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3/21 15:01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여진 부분과 씌여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번째 부분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네요
첫 단락에서 길게 설명한 부분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이건 "우연"에 대한 설명이다..란 생각이 들던데... 넘 축소시킨건가?
요새 끌리오에 넘 자주 들어와서 그런지...머리가 지끈지끈...
별 생각없이 살던 애가 어쩌다...ㅋㅋ..

이건 큰 실수인거 같은데요..
전 이 까페가 독서 까페인줄 어제 첨 알았답니다..
정말 큰 실수죠?
제가 이 까페의 취지와 너무 벗어난 얘기들을 많이 한 거 같아서 그동안 실례했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엉뚱한 개인적 생각들만 잔뜩 나열한 거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오던 사람들도 끌리오에 안오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다음번에는 독서까페의 취지에 맞는 글 올리도록 노력해 볼께요..
그래도 여긴 참 좋네요..
이런 글들을 올리는 건 정말 유래가 없었는데..
그래서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크...

사람들이 글을 왜 쓸까..란 생각을 해 보았어요..
일종의 탈출구 인거 같습니다. 해방구..
머리속이 복잡해서..점점 물이 차 오르듯이..출렁거릴 때..
뭔가 확 써내고 나면..시원한 느낌..
다시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고..다른 일에 집중도 잘 되고..
소설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긴 장편을 쓸 수 있을까..하고 정말 의문이었어요.. 중학교 때..

제가 아는 글쓰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소설가들은 써도 써도..쓸 거리가 자꾸만 더 생각나고..가만히 있으면 머리속에 뭔가가 꽉 차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그 쓰기 위한 과정 자체도 고난의 연속이겠지만.

저번에 무슨 영화를 봤었는데..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영화였거든요
그녀를 보려고 봤던 영화가 그렇게 끔찍한 영화인 줄 모르고 봤었는데
제목이 잘 기억이 안나요..ㅋ 자로 시작되는 두 글자의 제목이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작가 한명이 있는데 너무 에로틱한 소설들을 많이 써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요 그러나 소설은 너무나 잘 팔리죠 ..감옥에 가둬놓아도 암암리에 그의 새 작품들이 시중에 등장하자. 결국 그에게서 펜과 종이를 빼앗았죠.. 그 사람은 정신병적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그것도 소위 말하는 3류소설을 쓰는 걸 특히 즐겨했죠.. 당시 중세사회라는 걸 볼때..그건 교회에 반항하는 행위였고.. 그래서 그 사람은 그걸 더 즐기는 것 같더군요 그때 우리가 말하는 3류 소설에 대한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됐죠.. 상업적 목적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 있어 그건 체제에 대한 반항이라구요 현재의 순전히 돈벌기 위한 3류소설과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보인단 겁니다. 감옥에 갇히면서까지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는 결국 펜과 종이를 빼앗기자..자신의 피로 이불 천에다 소설을 써요.. 정말 광적이죠.

이런..이건 또..시네마 천국에 가서 써야 하는 부분인데..
쯔쯔..이렇게 또 여기저기로 종횡무진하는 글이 되어 버렸네요..
고쳐야 하는디..

정리하면.. 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해 보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쓴다는 행위를 하잖아요 얼마나 신기합니까.. 유일하게 쓰는 행위를 하는 인간 .. 원숭이도 보다 지능이 발달하는 단계가 오면 쓰는 행위를 할지는 모르겠으나..ㅋㅋ..

우리는 역사과라서 쓴다는 관점 보다는 읽는다는 행위를 더 많이 하죠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을 이해하는 건 읽는다는 행위를 할 때 한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역사에서도 역사서를 읽기 이전에 역사가를 먼저 이해하라고 하잖습니까
뭐 그 내용에는 역사가는 사회의 산물이고..보다 현재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산물인 역사가를 먼저 읽고 있어야 한다. 등등의 내용들도 있지만..

역사에서도 쓴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 쓴 것을 토대로 밝히고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 쓴다는 행위는 어떻게 분석해야 하나요? 이런건 심리학의 영역인거 같기도 한데..전 더이상 한계가 느껴지는군요.

또 다시 정리해보면..
인간이 쓴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그래서 쓴다는 행위를 하는 문학과 역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공유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독서라는 것은 읽는 행위가 주..임에는 틀림없지만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독서는 영원히 반쪽의 독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겁니다. 왜 쓸까..왜 썼을까..란 기본 질문에서 출발해서 독서를 하게 되면 보다 행복한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비판이라는 것도 가능해 지고 말이죠..

아..정말 이렇게 시작에서 끝을 내리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오늘은 꼭 무슨 레포트 쓰는 거 같은 기분 듭니다.

다시 돌아가서..
인간은 왜 쓸까요? 자식을 통해 종족을 보존하고 흔적을 남기려는 본능과 같이 정신적 영역에서 흔적을 남기려는 본능의 변형일까요? 인간의 육체적 활동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증거가..지금 존재하는 나..이라면
인간은 생각하는 활동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는 증거중의 하나가 글..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근데 왜 하필 쓰기를 통해서인가..

윽.. 넘 힘드네요..
난 또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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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3/28 13:40

1.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 현 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

2. 섬

정 현 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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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ormity를 영국국교로 해석하면 안 될 것 같고,
일치, 합치(correspondence)로 해석하여야지요^^

두번째 정의에서 Latin: conscire의 뜻이 있네요.

"그릇된 것을 안다"...
이것이 첫번째 풀이인 "선과 악을 안다"로 발전하였겠네요.. 틀림없이..
제가 종교개혁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한 것은,
라틴어 conscire가 오늘날의 개념어인 conscience로 발전한 것은 바로 종교전쟁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합치 여부는 전혀 다른 방향일테고요.
헷갈리지 마세요.

님을 한 번 더 괴롭힐까요?
님이 언급한 것처럼,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같은 것일까요?
종교란 앞서 "유한성을 특정한 무한성의 일부로 통합시킴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요?
세계관이지요..
그러나 단순한 세계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함축을 지니지요.
그것은 실천에의 의지를 함축하고,
또한 역사의식을 함축합니다.
그럼 역사의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역사의 전개 속에서 나 혹은 특정한 집단이 처하는 위치와 그에 따른 실천을 함축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대체가 역사란 진행형이란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역사 인식은 언제 등장하였을까요?
최초로 근대적인 역사 책이 쓰여졌던 르네상스(16세기)도 아니라고 합니다.
최초로 근대적인 정치사상을 전개한 마키아벨리조차 고대의 올바른 법으로 회귀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은 변화하므로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인간의 법을 새오이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선적이고 진보적인 역사 인식은 빨라야 17세기, 어느 정도는 18세기 계몽주의부터 출현하지만, 본격적으로는 18/19세기의 낭만주의에서 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도 그 때에 와야 생길 수 있는 법이지요.
따라서 16세기에 나타난 영국 국교회를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정말 괴롭지요?
이제는 계몽주의가 무엇인지,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게.. 애초부터 일반교양부터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어야지요.
그저 학점 때문에 우왕좌왕거리다가 뒤늦게 후회하지요..
그러나 너무 우울해 하지 마세요.
한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그러니까..
그러니 선생들도 열받을 필요가 없지요. 자기들도 대학 시절 그렇게 농때이쳤고, 뒤늦게 후회하며 공부한 사람들이니까.
이 구조가 영속되는 한,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한국의 학문을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구요..
그래서 어떤 선생님의 싸가지 없는 모토는 그렇더군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요?
그 때에도 답답한 사람 많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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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4/12 14:28

'양심' 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이네요..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냥 양심..양심..그랬는데 그 개념 하나하나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유의 단어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가..
권선징악이라는 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린 양심과 善의 개념을 착각하고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의 개념이라니깐 너무 또 궁금하더라구요 우리 학교 도서관에 정치 사상사란 책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넘 이상하죠? 우째된 일인지 단 한 권도 없더라구요.. 전 컴이 고장난 줄 알았습니다.

먼저 양심을 지칭하는 용어
concience ; conscientiousness; the still small voice ; the inner voice..

한영사전에 나온 것들인데.. the inner voice 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의 개념으로서 우리식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느낌이 좋지 않습니까? the inner voice...

원래 전 사소한 남들 안쳐다 보는데 감동 잘하고 그러니깐 이해해 주셈..
전 아무도 안이쁘다고 하는 여자 보고 너무 이쁘다고 반하고 그런답니다.

concience

1. The faculty of reconizing the distinction between right and
wrong in regard to one's own conduct
2. conformity to one's own sence of right conduct
[Latin conscire, to know wrong]

이건 American Heritage 아주 간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보아서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마음 같아서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를 뒤지고 싶었지만.. 그게 웬지 더 잘 나와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럽쪽에서 발생한 개념일테니깐..다른 외국어도 좀 알면 더 폭이 넓게 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죠.. 제가 지금 들고 있는게 이거 뿐이라서T.T

위의 두개 가지고는 뭔가 잘 모르겠지만..

conformity
1. similarity in form or character ; correspondence
2. action or behavior in agreement with current customs, rules, principles and so forth

2번의 뜻에서 뭔가 역사적인 게 나올 거 같더라구요..제가 가지고 있는 사전이 부족한게 많긴 하죠.

behavior in agreement with current customs, rules, 에서 ..그 관습이라는 것이 뭘까..란 것이 궁금해지더랍니다.

다시 한영을 찾으니..
conform의 뜻에 영국에서 국교를 신봉하다라는 뜻이 있더라구요..

아..드뎌..양심이라는 것은 바로 영국에서 국교를 신봉하는데 있어서 충실히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았답니다.

정말 종교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옳은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그것은 영국 국교에 충실함을 의미하는 것.. 기독교와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더라구요

물론 어원을 자근자근 따져서 분석해 본다면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한계가 느껴집니다.. 저의 성과는 여기까지 인 듯..

전 전문적인 저서를 구해서 읽지는 못했답니다. 좀 형식적이죠? 사전에서 단어나 찾구..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 이해에는 조금 도움이 되었는데요 서양사는 공부 안했다는 티가 너무도 나서..에궁..

그러면..양심의 자유라는 것은..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는 영국 국교에 충실한 그 형태, 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의미일까요..아님 양심이라는 의미 그 자체를 영국 국교에 충실한다는 의미를 지니지 않도록 해방시키자는 것일까요... 에구..어렵당.. 제가 말해놓고도 제대로 의미 전달이 잘 됐는지 미지수입니다. 꼭 말장난 같기도 해서 골치는 아픕니다만.. 자꾸 고민꺼리가 생기네요..

아무래도 전자의 것이 맞는 듯 싶습니다..그래서 지배층에 저항하는 논리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말이 성립될 테니깐 말입니다.

그럼 양심이라는 말은 별로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닌것 같기도 하구..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럼 저의 양심에 따른 삶을 살자는 것은 참 부끄러운 말이 되고 마는군요 투쟁의 의지가 결여된 현실에 안주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니깐요.. 근데 사람들이 양심이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쓰는 것을 보면 또 양심이라는 의미 자체가 상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action or behavior in agreement with current customs 이라는 정의는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일 테니깐요..

제가 시작해놓고 어쩔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당--;;

양심이라는 그 모호한 단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양심과 양심의 자유는 정 반대의 개념이 될 수도 있고 같은 의미가 될 수도 있는 아주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만약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쓰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꼭 말장난 같아서 싫기는 한데 참 난감합니다.
앞으로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네요..그 이후에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생각하고자 한 건 다른 것이었는데 개념정리부터가 안되니깐 진도가 안나갑니다.
너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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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4/07 13:43

세한(歲寒)의 사랑

-경주 남산

정 일 근

저물 무렵, 차 한 잔 달여 마시는 동안의 눈으로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들 다 지워져버렸지만
경주 남산 바위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는 산길은
그리운 발길로 하여 따뜻하게 숨쉬며 되살아난다
사랑이여, 그대 그 길을 걸어 오늘은 내게로 오라
돌 속에 숨어 잠든 천 년의 잠을 털고 내게로 오라
우리 서로 차가운 이마에 더운 손 짚어 오랜 안부를 물으며
천룡사 탑 뒤에 숨어 사랑의 입을 맞추자
경주 남산에 밤새워 흰 손수건 같은 눈은 내리고
그대 보는가, 우리 사랑의 늘 푸르름을
날이 추워진 후에도 억센 눈발 속에서도
완당의 세한그림 속의 송백처럼
우리 사랑의 가난한 초가 곁에 기대어 서서
하염없이 그대를 기다리는 푸른 나를 보는가.

===========================================================

경주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본래 계획은 보문단지쪽으로 해서 벚꽃구경을 가자는 것이었는데
기차에서부터 사람이 워낙 많았던 지라
보문단지 근처로 해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그리고 경주...에서 수학여행 코스는 더 이상 가고 싶지가 않았답니다.

5인조 그룹의 우리 패거리들은 경주역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한참을 실갱이를 벌였죠
경주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게 되어 있는 지도는 처음 보았는데
정말 멋진 도시라는 생각 들었습니다. 욕심만 크도록 가고싶은 곳은 얼마나 많았는지 그 설레임이란...^^
하지만 대중교통과 튼튼한 다리를 밑천으로 한 우리의 여행에서 헛된 욕심은 부질없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답니다.
모두모두 가고 싶은 곳은 제각각..
전 처음에 양동마을이 너무 가고 싶었답니다. 옥산서원..감포도 말이죠
근데..
지도에서 그곳은 우리의 여건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 길을 어떻게 찾아간단 말이냐..

결국 목적지는 제가 제안한 곳으로 가게 됐는데
바로 경주 남산이었답니다. 우리 모두 사람은 많이 없으되 봄을 맘껏
느낄 수 있으면서도 뭔가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서...란 모토 아래..
저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답니다.

경주 남산..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저 또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미지의 그 곳, 너무나 기대되었습니다.

일단 포석정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포석정도 첨 가보는 곳이었는데 역시 사진의 그대로의 모습.
친구들은 에이..별거 없네..하면서 조금씩은 투덜대는 모습.
포석정에 둘러앉아 그 시절의 귀족처럼...이라는 컨셉으로 사진찍다가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야단맞았죠..
들어가지 마라는 글씨 안보여?...ㅋㅋ..

포석정 구경도 재미났지만 그보다 더 여행에서 우리를 따스하게 해 주는 것은 4월의 봄기운..이었습니다.
따뜻하게 비치는 햇살과 푸르게 드리워진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서서히 지고 있는 벚꽃잎들의 흩날림
소소한 바람.. 갈아엎어진 채 붉은 황토냄새를 향수마냥 우리의 콧속으로 밀어넣는 대지.

제가 바로 원하던 그런 여행이었답니다.
모두들 제각각의 분위기에 취해 필름이 한통이 되고 두통이 되도록 카메라 셔터를 찰칵찰칵 눌러댔답니다.

본격적 출발...경주 남산.
커다란 지도가 서 있는 길거리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죠
경주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몇 갈래가 되었는데 1번길을 선택했습니다.
한 대여섯 길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첫번째 길을 선택한 이유는 거기에 호수가 있다는 걸 보고 였답니다. 감포는 못갈 지언정 저수지면 어떻고 호수면 어때..

나정

박혁거세의 탄생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는데 들어가니깐
커다란 비문이 있습디다.
제가 그 비문의 한자를 얼마나 읽고 싶었는지..그리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래도 함 읽어 볼거라고 이리저리 읽는데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중문과 친구를 데려다가 해석해 달라고 막 다그쳤는데.. 그녀도 잘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저보단 훨 나았습니다.
에거... 비문 읽고 시퍼라..
언젠가는 어디든 여행을 다녀도 비문을 소설처럼 읽는 날을 만들겠다고 막연한 다짐을 해 봅니다. 힉..

당간지주

길에서 멀리 떨어져 돌기둥 두개가 우뚝 서 있었죠
그래도 어디서 본듯한 모양이라 전 당간지주가 저거다..라고 말을 했더니
친구들이 조용하다가 갑자기 푸하하..하면서 첨에 무시하더군요--;;
또 농담하는 줄 알았대요..
다른 친구가 저거 진짜 당간지주 맞다..하니깐..그제서야 정말? 하면서
유심히 보더군요.. 초라해 보이는 그 모습이 어필하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주위에 나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황량한 벌판에 돌기둥 두개만 서 있는 모양이 ..실망스러웠는 모양입니다. 치이..유명한건데..혼자 궁시렁궁시렁..

양산재

신라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었습니다.
서원과 모습이 비슷하더라구요 저에겐 너무 멋진 곳이었답니다.
서원의 동재와 서재..처럼 양쪽에 두 건물이 있었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던 덕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은 동재의 위치에 있는 건물의 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답니다.
중천을 넘어가는 곳에 걸터앉은 햇살땜에 잔디가 노오랗게 보였는데 보기만해도 따뜻해지더군요
하늘은 정말 말 그대로 스카이 블루빛을 띄고 있었구요 비행기 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어서 꼭 어린애 벽에 낙서한 것처럼 순진틱 했고..
고요한 한낮의 정취 속에서 모두들 멍 하니 한참을 그러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나뭇잎들 부딪히는 부드러운 소리..사아...
바/ 람/ 소/ 리/... 잔/ 디/ 냄/ 새/...
퍼펙트 모먼 !!!

에구..
전 하루동안의 짧은 여행을 너무나 긴 글로 만들어 버렸네요
아직 더 간 곳이 있긴 했는데..
오늘은 여기쯤에서 끝낼랍니다.
담에 기회가 되면 다음 얘기를 쓰도록 하죠..
주변이 갑자기 시끄러워져서 더 이상 쓰기가 힘들어서요..
즐거운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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