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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평점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나혜석. 최초의 여성화가이자 최초로 개인전을 가진 화가로서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 되고 있는 여성. 한편 '정조는 취미다'는 말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혼고백장>을 발표해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사회를 비판했던 최초의 여권운동가. 비록 돌봐주는 사람 한명도 없이 쓸쓸하게 죽어갔지만... 어쨌든 그녀의 존재 자체가 '파격'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전시대가 신문과 잡지의 시대였다면, 1930년대는 라디오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던 시대다. 파시즘의 등장과 관련하여 라디오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선동가들에게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일제도 조선의 라디오를 황국신민화 사업에 적극 활용했다.
"일제는 라디오 체제와 함께 전생을 수행하는 군인과 같은 긴장감과 규율 체제를 수립해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을 병영화하려고 했다"(p95)
지금의 명동 일대는 과거에 비가 오면 진흙 수렁이 된다 하여 '진고개'라 불렸다. 이곳은 서울 빈민 중에서도 최극빈자가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통감부가 생기고,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인 상가가 형성되면서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정(町)'이라 불렀는데,
"충무로는 '으뜸이 되는 동네'이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본정, 을지로는 일본인의 상업지대로 돈이 버글버글하다고해서 황금정, 명동은 한국을 점령한 메이지 왕을 기린다는 뜻에서 명치정, 필동은 일본인이 모여 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대화정으로 부르는 식이었다."(p205)
식민치하라는 엄혹한 시절에도 영화가 흥행하고 외국 가요가 유행했으며 서울에 다방이 넘쳐났다는 사실은, '비동시성의 동시성'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오빠는 풍각쟁이'도 1938년에 발표된 노래ㅋ
'커피'에 대해 작가가 부여한 의미가 인상적이다.
"커피로 '근대'의 기분을 내면서 그걸 매개로 지식인들끼리 다방에 모여 앉아 은밀하게나마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다변(多辯)의 향연을 벌이면서 '다방의 푸른 꿈'을 꾸었다면, 커피는 '모던보이', '모던 걸'의 허영이라기보다는 恨의 음료였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p181)
1933년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팀이 창단되어 경평전을 열었고,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기호인들에 대한 서북인들의 반감이라는 지역감정이 보태져 그 열기가 더 뜨거웠을 듯.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으... 진짜 그런 날이 왔으면...
* 박흥식(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6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