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신달자. 지극히 고통스러운 그녀의 몸짓 속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이 들어서는 공부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나보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던 내게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라는 말은 무언가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질적으로 책과의 만남을 십여년. 아니 그 이상 멀리하고 있었기에 신달자.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도 없었고 알려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며 그녀의 삶에 빠져든 나는 그 고통과 희열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그녀가 손자 손녀를 볼 때까지 말이다. '그 남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글들이 다소 무거웠으며 아려왔다. 그 남자. 신달자의 남편이다. 남편의 죽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이들면 없는 것보다는 등 긁어줄 사람이 있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던 그녀의 고백들...결코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죽음과 별개로 살아 갈 수는 없다. 과거로 부터 모든 인간이 죽어왔으며 현재도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래서 예로부터 부와 권력을 이룬 사람들은 불로장생을 꿈꾸었나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매개체로 끝이 난다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부유했던 그녀는 무신론자였으나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면서부터 무엇인가 존재를 찾게 되었고 결국 기댈 곳 없던 그녀는 어느날 성당에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상과 눈이 마주침으로 인해 눈물을 콸콸 쏟아내었다. 그렇게 그녀는 신앙을 시작했다. 역시 사람이란 좋을 때는 그저 자신이 한 일 인양 즐기며 지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신의 존재를 찾게 되는 것일까?... 가슴 아픈 일이다.

 

그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아 선호사상이 저 밑바닥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물론 그녀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남편은 가부장적 생활에 살던 습관으로 그녀를 종부리듯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신혼여행에서 숙박을 해결할 곳으로 정한 곳이 지저분한 여관방이라니 할 말 다하지 않았는가. 이제 아껴야 한다나 뭐라나... 그런 남자와 평생을 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과거 어머니들이 생각나 마음이 시렸다. 애정없는 사람과 살아가는 그녀가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병수발로 보낸 세월이 결코 적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 위로 두 딸을 두고 이제 세 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아빠를 잃게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을 걸고 남편의 목숨을 지켰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남편의 냉대와 상처뿐이라니 쓰라린 현실이다.

 

남편의 병수발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주변인들의 참견이었다. 어쩌면 자기네 들이 모두다 의사인것마냥 구는 것인지.. 그들이 말하는 모든 방법들을 총동원하느라 그녀는 몸이 열개라도 부족했다. 솔직히 우리는 문병을 가서 뭐가 뭐에 좋다는 말을 흔하게 중얼거리고 마는데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병수발을 드는 이들에겐 가혹한 짐이 되어 그 방법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아프고 힘든 생활에서도 유일한 희망은 그녀의 3살짜리 딸아이였다. 그 아이로 인해 아픔을 잊고 살았다. 그녀는 아이들로 인해 살았으며 아이들은 그녀를 지탱하는 틀이 되었다. 그만큼 가족이란 핏줄로 묶여 있어서일까?... 그것은 물질로도 어찌 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듯 싶다.

 

그녀의 남편을 겨우 겨우 걸어다니고 말도 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두었더니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그리고 아픔에 우울증을 앓았으며 딱 죽지 않을만큼만 자살소동을 하는 통에 세번이나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던 그녀... 자존심밖에 남지 않았던 그녀는 그것이 치욕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남편이 죽고 회상을 하며 그 모든 아픔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그리울 뿐이라고 한다.

 

삶이란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것일까?.. 현재의 아픔도.. 힘겨움도..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에 메여 눈물 짓고 아파하기 보다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인해 자신을 더욱더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가며 삶과 합동하는 자세로 살아가리라.

 

<책속의 말>

생과 사는 그렇게 가깝고 먼 것이었다. 죽음은 그저 끝이고, 사라지는 것이고, 비어 있는 것이다. 없다는 것. 그 사실만이 그 현실을 설명해 준다. 죽음에는 찬사도 있을 수 없다. 죽음을 철학으로 말하지 마라. 죽음은 그저 허망, 죽음은 그저 배반 그 자체로 끝나는 것 뿐이다.

 

이 사람을 살리자. 이 사람을 살리자. 내가 이 사람을 놓지 않으면 절대로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살리겠다. 이 사람을 살리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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