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옛 연인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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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은 책 읽는 계절이라는 말 때문에 그런가, 부쩍 관심 있는 작가의 새로운 책 출간 소식도 들려온다. 그중 단연코 눈길을 끄는 이는 윌리엄 트레버이다. <그의 옛 연인>이라는 책을 본다. 제목도 그렇고 책 표지 이미지-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손길 때문에 또 한 번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옛 연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해져온 어떤 소식 때문에 일상이 흔들리는 내용이려나? 궁금하다. 이 신간을 더 기다리지 않고 사보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부터인가 윌리엄 트레버는 내게 그런 작가가 되었다.


<그의 옛 연인>을 사서 책을 펼쳐본다. 표제작인그의 옛 연인」부터 읽어볼까 싶었지만 왠지 이 책의 제목을 그렇게 뽑은 이유가 따로 있을 것만 같아서, 이 책을 대표하는 작품- 그러니까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작품이려나 싶어서 아껴 읽기로 하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기로 한다. 첫 작품인「재봉사의 아이」부터 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야기의 시작은 평범하다. 평화로운, 조금은 따분해 보이는 자동차 정비소 풍경이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임을. 그리고 그 일은 아주 커다란 사건일 수도 있고, 또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재봉사의 아이」의 주인공은 ‘재봉사의 아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카할’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이름도 없이 그저 ‘재봉사의 아이’로 불리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아이. 그런데 그 아이가 카할에게 지울 수 없는 멍에가 되어 남는 것이다.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이의 엄마, 그러니까 재봉사인 그녀는 아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 엄마는 신뢰받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과연 믿어줄까? 겉보기에 카할은 이 게임에서 승자처럼 보인다. 그냥 그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울까? 재봉사의 아이는 평생 카할의 뒤를 쫓아다닐 것임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트레버가 빚어내는 인물들이 거의 그렇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삶은 그 일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변하고 만다. 곁에서 그 일이 무엇인지 지켜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는 ‘무언가’ 커다란 지진과도 같은 파열이 일어난다. 평범하지만 악하지 않은, 보통 정도의 ‘양심’이나 ‘죄책감’을 가진 그들은 그 어떤 일을 겪고 난 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으리라.


완벽한 관계,그의 옛 연인에는 연인 또는 부부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모두 안정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내도 그러할까? 은 시작부터 심란하다. 남자와 여자가 어느 ‘방’에서 만난다. 그와 그녀가 ‘불륜’ 사이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그들은 왜 어느 방을 빌려 이렇게 몰래 숨어서 만나는 것일까?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을까? 그녀, ‘캐서린’이 남자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놀랍다. 그녀는 살해 혐의로 기소된 남편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증언했다. 그 뒤로 9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해왔고 남편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혼 생활은 이미 그때 깨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고 있지 않은가. 


완벽한 관계 속 연인들도 그렇다.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프로스퍼’이지만, 그런 그에게 ‘클로이’는 문득 이별을 고한다. 그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도 않은 채 집을 나선다. 프로스퍼는 클로이를 찾아 그녀 부모님 댁을 방문하지만, 클로이의 부모는 딸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를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다. 프로스퍼는 클로이에게 분명히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둘이 곧잘 가던 카페에 홀로 앉아 자신의 연인이 다른 남자와 그 카페에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질투에 휩싸이기도 한다.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음’이 과연 완벽한 관계를 말해주는 증표일까? 클로이의 생각과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 둘은 과연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윌리엄 트레버는 어떤 가능성도 제시하지 않지만 프로스퍼와 클로이를 지켜보는 독자라면 그들이 다시 만나더라도, 그 관계는 예전 같지 않을 것임을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그의 옛 연인에 바로 그런 커플이 등장한다. 가을에 어울릴 법한 애틋하고도 아련한 사랑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시작부터 누군가의 편지를 훔쳐 읽는 사람이 나온다. ‘조이’는 남편 ‘찰스’의 편지, 그러니까 그의 옛 연인으로부터 전해온 편지를 훔쳐 읽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는 지긋하다. 이미 흰 머리가 성성하다. 조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남편의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훔쳐 읽어왔다. 찰스와 그녀가 통화하는 내용도 엿듣는다. 남편은 오늘도, 흰머리가 성성한 그 나이에도 옛 연인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쇼핑’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집을 나선다. 조이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눈을 감아준다. 아무렇지 않게 남편을 배웅한다. 그 부부의 일상은 아마도 평생 그래왔듯이, 그들이 눈을 감는 그날까지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그의 옛 연인>의 원제는 <Cheating at Canasta>이다. 이 책에도 속임수 커내스터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속임수가 있는 카드놀이. 어쩌면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부부나 연인처럼 상대를 속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부끄러움이나 수치감을 잊고, 아니 잊어야만 하는 남자는 스스로 양심을 속인 채 남을 협박하여 살아가며(아일랜드의 남자들), 십대 소녀 ‘애슬링’은 또래 소년이 맞아 죽는 광경을 보고도 모른 척 해야만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객기), 엄마를 잃은 딸의 빈자리를 다른 여자로 채워주어야지만 가족이 다시 화목할 것이라는 아빠의 믿음(아이들)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딸은 엄마를 잊을까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자식들을 생각하느라 죽음을 앞둔 남편에게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어느 노부인(올리브힐에서)은 결국 그 죄책감으로 인해 남은 생이 평화롭지는 않다. 


이렇듯 윌리엄 트레버의 <그의 옛 연인>에는 크든 작든 양심을 속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 인물들을 바라보는 트레버의 시선은 그들을 단죄하는 ‘재판관의 눈길’이기보다는 이해와 연민으로 가득한 ‘인간의 눈빛’이다.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삶과의 카드게임에서 이정도 속임수는 쓰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속임수조차 쉽게 잊어버리거나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급급하지 않은가. 그러나 트레버가 빚어낸 인물들은 적어도 자기 자신의 양심의 소리, 죄책감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흔들리고, 대개는 스스로 유폐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쓸쓸한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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