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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ㅣ 프리즘 총서 22
클로드 르포르 지음, 홍태영 옮김 / 그린비 / 2015년 11월
평점 :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그리고 번역본이 바로 손에 들려 있는데, 읽을 수가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 내용이 더 더 궁금해지는, 그런 새해 아침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하다 좌절하시는 분들이 자책에 빠져 다른 책 읽기마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남깁니다. 저는 불어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 번역본을 들춰 보았는데, 영어 번역본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어요. 서툰 번역이나마 비교를 위해 적어 봅니다.
'Freedom', the simple word I have just used, is usually banished from scientific language or relegated to the vernacular, when, that is, it does not become a slogan for small groups of intellectuals who declare that they have taken sides and who are content with anticommunism. They can be ignored. no matter how much noise they make, as we have seen their kind before. I am more concerned with those intellectuals and philosophers who claim to belong to the left or the far left. Although they live in an era in which a new form of society has emerged under the banner of fascism on the one hand and under that of socialism on the other, they refuse to contemplate or even perceive that momentous event. In order to do so, they would of course have to give new meaning to the idea of freedom. And yet they abandon it to the vagaries of public opinion, apparently on the grounds that everyone defines it in accordance with their own wishes or interests. By doing so, they cut themselves off, not from public opinion, but from political philosophy, even though they claim to be in search of rigorous knowledge.
'자유,' 내가 방금 사용한 이 단순한 단어는, 반공주의에 만족하며 자신의 진영을 정했다고 선언하는 적은 수의 지식인들을 위한 슬로건이 될 때가 아니면, 대개 과학적 언어에서 쫓겨나 구어에 방치되어 있다. 그런 지식인들은 무시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느 정도의 소음을 내건 상관 없이, 우리는 그런 종류의 지식인은 예전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염려하는 것은 좌파나 극좌파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과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한 편으로는 파시즘의 깃발 아래에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부상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응시하거나 심지어 지각하기조차 거부한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자 한다면 그들은 물론 자유라는 이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은 자유라는 이상을 여론의 변덕 속에, 명백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이나 이익에 따라 자유의 의미를 마음대로 정의해버리는 상황에 방치해 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비록 자신이 엄격한 지식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을 여론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 철학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다.
: 좌파 지식인들이 자유의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
(홍태영님의 번역)
자유, 내가 방금 발음한 이 단순한 한 단어, 이것은 자신들의 진영을 선택했다고 선언하고 반공주의에 자족하는 일부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표지로서 사용되지 않는 한에서, 통속적인 언어가 되어 지적 언어에 자주 침입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소란스럽더라도 이런 종류의 지식인들은 내버려 두자. 나에게는 좌파 혹은 극좌 진영에 개입하기를 요구하는 지식인, 철학자들이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 파시즘,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의 표식 아래에서 사회의 새로운 형태가 전개되는 시기에 살면서, 그들이 이 거대한 사건을 사유하고 인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그들로 하여금 자유라는 이념에 이미를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신념과 이익에 부합하는 특징들을 부여하기 위해 그들에 의하여 여론의 파도 속에 던져진 것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엄격한 인식의 탐구 속에서 그들이 구실로 삼는 것은 여론이 아니라 바로 정치철학이다. (18-19)
: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번역본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 몇 페이지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가지 있는데, 인용은 생략합니다. 아 이렇게 쓰고보니 책 내용이 더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