자 더더욱 그릇된 길을 택한다. 억눌리고 비뚤어진 욕망으로 빚어낸 세계는 ‘별세계’이기보다는 악몽과도 같다. 에도가와 란포는 ‘이 세상은 꿈, 밤에 꾸는 꿈이야 말로 진실’이라고 말했다. 밤에 꾸는 꿈, 그 악몽과도 같은, 그러나 어쩌면 그렇기에 날것의 욕망을 고스란히 재현한 ‘파노라마섬 기담’은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 ‘아른하임의 영토’에서 출발했으나 그 작품보다 몇 배는 충격적이고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룩한 란포. 만일 애드거 앨런 포가 이 작품을 읽는다면 ‘내 작품보다 훌륭하오.’하며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