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쟁탈전 (La Curée)>은 말 그대로 탕진, 탕진, 탕진을 위한 숨 가쁜 질주를 그린 작품이다.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2권에 속하는 이 작품은 피에르 루공의 셋째 아들 아리스티드가 제2제정하의 파리 개발 시기(1853~1870)에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투기로 막대한 재산을 모으는 과정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루공-마카르 총서>란 졸라가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 후손들을 중심으로 제2제정기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20권짜리 소설 총서를 말하는데, ‘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졸라는 그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방대한 가족 서사를 그리려고 했다. 보통 <루공-마카르 총서>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비교되고는 하는데, 졸라는 이 방대한 작품을 통해서 민중, 상인, 부르주아, 상류사회라는 사회를 이루는 네 가지 기본 세계를 묘사하고자 했다. 

이 총서의 1권인 <루공 가(家)의 재산(La Fortune des Rougon> (1871)에서는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의 기원이 밝혀진다. 19세기 끝 무렵, 경미한 정신병력을 지닌 아델라이드 푸크는 정원사 루공과 결혼하여 아들 피에르 루공을 얻었지만 남편과 사별한다. 그 후 그녀는 게으른 알코올 중독자인 밀렵꾼 마카르와 동거하면서 이들로부터 위르쉴 마카르와 앙투안 마카르를 낳는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바로 이 자식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이다. 1권을 통해 모계는 같지만(정신병력이 있고) 부계가 루공과 마카르로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에밀 졸라는 유전뿐만이 아니라 환경이나 교육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고들고자 했다.

<쟁탈전>의 주인공 아리스티드는 피에르 루공의 셋째 아들이다. 둘째 아들인 외젠 루공의 이야기는 이 총서의 6권에 속하는 <외젠 루공 각하(Son Excellence Eugène Rougon)>(1876)에서 그려지는데, 이 작품에서는 외젠이 거물 정치가가 되어서 정계에서 겪는 흥망성쇠를 그린다. <쟁탈전>에도 외젠(지만지 책에서는 ‘위젠’으로 표기)이 등장한다. 동생 아리스티드가 아내와 딸과 함께(아들 막심은 할머니에게 맡기고) 부푼 꿈을 안고 파리로 상경(!)하자 그에게 한자리 얻어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 ‘한 자리’란 아리스티드의 예상과 크게 달라 고작 ‘시청 말단 공무원’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형에게 불만을 드러내자 위젠은 ‘그 자리는 분명히 좋은 자리’라며 식탁보가 차려질 때까지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 자리가 형이 말한대로 아리스티드에게 엄청난 기회의 땅, 약속의 땅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아리스티드 본인은 물론, 위젠도 그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으리라. 시청 말단 자리에 있으면서 아리스티드는 도시 재개발에 관한 고급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는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갖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다. ‘아리스티드 루공’이라는 애매모호하면서 실패자와도 같은 이름도 ‘사카르’라는,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이름으로 갈아치운다. 이 장면에서 ‘루공’ 가문의 유전적 기질은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됐어, 찾았어, 사카르, 아리스티드 사카르! C가 둘 있는.... 그래! 이 이름에는 돈 냄새가 나. 동전 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80쪽)


고급 정보를 빼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카르에게는 행운도 따른다. 좋은 물건이 나와도 초기 투자자본이 없어서 전전긍긍할 때, 그 앞에 ‘르네’라는 황금과도 같은 존재가 덜컥 주어지는 것이다. 유부남인데다가 볼품없는 집안 출신인 사카르가 재산은 물론 사회적 지위까지 두루 갖춘 공화파 법조인의 딸, 르네와 정상적으로 결혼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르네에게는 안타깝게도 치명적 결함이 있었으니,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니던 중 하필이면 들판에서 어느 중년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임신을 한 것이다. 르네의 아버지는 집안 명예를 지키고자 딸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를 불쌍히 여긴 르네의 고모와 사카르의 누이동생인 시도니(우리나라로 치면 마당발 방물장수라고나 할까)가 연결되어 르네와 사카르의 혼담이 오간다. 일이 잘 풀리려고 하는지 병약했던 사카르의 부인마저 때마침 세상을 뜬다. 마침내 르네는 엄청난 지참금과 상속 받을 땅까지 갖고는 사카르와 결혼한다. 사카르는 르네의 이 재산으로 투기를 하며, 파리에서 손꼽히는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렇게 자리를 잡자 사카르는 할머니에게 맡겨두었던 아들 ‘막심’을 불러오고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막심과 르네는 둘도 없는 유희 친구가 된다.

그때부터 사카르-르네-막심 이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사카르와 사카르의 ‘트로피 아내’ 역할을 충실히 하며 권태와 허무 속에 오직 돈 쓰고 노는 일에만 관심 있는 르네, 아버지와 다름없이 천박한데다가 오직 유희만이 관심사인 막심- ‘아버지와 양모와 의붓아들은 마치 그들 각각 혼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했고, 독신처럼 편하게’ 산다. ‘그 누구도 가구 딸린 호텔방을 같이 나눠 쓰고 있는 이 세 명의 동료들 보다 스스럼없이 그 방에서 악과 사랑을 다 큰 장난꾸러기들처럼 떠들썩하게 즐기지 못’한다. ‘그들은 악수를 나누며 서로를 인정’한다. 각자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면서 ‘가족이라는 생각은 이익을 똑같은 몫으로 나누는 일종의 합자회사로 대치’된다. ‘각자 자기 몫의 즐거움을 끌어냈고, 원하는 대로 자기 몫을 챙기는 데에 암암리에 동의’한 생활을 영위한다.(184쪽)

<쟁탈전>은 이렇게 돈에 미친 사나이 사카르와 르네, 막심 세 인물의 기묘한 관계 및 그들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시절 파리 상류층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 배금주의와 육체적 욕망을 세밀하고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간다. 졸라는 그 무렵 사회를 ‘한 무리의 사냥개와 같다’고도 비유했는데, 그의 그런 생각은 <쟁탈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졸라가 보기에 그 시절은 ‘개들이 짖는 소리, 채찍질 소리,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햇빛으로 가득 찬 숲 속 한구석에서 뜨거운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으며 ‘무너져 내리는 지역들과 6개월 만에 쌓아올린 재산들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고삐 풀린 욕망들은 파렴치한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였다. 그리하여 ‘도시는 수백만의 돈과 여자들이 벌이는 한판의 방탕한 놀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위에서부터 내려온 악은 개울을 따라 흘렀고, 수반으로, 정원의 분수로 올라갔다가 다시 지붕 위에서 가늘게 내려와 옷을 적셨다.’ ‘격렬한 욕망과 즉각적으로 만족된 본능이 도시를 부수고 더럽힌 후 거리에 던져 놓은 모든 것들이, 도시의 쓰레기들이, 잠든 도시 가운데로, 센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낮의 숨찬 탐색보다도 열에 들떠 잠자고 있을 때의 파리에서 황금과 육체에 미친 도시의 황금빛 쾌락의 악몽과 정신이상이 더 잘 느껴졌다.’ (199~200쪽)

<쟁탈전>은 이렇게 벨에포크 시대 파리를 배경으로 인간들의 질주하는 욕망을 그려 나가는데, 그 대상은 비단 상류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작품 끝 무렵에 르네의 충실한 하녀 셀레스트와 사카르의 충직한 시종 밥티스트의 비밀 아닌 비밀(?)이 밝혀지는데 이 충직한 이들의 비밀을 알고 나면 인간이란 존재는 지위고하나 신분,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진다. 이 총서의 모든 시리즈를 읽으면서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의 자식들이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지켜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 총서 20권이 다 완간될 것 같지는 않고, 현재까지 나온 것만 추려본다면 아래와 같다(절판 제외). 훑어보면 루공 집안 이야기보다는 마르트 집안 이야기가 좀 더 많은 듯하다. <쟁탈전>을 읽은 다음에 <돈>을 읽으면 좀 더 생생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7권 <목로주점(L'Assommoir)>(1877) : 앙투안 마카르의 딸 제르베즈가 세탁부로 성공하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파리의 노동자 삶을 그림.















9권 <나나(Nana)>(1880) : <목로주점>에 나오는 제르베즈의 딸 나나가 고급 창부가 되어 방탕한 생활을 누리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림.















11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1883) : 옥타브 무레(피에르 루공의 막내딸 마르트의 아들)가 운영하고 있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도시 상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그림.















13권 <제르미날(Germinal)>(1885) : <목로주점>에 등장한 제르베즈의 아들 에티엔 랑티에는 탄광 노동자가 되어 파업을 주도한다.















16권 <꿈(Le Rêve)>(1888) : 피에르 루공의 외손녀로 어릴 때 버림받은 소녀 앙젤리크 루공은 성당에 딸린 자수 가게에서 양육된다.















17권 <인간짐승(La Bête humaine)>(1890) : 제르베즈의 아들 자크 랑티에는 기관사로서 치정관계에 얽힌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18권 <돈(L'Argent)>(1891) : <쟁탈전>의 주인공 사카르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수상쩍은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만 사기 혐의로 궁지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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