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의 촐라체는 무엇인가.

 

촐라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던 나는 단순히 서체인줄로만 알았다. 촐라체?...'무슨 글씨체 이름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지한 나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책 소개를 읽어보면서 촐라체란 그런 의미가 아닌 하나의 산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많은 암벽등반가들이 오르는 그런 곳으로 에베레스트산 우측에 있는 산이다.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5천 미터가 넘는 산도 일반적으로 '마운틴'이 아닌 '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스런 굽잇길도 그저 언덕이라 부르며 쉽게 넘고자하는 그네들의 낙관주의가 박혀있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볼때 작은 구멍가게조차도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법하다.

 

'촐라체'는 한 사람의 시점으로 책을 서술해 나간 것이 아닌 박상민과 하영교, 그리고 캠프지기. 그렇게 세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해 나갔다. 그러다보니 한 권이 아닌 세권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슬쩍 들기도 했다.

 

여기서 박상민과 하영교는 씨가 다른. 그러니까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제지간이다. 집나온 어머니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상민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상민을 낳고 살다가 영교의 아버지와 바람나서 집을 나간 것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가 좋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영교는 부친이 진 빚으로 인해 사람 하나를 칼로 찌르고 도망나와 상민에게 왔던 것이었다. 상민 또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신혜와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형인 상민에게 앙심을 품은 영교. 그러면서 빚어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의 처절한 형재애가 느껴지는 책이다.

 

그렇다고해서 캠프지기만 좋은 세월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과거 잠깐 함께했던 여인이 떡 허니 자신의 아이라고 던져주고 가버린 후로 결혼도 깨지고 그렇게 아들. 현우를 키우고 있었지만 별안간 그가 허전하다며 그를 버리고 산으로 가버린다.

 

이렇게 세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써내려간 글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며 끌어주는 관계속에서 다시금 서로의 중요성을 깨닫고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과거 '일 분 후의 삶'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며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이렇게 어려운.. 그리고 힘겨운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촐라체를 읽으면서도 이런 고생을 왜 굳이 해야만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네들에게는 그네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었으리라..그리고 그들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보내준 메시지들은 내 가슴에 차곡 차곡 쌓여서 빛을 발하며 나의 촐라체를 찾게 만들며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듯 싶다.

 

 

<책속의 말>

소설 <촐라체>에서의 촐라체는 그런 의미에서 '산이며, '꿈'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며 온갖 카르마를 쓸어내는 '커다란 빗자루'이다.

 

'벽과 나 사이에선 솔직해야 해. 속임수는 안된다구. 난 할 수 있다. 소리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할 수 있긴 개뿔이나, 뭘 할 수 있어? 자신없음 자신 없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는 것, 그 정직함이 뭐라고 할까, 곧 클라이밍의 자유라고 할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클라이머에겐 적어도 세 가지 용기가 구비 되어야 한다는 김선배의 말도 이제 떠오른다. 가정과 사회를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가 그 첫 번째이고,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만한 베짱이 그 두 번째이고, 산에서 돌아오고 나서 세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의지와 열망이 그 세번째 용기이다.

 

속설에 따르면 촐라체는 '호수에 비친 검은 산'이라는 뜻이다. 나는 검은 산의 그림자가 호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내려와 덮이고 있다고 느낀다. 그곳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아주 고요하고 따뜻하다.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축적한 것은 소모되고

쌓아 올린 것은 무너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사람은 죽음으로 걸어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처럼 뜨겁고 단단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 어떻게 절망을 쫓아 산에 오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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