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3/18 19:58
연탄 한 장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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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집 중에서 첫번째 1을 안도현이 차지하고 있네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개인적으로 참 괜찮다고 생각한 시집입니다.
전 형광펜으로 괜찮은 문구를 그어가며..참 잼있게 읽었는데
사서 봐도 결코 아깝진 않은 책이죠.
이해하기도 쉽고.
안도현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읽으면 확실히 와닫죠..
그리고 이해하게 되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