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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7권 - 간토대학살에서 광주학생운동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평점 :
한국근대사산책7(간토대학살에서 광주학생운동까지)
책의 전반부에서는 1920년대 민족주의 진영이 어떻게 분화했는지, 그리고 사회주의가 ‘처세의 상식’이 될 만큼 당시 한반도를 휩쓴 사회주의 열풍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자세하여 설명해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1920년대의 대중매체, 유행문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와이에서 대조선국민국단을 만들어 독립군을 양성했던 박용만이 의열단원에게 암살당했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심했을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박용만을 변절자로 의심한 의열단 지도부가 단원을 시켜 중국에서 사살하게 한 사건인데,
박노자는 이 사건을 들어 의열투쟁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솔직히 나는 1930년대의 사회, 정치운동사를 조감할 때, 공산주의 운동에 가장 공감한다. 반대로 의열단의 투사들이 경찰서나 동척 등에 폭탄을 던졌던 것은 억압과의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정당방어’의 범위에 포함돼 정당성을 인정받아도, 나로서는 어떤 긍정적인 의미도 부여하기가 힘들다. ... 일제에 우민화된 경찰이나 같은 민중인 조선인들을 억압하는 일본인 한두 명을 폭사시키는 것은 ‘살생’이라는 도덕적 평가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미래지향적 선과(善果)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일제의 지배자에게는 자국의 경찰이든 군졸이든 조선인이든 사실 똑같은 소모품이었다. 적의 총알받이가 된 이국의 최하급 관리를 폭사시키는 것보다 그들에게 이 세계의 실상을 설명하여 계급운동으로 이끄는 것이 도덕적인 차원이든 운동 논리의 차원이든 훨씬 낫지 않았을까. ... 의열단의 약산 김원봉 선생이 결국 ‘의거’ 전략을 그만두고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은 것은 그 자신도 이와 같은 투쟁방법의 무의미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우리 역사 서술은 1920년대의 그 ‘의거’에 왜 이렇게 무게를 많이 싣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악과의 투쟁’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뭐라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왜적 폭살’은 둘째 치고 1928년에 정확한 근거도 없이 박용만을 ‘친일’로 몰아 사살한 것 등 ‘내부 투쟁’은 사실 많은 경우 그 정당성마저 의심을 받고 있다”(p213~215)
1920년대는 그야말로 신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격동기였던 것 같다. 학생들 사이에 ‘시스루’가 유행해서 포목전 주인이 ‘우린 뭘 먹고 살아야하나’며 개탄하기도 했단다. 김소월이 동아일보 지국 운영하다 실패했고, 고리대금업에 손댔다 말아먹고, 술과 한숨으로 지내다 1934년 자살했다는 것과 김유정이 목욕탕에서 나오는 여성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밤새워 편지와 혈서를 써서 보내고 밤을 새워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라 좀 인상적이었고.. 좀 깼다;; 웃겼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