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휴가>에 <영원한 나그네>라는 에세이가 있습니다. 미시마가 스승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과 삶을 평한 것으로 유명한 글인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때, 선생의 내면에 인생에 대한 확신이 생겨난 것 같다.
... 정념이 정념 그 자체의, 감성이 감성 그 자체의, 관능이 관능 그 자체의 법칙을 유지하고 그곳에 머무는 한, 파멸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허무 앞에 팽팽히 쳐진 한 가닥 비단실은 지옥의 폭풍우에 휩쓸리더라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가와바타의 문학을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함께 평한 미시마의 독특한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미시마는 가와바타를 “문체를 갖지 않은 소설가”라고 평했습니다. 평생 집요할 정도로 ‘문체’에 대해 떠들었던 미시마에게 그런 가와바타는 이해할 수 없는 작가였던 것 같습니다.
미시마는 문체를 "세계를 해석하려는 의지이자 열쇠”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해석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지력’이 필요하지만, 지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감수성’을 따르며, 사물을 해석하지 않고 즉물적으로 판단한 가와바타가 그에게는 수수께끼 같았던 겁니다.
자신의 감수성을 그토록 없애버리려고 했던 미시마의 눈에 그의 문학과 삶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저는 끝내는 미시마가 자신의 모습을 스승에게 비추어보며 뭔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관념과 이론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모순에 빠지거나 헤매게 할 때가 있으니까요. 미시마의 말처럼 어느 쪽이 안전할지는 모르는 거죠.


선생이 문체를 갖지 않는 소설가라는 것은 선생의 숙명이고, 세계 해석의 의지의 결여는 어쩌면 단순한 결여가 아니라 선생 자신이 적극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추상적 관념의 성곽에 갇힌 사람의 눈에는, 선생의 삶은 허무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안전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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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곡가 말러가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동시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빛을 본 예술가들은 정말 많습니다. 고흐, 카프카, 에밀리 디킨슨, 멜빌...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작가만 해도 여럿이네요.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시를 쓰는 소년>에 실린 <곶 이야기>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그래서 표제작으로 싣기도 했는데 낭만주의 미시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 소설은 미시마가 대학 1학년생일 때 군수 공장에서 집필한 것으로, 그 무렵 절박한 심정으로 거의 미친 듯이 소설 집필에만 매달렸을 시기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곶 이야기>를 포함해 그때 지은 몇몇 작품을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녔을 때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소설가의 휴가>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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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웃지 못할 이야기인데, 훗날 연상의 친구가 된 나카무라 미쓰오 씨가 당시 지쿠마쇼보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그 원고들을 읽고 마이너스 120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원고가 세상 빛을 볼 리가 만무했으니,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허사로 돌아갔고, 결국은 원고를 돌려받았다. ....
나도 착실히 공부해 공무원이 되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재밌는 건 그 평론가는 후에 열렬한 미시마의 팬이자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미시마는 다행히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자리 잡게 되니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작가로 불리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작품일 텐데... 하는 생각에 이런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참 뜻밖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빛을 못 보는 작품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후 세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작품을 매의 눈으로 찾고 싶은 마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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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휴가>의 여러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다자이 오사무와의 만남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다자이를 싫어한 이유를 곳곳에서 펼치는데, 미시마의 생각에 동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여리고 나약한 다자이가 저는 좋습니다. 하지만 미시마가 다자이를 싫어한 것도 자신이 다자이처럼 여린 면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자이가 그걸 이겨내길 바랐다고 생각해요. 책 속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다자이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자이가 가진 성격적 결함은 적어도 그 절반은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 규칙적인 생활로 나을 수 있었다. 생활 속에서 해결해야 할 일로 예술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

조금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낫고 싶어 하지 않는 병자는 진정한 병자의 자격이 없다.


                                                             - <소설가의 휴가> 중


사실 다자이가 무명 작가였다면 달랐겠지만 전후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였으니 내내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같은 극작가이자 친밀한 관계였던 테네시 윌리엄스가 일본에 왔을 때 둘이서 대담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어김없이 다자이 얘기가 나옵니다. 테네시는 일본문학과 일본 고전에 조예가 깊었고 노가쿠를 바탕으로 한 희곡을 쓰기도 했어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재밌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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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 일본 문학의 현실 개념이나 비극의 감각이 미국 남부 문학과 매우 가까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카슨 맥컬러스의 소설을 연상시키거든요. <사양>도 마찬가지고.

미시마 : 다자이 얘기가 나왔는데, 다자이를 숭배합니까?

테네시: 대단히 숭배합니다. 당신은요?

미시마: 예술가로서는 숭배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다자이 오사무는 정말 싫어했어요. 딱히 작가로서의 경쟁심 때문이 아니라, 그냥 싫은 겁니다. 제가 다자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취해 있었죠.

테네시: 그게 일본에선 드문 일인가요? 미국에서는 아주 흔한 일인데요.

미시마: 제가 다자이를 왜 싫어했느냐 하면, 그 감성이 지나치게 낭만적이었기 때문이에요. 다자이는 늘 푸념만 늘어놓는 성격이에요. 그리고 남을 원망하기만 하죠. 또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닙니다. 저는 그게 정말 싫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수성이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죠. 전 그게 정말 괴로웠어요.

테네시: 그걸 숨길 수 있나요? 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을 상처 입히고, 자신의 몸을 베어 거기서 흐르는 피를 타인에게 뿌리는 것 같은 존재잖아요. 그리고 언제나 꿈을 꾸고 있고요.

미시마: 저는 테네시 당신처럼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 좋습니다.

테네시: (웃음) 당신이야말로 개성이 있죠. 제 인품은 싫어합니까?

미시마: 아니요, 좋아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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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 대한 테네시의 말이 좋네요.

지나치게 낭만적인 감성 때문에 다자이가 싫었다고 말하는 미시마. <소설가의 휴가>에는 미시마가 자신의 낭만적인 감성을 얼마나 싫어했고, 그걸 얼마나 없애버리려고 애썼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년의 미시마는 결국 자신은 낭만주의자인 자신을 버릴 수 없었다고, 그것이 자신이 돌아갈 고향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만년의 미시마는 다자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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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휴가>를 펀딩해주신 분들께 책을 다 배송해드리고 이제 좀 여유를 부려야지 해도 또 밀린 일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도네요...

<시를 쓰는 소년>과 <소설가의 휴가>는 처음부터 함께 준비한 거라 디자인도 통일하고 출간일도 너무 차이 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일정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무사히 두 책을 독자님들께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번 책은 처음으로 서점 펀딩을 이용해봤는데 작은 출판사로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두 권의 미시마 책이 나오고 마침 설 연휴가 시작되었으니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소한 책 선물 이벤트를 할까 합니다.

<시를 쓰는 소년>과 <소설가의 휴가>를 구매해주신 분 중 몇 분을 선정해서 원하시는 시와서의 책 한 권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이번 책으로 시와서를 처음 알게 된 독자님도 계실 텐데 시와서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분도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로 신청해주시고 원하시는 책 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책 구매한 것도 함께 알려주시면 됩니다.

저는 요즘 봄에 어울리는 책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봄이 훌쩍 다가온 것 같네요.

아, 안 되는데... 하면서도 창밖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봄이 성큼 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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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에세이 선집 <소설가의 휴가>는 제목만 봐서는 머리 좀 식힐 겸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을 때 읽는 에세이 같지만, 사실은 두뇌 회전을 풀가동시켜야 넘어갈 수 있는 페이지가 많습니다.
일기 형식이지만 사적인 일상은 살짝 다루고 주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비평이 펼쳐져요. 다루어지는 작품도 동서고금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그래서 작업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단 제가 읽어보지 않은 작품도 많았고,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에요. 이거 작업하면서 늘 느끼지만 일본의 문학 번역에 대해서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 번역서에는 지금도 없는 게 50년대, 60년대에도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책에서 다루어지는 글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작업하면서 이번에 읽은 것 중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 하나가 <아돌프 / 세실>이라는 소설입니다.
뱅자멩 콩스탕이라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소설가가 쓴 소설인데 무려 200년도 더 전의 작품이에요. 프랑스 심리소설의 걸작이라고 불린다는 소설인데, 저는 작품도 작가도 처음입니다. 미시마의 글을 작업하는데 너무 궁금해서 작업하다가 읽었는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 여자에게 반해 열병처럼 빠져 있다가 서서히 그 감정이 가시면서도 연인을 떠나지도 못하는 이 어찌할 수 없는 청년의 심리를 어찌 그렇게 절묘하게 그렸는지...

미시마의 표현이 재밌습니다.
“무척이나 바쁜 정치가가 쓴 소설, 게다가 작가 자신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후세의 평가에 의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기구한 우연으로 태어나 남겨진 듯한 인상을 준다.”
“이토록 몽상을 모르는 분석이 어떻게 해서 에세이나 격언의 형태가 되지 않고,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돌프》의 희귀한 점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도저히 표현에 이르지 못할 성질의 것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비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미시마는 이 작품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을 만한 소설”이라고 평했어요. 저도 읽고 나서 미시마의 생각에 동감했습니다.

국내에는 <아돌프>만 실려 발표된 것도 있고 <아돌프/세실>로 두 작품이 실린 것이 있는데 전 두 작품이 실린 것으로 읽어봤어요. 미행에서 출간된 건데 번역이 참 좋다고 느끼며 읽었습니다. 미시마의 에세이에는 두 작품을 함께 평하고 있어 이렇게 출간되어 있어 참 고맙고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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