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al (더 골)
엘리 골드렛 외 지음, 김일운 외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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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제가 발령 받은 곳은 지방 소재 대기업 외주관리부였습니다. 본사의 주문을 받아 협력업체에 발주하여 생산에서 출고까지 관리하는 부서였습니다. 어려움이란 우선 공장이나 상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모든 게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사회초년생으로 연고자 한 명 없는 지방 도시에서 자취생을 겸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모든 게 생소할 수 밖에 없으니 업무 전반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던 것이, 그 부서는 제가 지원했던 부서였고 제가 하는 업무는 인문계 고졸 사원들도 훌륭하게 해내는 업무였던 것이죠. 발령 후 한 달이 지나자, 거기 가서 일을 배워야 나중에 훌륭한 영업사원이 될 수 있다던 회사선배들의 말이 모두 거짓으로 생각 됐습니다. 입사동기들은 뽀다구 나게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에어콘 빵빵한 사무실에 앉아 외국 바이어들과 통화하고 팩스 쓰면서 멋지게 일하는데 저만 폭염 속에 작업복 입고 땀 뻘뻘 흘리며 말 안 듣는 공장들을 돌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속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 보다도 제가 정작 견디기 힘들었던 건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야 처음 그 부서를 지원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고 각오했던 바라 신입사원의 패기로 나름대로 즐길만 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업무가 제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말이 외주관리지 실상은 본사와 협력업체 양쪽에 끼어 늘 깨지는 자리였습니다. 본사 영업사원들의 요구와 협력업체의 상황을 잘 조화시켜 원활한 판매를 돕는 게 외주관리 본연의 업무였는데 항상 본사의 요구와 현장의 현실 사이엔 조화하기 어려운 큰 괴리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당시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본사의 영업상황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품이라 비수기엔 공장이 조업을 줄이다가도 성수기에 접어들면 넘쳐나는 주문을 맞추지 못해 난리를 치는 상황이 반복됐는데, 제가 본사의 상황을 정확하게 몰라 미리 대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안다고 해도 별 뾰족한 방법은 없었겠지만 머리 속에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협력공장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수기엔 주문 더 없냐고 졸라대던 공장들이 성수기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싹 바꿔 말도 안 되는 납기를 제시하며 튕기기 일쑤였습니다. 어차피 외주공장이라 직접 관리할 수도 없지만 본사의 요구와 터무니없이 차이나는 납기를 조정하느라 하루하루가 전쟁통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본사와 공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꽉 막힌 생산의 병목을 뚫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업무의 주도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나는 이런 일도 하나 해결하지 못할까? 남들은 다들 나름대로 쉽게 해결하며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내가 무능한 걸까?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결국 2년 뒤,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사로 발령이 났고 해외무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사에서는 외주관리의 경험이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선배들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죠. 결과적으로 머리 속에 생산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저는 남들보다 뛰어난 영업실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사에 와서도 위의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더군요.
 
 외주관리 할 때보다는 전체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업무도 좀 더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생산과 영업을 두루 경험한 유리함을 활용해 좋은 실적을 올리고 그 때문에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이 늘 무거웠습니다. 더구나 업계가 사양산업으로 치부되고 있는데다 실제로 해마다 매출이 급감하는 추세였습니다. 진정으로 그런 상황을 반전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회사를 그만 두고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충무로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 제 나름의 필연적인 이유들은 있었지만 아쉬움은 컸습니다. 회사에 남아 있는 것보다 작가가 되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 보리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마음 속에 짐으로 남았습니다.
 
 아직까지 전 이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어떤 계기로 경영.마케팅 서적을 50여 권 읽게 되었습니다. 그 중 엘리 골드렛의 <더 골>을 읽고 매우 감명을 받았습니다. 엘리 골드렛은 이스라엘 출신 물리학자라고 하는데 TOC(Theory of Constraints :제약 조건 이론)의 제창자라고 합니다. 이 이론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만 세상 모든 것이 제약돼 있기 때문에 모든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하고 어떤 분야든 병목(Bottle Neck)이 생긴다는 걸 전제로 그 갈등과 병목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이론을 딱딱하게 소개하지 않고 소설 형식으로 풀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내용을 소개하긴 어렵고 쉽고 재미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쉽습니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게 2001년 이라고 하는데 원래 1984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그렇게 고민하던 때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후속편인 <It's Not Luck!>도 정말 유용한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단순히 경영상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사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매우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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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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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이 먼저일까요, 몸이 먼저일까요?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몰라도 몸 없는 마음이 있을 수 없듯 마음 떠난 몸도 이미 사람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은 알지 못하는 사이 슬며시 찾아옵니다. 살다보면 가끔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어느새 병든 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병든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어느날 몸이 제맘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맘에 병이 든 것입니다.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마음에 병이 든 다섯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날카롭고 뾰족한 것만 보면 무서워 견딜 수 없는 야쿠자, 공중그네를 탈 수 없게 된 곡예사,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신경정신과 의사, 똑바로 송구를 할 수 없게 된 프로야구 선수, 자신의 과거 작품을 기억할 수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직업에 치명적인 결함을 떠안게 된 다섯사람은 우연히 도쿄의 작은 이라부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아갑니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 이라부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신경과 의사 이라부가 근무하고 있는 신경과는 종합병원의 어두컴컴한 지하 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병원원장의 아들 쯤 될 것 같은 이라부는 목이 붙어버릴 정도의 이중턱에 100킬로그램이 넘을 듯한 거구의 뚱뚱한 사람인데 생긴 것 이상으로 하는 짓이 엽기적인 의사입니다.
 아무나 찾아오면 일단 주사부터 놓고 봅니다. 마치 주사 놓는 게 취미 같습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도 이라부의 주사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이 주사를 놓고야 마는 인물입니다. 이라부의 처방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제를 털어 놓으면 한마디로 그 문제를 제거해 버립니다. 뾰족한 게 눈을 찌를까 두려운 선단공포증의 야쿠자에겐 선그라스를 쓰라고 권하고 일탈하고픈 욕구 때문에 마음의 제어가 안 되는 의사친구에겐 자신이 나서 일탈을 부추기는 식 입니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인데 이라부는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다섯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용감합니다. 야쿠자의 보디가드로 따라가질 않나 뚱뚱한 거구의 몸으로 공중그네를 타질 않나 야구선수를 만나면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소설가를 만나면 소설가가 되겠다고 떼를 씁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의사인지 환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환자들은 이라부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라부가 시키는대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마음의 병도 고치게 되지요.
 
 사람은 정교한 기계와 같습니다. 아주 정교한 컴퓨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고장나기도 하고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도 컴퓨터처럼 가끔 새로 포맷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땐 이라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을 겁니다. 이라부를 알게 돼 즐거웠습니다. 저도 가끔 마음에 버그가 생기거든요. 이라부를 만나 다시 마음을 세팅하고나니 세상이 좀 더 밝아 보입니다. 살다보면 또 언젠가 마음에 병이 찾아오겠지요. 그 때에는 다시 이라부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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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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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두 권짜리 소설을 샀습니다. "내 이름은 빨강" 제목도 특이했지만 터키 작가의 소설이라서 망설이지 않고 샀습니다. 터키 소설은 읽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책은 첫 페이지부터 저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호기심을 확 불러 일으키더군요. 1591년 겨울 이스탄불, 술탄의 세밀화가 중 한 사람이 살해당해 마른 우물바닥에 떨어집니다. 첫번째 장은 바로 그 시체의 독백입니다.
  다음 장은 주인공 카라가 등장합니다. 세밀화의 대가인 에니시테의 조카이자 수제자였던 카라는 스승의 딸 세큐레를 사랑했다 미움을 받아 이스탄불을 떠났다가 다시 부름을 받고 12년만에 돌아옵니다. 두번째 장은 바로 카라의 독백입니다. 아하! 다중 시점으로 풀어가는 역사 추리 소설이라 이거지?
  어라! 그런데 세번째 장은 느닷없이 개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그것도 도무지 앞 장의 내용과 연관성도 없을 것 같은 개의 독백입니다. 이쯤에서 목차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1.나는 죽은 몸 2.내 이름은 카라 3.나는 개입니다 4.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5.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그제야 목차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책 제목이자 한 장의 제목인 "내 이름은 빨강"은 말 그대로 세밀화에 칠해진 빨간색의 독백입니다. 소설은 그런 식으로 사람과 사물, 심지어 그림 속의 인물들의 독백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근  한 달이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책을 던져 버릴 순 없더군요. 잠자리에 눕거나 화장실 변기 위에 앉으면 책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마다 한 장 씩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조금씩 읽어 나갔습니다. 보기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는 소설이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형식은 추리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 대한 사랑, 내가 속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사랑,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사랑,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사랑, 익숙한 것에 대한 사랑,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 나와 그리고 나 이외의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래 본 만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여운에 취해 며칠을 보냈습니다. 서평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했지 결국 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여운에 취해 지내다보니 그만 느낌의 끈을  놓치고 말았거든요. 스토리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느낌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며칠 전,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다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 났습니다. 문명의 차이는 우열의 차이가 아닙니다. 개인 사고의 차이도 역시 마찬가지죠. 나와 다른 사고를 두려워 하거나 열등하게 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제게 그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즈음해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덧붙임) 소설을 읽는 동안 이슬람 세밀화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소설은 제대로 된 세밀화가 삽화로 들어가 있어야 제 맛인데 출판사에서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혹시 이번 수상을 계기로 책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꼭 관련 세밀화를, 그것도 컬러로 넣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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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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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적인 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쓴 어린이 책입니다. 책은 세 편의 짧은 창작동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폭탄과 장군"은 전쟁과 핵문제를 다루고 있고 두번째,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은 타자에 대한 선입견, 편견, 차별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과연 세계최고의 지성 답게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짧은 얘기 속에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게 쉽게 쓴 글이지만 책 말미에 자세한 해설이 덧붙여졌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혼자 생각하기엔 주제가 너무 거대하고 무겁습니다. 부모가 함께 읽고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생각의 줄기를 키워갈 필요가 있는 책입니다. 애들한테 책 사 주기 전에 어른이 먼저 생각 좀 해야할 책입니다.
 
매 장 수록된 에우제니오 카르미의 예술적인 일러스트도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좋은 책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어른들이 먼저 읽어 봐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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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의 소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
티에리 르냉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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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이야기나 다 그렇듯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안 끝날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문장은 짧고 간결합니다. 시적인 묘사도 눈에 띄는데 왠지 먹먹한 아픔이 전해져 옵니다. 어린이 책이라고 가볍게 본 게 잘못이었습니다. 80쪽도 채 안 되는 이 짧은 소설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할 줄은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내용이 한 어린 소녀가 당한 성폭행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제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얼어붙은 운하는 얼어붙은 마음입니다.
 
  늘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했지만 실상은 반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질문이 귀찮아지고 함께 놀아주는 게 피곤했습니다. 쫑알쫑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는 아이들의 눈을 보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조리없는 말솜씨를 비난하기 일쑤였습니다.
 
  사라는 미술 선생님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어릴 때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것을 알게 된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엄마는 사라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아빠도 마찬가지,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하지만 차마 아이에게 물어보지 못합니다. 담임선생님도 20년 전 사라와 같은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애써왔던 그녀는 사라를 통해 과거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두려워합니다. 20년 전 그 때 운하가 얼어붙었던 것처럼 지금 운하도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얼어붙어 작은 배조차 다니지 못합니다.
 
  최근 제 마음도 얼어붙은 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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