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말보다 책과 글에 더 혹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덕 본 것도 있고 손해 본 것도 있다. 책은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이다. 그래서 책이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사람도 그런 방향으로 가서, 갈 데까지 가보는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만났던 책들이다.
사업은 왜 하고 회사는 왜 다니나? 돈 벌러 사업하고 돈 벌러 회사 다닌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상식`을 넘어서라고 한다. 이윤추구를 넘어서 비전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비전기업`이 이 책의 주제다. 그런데 돈 벌자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도 안 되는 판에 비전추구라니, 말이 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비유하자면 이윤은 산소와 같단다. 드러커의 말이다. (이 책 저자들과 드러커는 이 점에서 거의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인용함). 산소가 없으면 인간이 죽고, 이윤이 없으면 기업이 도산한다. 그러니 인간이 산소 없이 살 수 없듯이, 기업은 돈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산소 없이는 살 수 없다 해도 숨쉬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사는 데는 숨쉬는 것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이 재미와 의미에 해당하는 것이 기업의 비전이다. 기업도 단순히 돈 버는 것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한 개인에게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유용하듯이, 인간집단의 유기적 조직체인 기업에게도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 꼭 필요하다. 철학적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인간은 멋없고 덧없다. 숨쉬면 뭐하고 돈벌면 뭐하는가. 인간의 집합체인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개인에게 뚜렷한 인생관과 개성이 필요하듯이, 기업에게도 철학이나 신조, 목적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물론 철학이나 비전 없이도 기업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정말 큰 돈을 버는 기업은 거의 예외없이 이 책에서 말하는 `비전기업`이다. 큰 돈을 재미있게 벌려면, 돈 그 자체에서 한 발짝은 아니라도 반 발짝 정도는 떨어져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돈에 휘둘리지 않는다. 돈에 휘둘리면 돈을 벌겠는가. 돈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기업의 비전이요 사명이요 존재목적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나서 저자의 매력에 빠지면 내친 김에 이 책 한 권 더 읽어도 좋을 듯하다. 겹치는 대목도 꽤 있지만 다루는 화가의 폭이 넓고, 이 책 역시 저자의 실력이 잘 발휘되었다.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여 도출해낸 그림 해석이 재미있고 설득력 있다. 인쇄 잘 된 그림을 책 뒤에 큰 크기로 모아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대신 중간중간에는 인쇄 질이 떨어지는 작은 그림들을 배치했다.
우리 옛 그림 보는 눈을 시원하게 틔워주는 책이다. 강사의 설명을 따라 김홍도의 그림들을 보다 보면, 이제껏 잘 안다고 생각했던 똑 같은 그림인데 실은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무지의 깨우침은 곧 바로 새로운 전통미학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조선시대의 선비취미가 창조한 위대한 예술의 세계를 이만큼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입문서로 당대 최고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의 예술이 특히 더 잘 공감되며, 조선시대의 미술이 고상한 철학적 기초 위에 이룩된 것임을 설파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오늘날 맹활약 중인 후대 미술사학자들과 미술감식자들도 따지고 보면 클 틀에서 이동주가 제시한 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가`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스스로 좋아서 옛것을 모으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전통미학의 큰 깨우침을 얻었다니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