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 남겨진 시간
노은주 지음 / 징검다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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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데...죽을만큼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아픈거죠?...'

 

'우리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린 아픔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이를 교통사고, 지하철 사고, 암 등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아프고 시린 장면들이 읽는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또한 죽어가면서 살고자하는 욕망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 반대로 이루어지면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심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건강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전에 읽었던 '사랑한다, 더 사랑한다', '1리터의 눈물','엄마의 약속' 등의 책들이 떠올랐다. 이것들은 실제 병마에 힘들어 하던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베어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고 저리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에겐 뜨뜻 미지근한 감사를 느끼게도 해 줄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감동을 줄 것이다. 단지 다른 여타 서적과 다른 점은 단지 병마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고'라는 아픔의 사건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녀. 수아라 불리는 여인.

결혼한지 1년 남짓된 새댁인 그녀는 출장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급속보로 무궁화호 전복 사고가 알려졌다. 지반 침하로 인한 철로 지반이 내려 앉으면서 열차가 전복된 것이다. 남편이 올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타고 온다는 열차였다. 믿을 수 없었다. 뉴스를 끄고 남편. 태수씨에게 올 전화를 기다린다며 남편의 안부를 물으려 전화하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끊었다. 상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전화가 왔다. 부산 B병원이란다. 그가.. 사랑하는 그이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병원을 가서 보니 남편의 동생과 시어머니가 와 있었다. 시어머니는 수아에게 천살이 있어서 남편을 잡아먹은 것이란다. 그래서 그리도 반대했던 결혼.. 정말 자신이 남편을 죽인 것인가.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으면 살았을까... 시어머니를 부여잡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처지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편 잡아 먹은 여자... 태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심하게 훼손돼서 알아보지 못한다며 말리자 이내 포기해버렸다. 손만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 2년. 직업상담사로 일하는 그녀는 많은 모습들을 보게 된다. 죽어버린 남편 대신 실업수당을 받으러 왔지만 받을 수 없다는 말에 풀이 죽어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여인. 자신도 그 여인의 처지를 알기에 선뜻 가라고 하지도 못하고...그러던 어느날 직장동료인 김계장의 상가집에 가게 되었다. 아내가 죽었단다. 아내는 암 세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고통에 못이겨 자신보고 죽여달라고 했다한다. 그리고 살아있을때 잘하라고 말했다. 수아는 죽음의 그늘을 또 한번 느끼면서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결코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산 사람은 죽음을 모르고, 죽은 사람은 이미 삶을 초월해 버렸다는 차이가 있을뿐 죽음과 삶은 인간이 갖는 인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의식하고 살지 않을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삶과 죽음..인간이란 덧없는 존재요. 한정된 삶을 무한한 삶인 것처럼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또 흘러도 수아에게 있어서 태수의 자리는 잊혀지지 않고 가득 남아 그녀의 삶을 흐뜨러뜨린다. '나는 죄인이다. 처벌도 받지 못하는 죄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무지함 투성이의 죄인'이라며 자책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핏기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조용히 혼자서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를 여러번 보았던 김계장은 자신의 아내가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암말기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그곳에서는 수녀님들과 다른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기적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곳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치료비가 없는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금전우선주의 사회의 슬픈 이면도 보인다.

 

미사에 처음 참석한 수아.. 얼마 지나지 않아 비내리는 날 전철이면 두번에 갈 것을 여러번의 버스를 갈아타며 비를 맞고 흠뻑 젖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수녀님은 "호스피스 활동은 아픈 사람을 단순히 간병만 하는 행위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서붜 영혼까지 보살펴드리는 일이지요. 이해가 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하는 일은 죽어가는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따뜻하게 사랑해주는 일입니다." 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며 자신을 찾아온 연유를 물었고 수아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이유를 물어왔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지만, 불쾌함을 나타내며 가려는 그녀에게 자신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우선 교육을 받은 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한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 두고, 호스피스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워 청소나 빨래등의 일만했다. 어느 순간 환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리 없었다. 50대 아주머니. 변형자씨 그녀도 암환자다. 그녀는 사회에서 심리학으로 꽤나 유명한 사람으로 교수생활을 하며 텔레비젼에도 여러번 출연한 사람이었다. 암환자는 정상인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다. 자신과 다르며 건강하며 예쁘다는 것이 증오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그래서 봉사자들은 옷도 그냥 깔끔하게만 입을 뿐이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스킨 로션만 향이 나지 않는 것으로 바른다. 도움을 주고 싶어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도리어 면박만 당하던 그녀는 수녀님께 방법을 물었고, 조용히 그녀의 자리를 맴돌며 도울 일만 도왔다. 그러던 어느날 변형자씨가 말을 걸어왔고 그것을 계기로 둘은 친해졌다. 아니 서로 의지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웠을 것만 같던 사회생활이 아픔으로..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져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같은 교수로 바람난 남자다. 아이들은 대학생 딸아이와 중학생 아들이 있다. 둘은 엄마를 끔찍히도 사랑한다. 그런 아픔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잘 살수 있도록 아~주 긴 장문의 편지(?)를 책으로 써서 남겨줄 만큼 자식 사랑이 투철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죽음의 그늘이 찾아왔다. 자신의 남편이 아닌 또 다른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찼던 그녀는 괴로워했지만 변형자씨의 마지막 눈을 감겨주며 그 후의 편안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또 암환자. 표범같은 눈매를 가진 홍종욱이라는 남자. 그녀와의 첫 만남은 홍종욱이 병원 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때였다. 다가가기 힘들었고 간호사 외에은 의사도 봉사자들도 옆에 다가서지도 못하게 하는 그. 하지만 오기로 수아는 그에게 윽박을 지르면서 까지 도움을 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마음을 터 놓은 두 사람.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말기 암 환자. 하지만 다른 어느 환자들과는 달리 차라리 빨리 죽게 나두지 왜 죽어가려고 하면 살려놓는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과향이 나는 때에 수아에게 자신과 동행해달라고 한다. 그의 몸이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둘이서 어디를 가자는 말인가. 어렵게 결정을 내렸고 둘은 홍종욱의 추억이 담긴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그의 과거...사업때문에 잠시 쉬러간 곳에서 급하게 올라오다가 휴게소에 들를때 차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니 아이. 시은이를 데리고 내리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혼자 나온 아이는 어느 순간 고속도로 가운데에 있었다. 그걸 보고 놀란 아이 엄마는 아이를 향해 달렸고 아이는 엄마를 보고 달렸다. 둘은 그렇게 차에 치어 죽었다. 한 자리에서 둘을 잃었다. 그후 그는 사업도 정리하고 그렇게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있음이 고통이었다. 이제 아내와 딸을 따라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고통만 다가오고 죽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수아 또한 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한다.

 

병원으로 돌아와 자신을 피하던 홍종욱. 그를 오해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또 다른 죽음으로 힘들어하지 않게끔 피하고 다녔다는 것을 안 후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는지 모른다. 태수가 떠올랐다. 태수가 홍종욱을 보내준 것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으라고.. 수아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그런 메시지를 전해주려 온 것이었다. 홍종욱..그도 죽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소아암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써달라고 내놓고 갔다.

 

그리고 얼마간 있은 뒤 박형숙의 딸. 민영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아직은 아빠와 아줌마. 아니 새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그리고 엄마 없이 살아갈 딸과 아들을 위해 작은 것 하나하나 기록을 해 주고 간 엄마가 고맙고 보고 싶다고.. 그리고 열심히 살것이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은 환자에게는 그 어떤 명약보다 좋은 엔돌핀이다.

 

삶은 끝이 없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끝나 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작년.. 그러니까 2007년. 할머니께서 갑자기 별세를 하셨다. 직장에서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왔지만 가는 길 뵙지도 못했다. 사망진단이 내려졌지만 그냥 어느 순간 일어나서 말씀하실 것만 같기도 했다. 다들 고통없이 편히 가셔서 잘된 것이라고 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못해드린 것들이 너무 많아 죄송스런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끝난 것을 후회해서 무엇하겠는가. 살아생전 효도를 해야하는 것이지..그리고 살아생전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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