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이맘때 두 권짜리 소설을 샀습니다. "내 이름은 빨강" 제목도 특이했지만 터키 작가의 소설이라서 망설이지 않고 샀습니다. 터키 소설은 읽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책은 첫 페이지부터 저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호기심을 확 불러 일으키더군요. 1591년 겨울 이스탄불, 술탄의 세밀화가 중 한 사람이 살해당해 마른 우물바닥에 떨어집니다. 첫번째 장은 바로 그 시체의 독백입니다.
  다음 장은 주인공 카라가 등장합니다. 세밀화의 대가인 에니시테의 조카이자 수제자였던 카라는 스승의 딸 세큐레를 사랑했다 미움을 받아 이스탄불을 떠났다가 다시 부름을 받고 12년만에 돌아옵니다. 두번째 장은 바로 카라의 독백입니다. 아하! 다중 시점으로 풀어가는 역사 추리 소설이라 이거지?
  어라! 그런데 세번째 장은 느닷없이 개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그것도 도무지 앞 장의 내용과 연관성도 없을 것 같은 개의 독백입니다. 이쯤에서 목차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1.나는 죽은 몸 2.내 이름은 카라 3.나는 개입니다 4.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5.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그제야 목차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책 제목이자 한 장의 제목인 "내 이름은 빨강"은 말 그대로 세밀화에 칠해진 빨간색의 독백입니다. 소설은 그런 식으로 사람과 사물, 심지어 그림 속의 인물들의 독백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근  한 달이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책을 던져 버릴 순 없더군요. 잠자리에 눕거나 화장실 변기 위에 앉으면 책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마다 한 장 씩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조금씩 읽어 나갔습니다. 보기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는 소설이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형식은 추리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 대한 사랑, 내가 속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사랑,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사랑,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사랑, 익숙한 것에 대한 사랑,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 나와 그리고 나 이외의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래 본 만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여운에 취해 며칠을 보냈습니다. 서평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했지 결국 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여운에 취해 지내다보니 그만 느낌의 끈을  놓치고 말았거든요. 스토리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느낌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며칠 전,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다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 났습니다. 문명의 차이는 우열의 차이가 아닙니다. 개인 사고의 차이도 역시 마찬가지죠. 나와 다른 사고를 두려워 하거나 열등하게 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제게 그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즈음해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덧붙임) 소설을 읽는 동안 이슬람 세밀화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소설은 제대로 된 세밀화가 삽화로 들어가 있어야 제 맛인데 출판사에서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혹시 이번 수상을 계기로 책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꼭 관련 세밀화를, 그것도 컬러로 넣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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