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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ㅣ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서구에서 보통선거권의 역사는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여성참정권의 경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18세기 말에 처음 시작한 프랑스의 메리쿠르는 '미친년' 소리를 듣다가 정말로 미쳐버렸고,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말하다가 의정단상에 오르기 전에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여성 참정권이 프랑스에서 1946년에야 보장된 것을 본다면 우리의 남녀평등 보통선거가 1948년에 실시된 것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 수 있다.
예전에 울 학교 논술쌤이 '민간이 학살'과 '양민 학살'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고, '양민 학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게 좋다, 라고 하셨는데 그땐 이해를 잘 못했었고, 대체 왜일까, 무척 궁금했지만, 물어 볼 사람이 없었는데, 그 답이 이 책에 있었다!!
* 원래 양민이란 용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항일유격대원들을 '공비'라고 폄하하여 부르면서 이들이 친일주구배들을 청산한 것을 '공비들의 만행'인 '양민학살'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그런 용어가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된 것은 유가족들이 학살의 희생자들이 빨갱이나 '통비분자'가 아닌 무고한 양민임에도 불구하고 군경이나 우익단체에 의해 잘못 희생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자신들이 당한 억울함을 좀더 강력히 호소하기 위해 이 말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민학살이란 용어는 분명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양민학살이란 말은 빨갱이, 통비분자, 불순분자, 좌익가족들은 죽여도 된다는 가해자들의 논리가 갖는 부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양민인데도 희생되었다는 특정 희생자 집단의 억울함을 부각시키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당시 일반적으로 양민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 이를테면 보도연맹원이나 좌익수감자들에 대한 학살을 자칫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다. .. 양민이랑 말은 기본적으로 편을 가르는 말이다. 양민과 양민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학살의 첫 단계인 편가르기의 첫발을 뗀 것을 의미한다. ... 양민학살이 학살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오살(誤殺), 즉 죽여야 할 대상을 고르는 데에서 잘못을 범한 것만을 비판하는 소극적인 개념이라면, 민간인 학살은 국가권력이나 그 비호를 받는 무장집단이 비무장 민간인에 대해 일방적인 학살을 행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민간인 학살이란 개념은 또한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대부분의 학살 사건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고, 치사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한 황현. "죽는 것도 쉽지 않아. 내가 약을 마시려다 입에서 약사발을 세 번이나 떼었어. 내가 그처럼 어리석다네." 황현이 죽어가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분명했고, 지켜야 할 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황현. 이런 게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