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9/08 15:30

뭐든지 말리면 아주 바슬바슬하게 잘 마를 것 같은 화창한 날이에요

하늘의 빛깔이 점점깊은 푸른 빛으로 변해가는게 너무 좋아요

딱 저 색깔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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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3/20 12:28

나쁘게 말하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배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p ==================================================================

며칠 전부터 그냥 이 시집 가방에 넣고 폼으로 들고 다녔는데
두 세번 그냥 끄적거리며 보다 보니깐..
이젠 감당할 수 없게 빠져 들게 만드는군요..
그 어려움에 도전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4년 동안 아무 의미 없던 책이었는데..TT
아무나에게 주어 버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어제는 또 뒤지다가 이 시를 발견했습니다.
음..
영화 만들 때 기형도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과연 시에서 어떻게 영화의 영감을 가질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졌었죠.

그런데 이 시가 눈에 확 띄는 겁니다..
와..
진짜 영화 만들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던거죠
뭐라고 할까..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겠다기 보다는..
영화 전체의 느낌이 잡힌다는 거겠죠..

꼭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큭..또 혼자 또라이 되는 건 아닌지..^^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전 특히 이 대목이 와 닫았습니다.
꼭 한편의 괜찮은 영화 주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이죠..

영화나 한편 만들어 볼까요?
캠코더 하나 들고서..
저의 까꿍양과 함께.. 술마시고 도로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담는
겁니다..
한 밤중에 깔깔대고 웃고 뛰어다니는... 시선이 곱지 않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도 담고..
우리는 왜 그래야 하는가...
경대 앞을 왜 뛰어 다녀야 했는가..등등..큭..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삶이 너무 허무했으니까..
졸업을 앞둔..우리들의 고뇌..운운 하면서..

하하... 잠을 좀 덜잤드만..
제가 별 생각을 다 하는군요..^^

압..점점 저의 본색이 발휘되는가 봅니다.
이러면 안되는디..--;;

답사 간다고 강의실도 썰렁하니.. 수업이 없어서 가벼운 하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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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3/18 19:58 연탄 한 장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문학동네 시집 중에서 첫번째 1을 안도현이 차지하고 있네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개인적으로 참 괜찮다고 생각한 시집입니다.
전 형광펜으로 괜찮은 문구를 그어가며..참 잼있게 읽었는데

사서 봐도 결코 아깝진 않은 책이죠.
이해하기도 쉽고.
안도현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읽으면 확실히 와닫죠..
그리고 이해하게 되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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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3/16 11:34

입 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래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
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
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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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98년도에 이 책을 사고서는 그냥 던저 놔 버렸었어요
도통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었거든요

입 속의 검은 잎..이라고 하는데 검은 잎이 뭘 말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큭..
그래서 신경질도 나고.. 전체적으로 넘 우울하고 해서.그냥 쳐박아뒀죠

근데 어제 어떤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 시를 프린트 해서 나눠주셨는데..
4년 만에 ..그렇게 모르겠던 그 잎이 뭔지 보였습니다.
그 간단한 것을 바보같이 ..

4년전의 저는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없는 틀이 머리속에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거죠..

지금도 솔직히 80년대의 우울함을 나타내는 작품들은 느낌이 팍 와닿지는
않네요
그래도..이젠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눈치로 때려서 쬐금..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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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2/09 20:53

만남

-- 이재기

윤회의 굴레 속에 은하 별들의 충돌
그 빛이 우리들의 만남 이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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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간단하죠?
새해복마니 받으시구
멋진 한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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