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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후궁들 ㅣ 표정있는 역사 8
최선경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평점 :
이 책은 궁궐 안 깊숙이 감춰진 후궁들의 삶을 통해 잃어버린 조선의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취지하에서 쓰여졌다. 후궁의 이야기는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계층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 했다. 가부장적인 그 시대에서 여성들의 자료를 찾는 것이 지은이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조선의 왕 단종 · 연산군 · 광해군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는 모두 정비가 아닌 후궁의 아들이었다.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는 정통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최고 권력자의 내면에 연민과 콤플렉스를 남긴다.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어머니와 아들의 비통한 사연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역사서는 여타 다른 책들보다 유독 나의 눈길을 끈다. 아마 그것은 우리네 조상들이 살아온 그림자를 밟아보며 그 시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살려내주기 때문이리라. 어느 순간 손에 닿은 '왕을 낳은 후궁들'. 제목만큼이나 호기심을 자아냈고 숨가쁘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근래들어 텔레비젼을 보면 유독 우리나라 과거를 심도있게 다룬 드라마들이 많다. 전부터 사극은 있었지만 태왕사신기, 정조대왕 등 많은 인물들이 회로를 타고 안방극장에 찾아왔었다. 그런 흐름에 발을 맞춰서일까? 여기 저기 우리나라 과거사를 다룬 책들도 참 많이 나왔다. 그런 덕분에 요즘엔 마음이 훈훈하고 기분 좋은 바람까지 마음속에서 부는 듯 하다.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들은 '아, 만약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했던 것이였다. 솔직히 가슴아프기도 했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역사상 성군으로만 느끼고 멋지다 생각했던 성종마저 나의 배신을 때리다니...실로 눈물이 앞을 가릴만큼은 아니지만 씁쓸했다.
과거시대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타국에서도 여인들의 자리는 항상 찬밥신세였다. 부친이나 남편, 혹은 아들의 자리에 따라 자신의 자리도 달라지는.. 그러면서도 정치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었던 비통한 여인네들의 가슴아픈 한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었다.
얼마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아왔던 '왕과 나, 김처선'에서 폐비 윤씨는 가녀리고 연약하면서도 순박하고 착하지만 정치와 세력의 희생물이 된 것처럼 나왔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니 폐비가 될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 그녀만을 탓할 수 있을까?.. 장희빈은 권력을 위해 악착같은 요부가 되었지만 윤씨는 달랐다. 그저 남편 성종만을 바랐던 한 여인이었을 뿐이었다. 윤씨는 성종보다 12살이 많은. 요즘 말로 연상의 여인이었다. 오랫동안 총애는 계속 되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후궁들에게로 눈을 돌린 성종. 세명의 정비에 후궁이 열명, 자손만도 16남 12녀로 여색을 즐겼던 성종. 남성의 바람기는 인정되고 여성의 질투는 용납되지 않는다(?) 어찌 그녀의 투기를 그녀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희대의 여인으로 불리던 장희빈. 왕비의 자리까지 오르고 아들을 낳아 세자로까지 책봉되었지만 질투심과 시기심으로 인해 후에는 그 모든 것이 물거품되어 사약을 받게 되던날. 그녀는 청하여 자신의 아들(경종)을 불러 아래를 잡아늘여 성불구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장씨의 행동을 보면 악독스럽다(?)라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행동은 말도 안되는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왕과 왕궁에 대한 무언의 시위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외에도 몇몇의 여인들과 궁중 생활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궁생활이 화려함과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암투가 벌어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많은 여인네들의 혈투장으로 느껴졌다. 왕의 사랑을 받고 아들을 낳고 살면 모든 것이 다 좋았을 꺼라는 막연한 그런 기대심리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어떤 남성들은 과거처럼 일부다처제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어떤 여성들은 일처다부제를 하는 건 어떻냐는 핀잔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도 여성도 둘의 관계에서 의지를 하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 따뜻한 배려를 한다면 사랑나눌 이를 양으로서 판단하지는 않으리라 싶다.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간에 그저 그냥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따뜻한 살림을 꾸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은 아닐까.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