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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ㅣ 이산의 책 1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평점 :
천명에 대한 자각과 탁월한 통치능력을 겸비한 강희제는 맹자가 꿈꿨던 왕도나 플라톤이 꿈꿨던 철인왕(philosopher king)에 근접했던 현실의 위인이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이 책을 강희제의 1인칭 서술시점으로 풀어나간다. 중앙일보의 조우석 기자가 썼듯이, 이 책을 읽으면 강희제와 독대하는 느낌이다.
얼마전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을 읽고나서부터 동아시아의 18세기에 관심이 가게 되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일단 당대의 사실을 풍부하게 접해야 하는 내 관심사에 딱 부합하는 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훌륭하며 특히 강희제의 개인전기로서 좋다. 18세기를 순례한다면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여정이다.
천하의 근심을 짊어진 CEO 군주로서의 애환과 괴로움을 털어놓는 강희제의 글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대략 이런 글이다. 현실을 모르는 선비들이 옛 황제 중에 일찍 죽은 이들에 대해 지나치게 쾌락을 추구하고 무절제하여 그리 되었다고 하나 이는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들은 아마도 과로사했을 것이다. 군주로서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려면 혹독하고 과중한 스트레스와 업무를 견뎌내야 한다. 너희가 어찌 그 괴로움을 알겠느냐. 너희 신하들은 벼슬 살고 싶으면 살고, 늙어서 떠나고 싶으면 떠나 고향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말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는 늙고 힘들어도 떠날 곳이 없다. 죽는 날까지 천하를 근심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