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의 상징, 비무장지대 설정의 전말> 中

 

".. 8일 열린 예비접촉에서 유엔군 측은 동양의 풍습에서 '황제와 승자의 자리'를 뜻하는 '남면(남쪽을 향해 앉는 것)'을 선점했다. 반격에 나선 공산군 측은 보드카와 맥주, 과일 캔디 등을 내놓았다. 승자의 아량을 베푸는 하사품을 의미했다. 숨은 뜻을 알아차린 유엔군 측 연락장교단이 거절했다. 이틀 뒤 공산군 측 지역인 개성에서 열린 1차 본회담에서는 더욱 유치한 신경전을 벌였다.

  양측은 예비회담에서 안전보장을 위해 유엔군 측 대표가 탈 지프에 백기를 게양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그 합의대로 유엔군 측 지프가 백기를 달고 개성에 도착했다. 그러자 공산군 측 트럭 3대가 이 백기를 단 유엔군 측 지프를 개성 시내로 천천히 안내했다. 마치 '항복사절'을 연상시켰다. 이 뿐이 아니었다. ... 키가 작은 남일 등 공산군 측 대표들의 얼굴이 아주 높아 보였다. 공산군 측이 대표단 자리에 4인치나 낮은 의자를 놓았던 것이다. 유엔군 측이 항의하고 의자를 바꿨을 때는 이미 공산군 측 사진기자가 '높은 의자에 앉아 패자를 깔보는' 사진을 충분히 찍은 뒤였다."

 

최근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대표자의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길산 3 황석영 대하소설 3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순은 총을 움켜쥐고 뛰어가는데 솟구쳐나오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목덜미를 적시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손목을 부여잡으며 반겨주던 아내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아내를 보자, 애간장을 태워준 자신이 얼마나 몹쓸 사람인가 뉘우쳐지는 것이었다. 옥을 나서자마자 아내 걱정은 고사하고 묘옥의 일부터 물은 일이 얼마나 매정하게 여겨지는지 몰랐다. 자식 못 낳은 설움이라면 남정네인 자기보다도 아내 쪽이 훨씬 서럽고 서운했을 터이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분원 일으키는 데 조력하여 초년 고생을 겪었고, 이제 밥술이나마 먹게 되니까 자식 낳을 걱정으로 경순이 외방으로 나도는 것을 참아내던 아내였다... (275)

 

길산이와 묘옥이, 이경순. 이들 셋이 대면할 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아.. 사람의 연이란 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강준만의 책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2004년 겨울, 참여정부가 출범했을 당시였는데, 노무현에 대한 책이 시중에 많이 출간되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강준만의 책을 몇 권 읽었다. 한국근대사산책과 현대사산책 세트를 제외하고 단행본을 읽은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갑자기 '리영희'를 읽게 된 건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때문이다. 유시민의 청년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기 전, 조금 가볍게 리영희를 알고자 해서 강준만의 이 책을 읽게 됐다.

 

"리영희는 아홉번이나 연행되어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이나 재판받고 언론계에서 두 번 쫓겨나고, 교수 직위에서도 두 번 쫓겨났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1012일에 이른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다는 죄 하나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겠지만 리영희는 자신의 신체에 가해진 것보다 더욱 혹독한 정신적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왔다."(작가 서문 중)

책은 '리영희의 삶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라는 주제에 맞게 194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리영희가 어떻게 발언했고, 어떤 실천을 해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국민 방위군 사건. 이승만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조차 이 사건을"9만명 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공노할 사건"으로 가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리영희의 기록. "단테의 연옥도, 불교의 지옥도 그럴 수는 없었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초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리영희를 리영희로 만든 것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학교깨나 다닌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가고, 이 틀림없는 죽음의 계곡에는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 나라의 불쌍한 자식들만이 보내지는가? 나라 사랑은 힘없는 자들만이 하는 것인가? 전쟁과 군대를 알게 될수록 나는 점점 더 사색적으로 되어갔다. 그럴수록 이 나라의 기본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생각이 들었다."

리영희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1966년 중앙정보부가 한국 군대가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줄 것을 후한 조건으로 부탁했는데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사명감과 대쪽같은 양심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걸까.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한가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자연과학의 공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정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이론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대한 공부인 인문 사회과학도 별의별 이론이 많기로는 자연과학에 못지 않으면서도 되돌아오는 곳은 단순한 인간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본질적 요체, 평균적 두뇌로 이해되는 간단한 결론이다. 무엇인가 자꾸만 어려운 이론이나 학설, 철학을 동원해야 자기의 정당성을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 사상.결정,입장은 벌써 민중을 떠난 소수자의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박현채의 글을 인용한 부분. "박정희 체제의 후계를 노리는 군부의
작은 고양이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위한 승부처를 끈덕진 저항의 역사를 가지면서 경제력에서 약하고 역사적 투쟁에서 싸움의 좌절과 좌절 속에서 처절함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절 속에서 체념을 배운 전남에서 선택했다고 보았다. ... 무력감에 빠진 호남인들은 훗날 아무 말 없이 오직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통해 그 한을 풀고자 했지만 인정머리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의 그런 평화적인 선택에 대해서조차 경멸을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인간관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완전히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바로 그러한 것이 사회주의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소유 및 사유재산을 통해 인간의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들을 조장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는 세계 가 30% 정도의 타락과 60 % 의 도덕성, 인간성을 유지하면 성공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타협을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실과 이상이 조화되는 안정 된 사회이며 '존재를 위한 체념'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길산 2 황석영 대하소설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생원을 혼내주려다 관에 붙잡혀 옥에 갇힌 길산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살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길산이 옥에서 달포를 지내는 중에 문득 설움받는백성의 삶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헌헌장부로 되어진 지금까지 받은 온갖 수모는 자신이 오직 천출 관대이기 때문이려니 하여 세상의 귀천과 빈부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칸 살옥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숱한 사연을 보고 듣는 가운데. 일찍이 박대근과 초 대면하여 그가포부를 말할 적에 느끼지 못했던 점이 이제 와서 환히 보이는 보이는 듯 했다. ... 이제부터는 보다 더욱 지혜롭게 더욱 강하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 힘은 지혜로움만 같지 못하니 맹수가 함정에 빠지는 격이요, 지혜는 또한 덕에 미치지 못하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여럿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마음이 올바를 것이요, 따라서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다. 아, 여기서 내가 미욱하고 짧은 젊음을 마칠 수는 없구나."(p. 57)

길산이가 처형됐다고 생각한 묘옥은 고달근네 사당패와 어울려 정처없는 길을 떠나게 됐다.

 

박대근의 묘책으로 탈옥에 성공한 장길산과 우대용은 구월산에서 무리와 합류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재인말을 보면서 길산은 크게 상심한다. 묘옥도 떠나버린 상태...

 

장길산 무리는 자비령, 멸악산을 근거지로 하여 산에서는 녹림당, 시장에서는 보부상, 떠돌아다닐 때는 광대짓을 하며 살아가기로 의기투합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중고서점 강남점에 들렀다가 제목을 보고,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비슷한 줄거리의 책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사게 됐다. 느낌은 정확하게 맞았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억압과 고통을 다루고 있다면 코번 애디슨의 <태양을 건너는 아이들>은 인도 여성, 그 중에서 인신매매에 의해 거래되는 아동 성노예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인도와 유럽, 미국 곳곳을 취재하며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이라고 한다.

한번 손에 쥐니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470페이지 가량 되는 꽤 두꺼운 책인데, 야자감독 시간에 이어 새벽까지 내리 읽은 결과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갑자기 몰아닥친 쓰나미로 인도 코로만델 해안가에 살던 아힐리아, 시타 자매는 가족과 이웃, 집과 터전 전부를 빼앗겼다. 친척 집에 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탔는데, 그 트럭 기사는 자매를 친척이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에게 데려가 자매를 팔아 넘겼다. 그로부터 자매의 삶은 송두리째 어긋나기 시작했고 조직적 인신매매의 구렁텅이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언니 아힐리아는 하루에 몇번씩이나 남성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동생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비참한 하루하루를 버티어 갔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 시타가 새로운 남자에게 매매되어 프랑스로 가게 되면서 자매는 생이별을 하게 됐다.

시타는 인도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게 미국으로 팔려 간다. 시타는 몇차례 탈출을 감행했지만, 포주에게 직접 걸리거나, 보상금을 노린 사람들의 신고로 다시 잡혀가게 된다. 주인공이 시타를 찾아내는 과정은 영화 <추격자>를 보는 것 만큼이나 스릴있고 극적이다.

 

결국 시타는 언니 아히릴야와 재회하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자매는 결코 쓰나미가 덥치기 전의 행복했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소녀들이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며 성매매의 공포 속에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끔찍하다..

 

성매매, 장기매매 같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범죄에 인간이 내몰리는 이유는 뭘까. 학교에서도 종종 느끼는 거지만, (학생들의) 인간성이 점점 상실되어 가는 것 같다. 

어느 부분인지 표시해두지 않아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말처럼 포주와 몇몇 관계된 자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남성들이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한 결코 근절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게다가 성매매를 알선하고 중개하는 자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조직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이었다. 아무 관계 없는 자들마저 그들을 도왔고 심지어 경찰과 판사까지도 그들을 비호했다.

"잠시 후 아할리아는 얇은 매트리스에 누워 천장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정말 불결하게 느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에서 몸을 씻었다. 변기에 앉은 그녀는 자신의 잔혹한 처지를 깨달았다. 창녀가 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라곤, 숨 쉴 수 있는 공기, 배를 채울 음식과 물, 비바람을 피할 지붕,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나누는 정뿐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음을 잘라내야 하리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시타를 생각했다. 위층 방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 그녀는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일에 맞서 동생을 지키는 요새가 되어 주어야 했다. 절망에 질 수 없었다."(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