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콕 - Han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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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좀 우울한 영화라고 할까요!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예의 없고 개념 없고 싸가지 없고 뭔가 어설픈 슈퍼영웅 핸콕(윌 스미스)의 좌충우돌 개과천선 스토리라는 틀은 신선하지만 실제 영화의 마무리는 찌질합니다.
 기존 슈퍼영웅들에 대한 신선한 비틀기로 시작된 영화는 상당히 흥미진진한데 중반 이후 핸콕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상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핸콕의 정체성입니다. 거의 노숙자 수준의 외모에 매일 술에 쩔어 지내고 사건 해결이랍시고 민폐를 더 많이 끼치는 핸콕의 초반 캐릭터는 아주 신선합니다. 기존 슈퍼영웅의 이미지를 확 뒤집는 느낌이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근데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의 뭔가가 없습니다.
 숨은 사연은 알면 알수록 황당하기만 하고 감동이 없습니다. 핸콕의 커플 슈퍼여성으로 등장하는 메리(샤를리즈 테론)가 모든 의문을 풀어주는데 맥빠지는 결론입니다. 핸콕의 독특한 캐릭터가 그 자신에게서 연유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기에 재미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영화란 갈등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핸콕의 초반 캐릭터에 비해 갈등이 너무 약합니다. 이건 뭐 그냥 기억상실증에 걸려 우울하고 까칠해졌다는 결론인데 핸콕의 캐릭터에 비해 시시합니다. 이렇게 뒤틀린 캐릭터일수록 풍자 혹은 사회비판을 바탕에 깔고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흑인이고 교육도 못 받았고 아무 한테도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다던지 하는 상투적인 스토리가 오히려 더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마 윌 스미스와 샤를리즈 테론의 섬세한 연기는 볼 만 합니다. 평소 이미지와 달리 우울한 역을 맡아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연기가 일품입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추진력 없는 영화를 끌고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설마 속편 같은 걸 만들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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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이 - Eagle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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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겼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CCTV 설치가 대폭 늘어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선 좋은 일이지만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선 약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잘못한 일이 없더라도 누군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나도 모르게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진 않겠죠.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빅 브라더'의 발생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좀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누군가 휴대전화로 명령을 내리고 그에 따르지 않을 시 가족에게 피해를 주겠다고 협박한다면 과연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요즘 비슷한 전화사기가 횡행하기도 하죠. 그냥 전화로 그렇게 협박만 해도 두려울 텐데 나의 모든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더 놀랍겠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교통신호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모든 통신을 마음대로 통제할 정도의 존재가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현재 과학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IT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 전반에 자동제어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으니까요. 이런 기술의 발달이 교통.통신.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맞물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복잡하고 정교하며 거대한 자동제어망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 네트워크 전체를 장악한다면 충분히 세상을 지배하고도 남을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선의든 악의든 누군가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될 경우 나타날 끔찍한 부작용은 생각만 해도 섬찟합니다.
 우리 사회는 의도했든 아니든 이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거부할 순 없겠지요.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니까요. 다만 혹시 만의 하나 있을 지 모르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지혜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냥 영화로만 보면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냥 재미있게만 보고 즐기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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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 The Dark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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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자경(自警)의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미국의 선조들은 국가나 제도의 억압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밖에 없었겠지요. 서부영화에서 보면 법에 호소하기보다 스스로 총을 뽑는 경우가 더 많고 자연스럽습니다. 일단 위급한 상황은 스스로 해결하고 나중에 법적으로 따져보자는 주의죠.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아직 총기소유가 허용되는 이유입니다.
 배트맨은 이른 바 자경단(vigilante)입니다. 악인을 응징하긴 하지만 법 밖에 있는 사람이죠. 사실 배트맨 뿐만 아니라 온갖 슈퍼히어로가 다 자경단입니다. 미국에 유달리 슈퍼히어로가 많은 이유도 오랜 자경의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많은 슈퍼히어로 중 배트맨이 가장 인기를 끈다는 점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배트맨에 가지는 애정은 유별납니다. 오죽하면 "슈퍼특공대(Justice League of America)"의 대장도 배트맨입니다.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밀릴 정도죠.
 아마 배트맨이 가장 미국적인 영웅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선 배트맨은 초능력자가 아니죠. 오로지 돈이 많아서 각종 장비와 최첨단 탈것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을 빼면 그저 보통 사람입니다. 또 하나 배트맨은 정통 미국백인입니다. 슈퍼맨과 원더우먼 등은 외계인 혹은 외국인이지만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유서 깊은 가문의 미국식 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계층 출신도 아니고 열등감이 강한 성격도 아닙니다. 물려받은 부자라 우리 같으면 상당히 반감을 가질 만한 인물인데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건 미국의 초기 부자들이 청교도적 전통 속에 각별한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았고 높은 도덕심으로 많은 사회적 공헌을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겁니다. 스스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악을 응징하는 배트맨이 딱 그런 미국 정통 명문가의 착한 후손이죠. 우리는 좀 우습게 보지만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퇴임 말년에 인기가 추락했지만 여러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재임에 성공했던 걸 보면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나 봅니다.
 "다크 나이트"는 그런 면에서 현재 미국이 빠져있는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세계의 자경단임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이 처한 자기모순이 영화를 통해 스며나오고 있습니다. 조커는 악의 화신입니다만 배트맨이 결코 죽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조커를 죽이는 건 배트맨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뜨리는 행위가 될 테니까요. 배트맨은 법 밖에 존재하지만 스스로 법보다 더한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기를 안 쓰고 굳이 주먹으로 해결하는 것이나 스스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런 자기기준 때문입니다.
 조커는 배트맨의 이런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을 직접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배트맨을 괴롭힙니다. 법 밖에 있는 배트맨이 법 안에 있는 하비 덴트 검사를 진정한 영웅으로 삼아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주길 바라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조커는 정의의 상징과도 같은 하비 덴트를 악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배트맨은 좌절합니다. 마치 세계 도처의 "악의 축"들을 제거하려다 성과도 없이 망신만 당한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의'의 기준입니다. 과연 누가 '정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나요? 배트맨이, 아님 미국이? 조커는 배트맨(미국)에게 좀 더 솔직해지라고 합니다. 배트맨의 존재가 오히려 악을 불러내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조커 자신은 배트맨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배트맨에게도 조커라는 존재가 꼭 필요한 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물음은 인간사 모든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의'를 외칩니다. 하지만 '정의'가 완전히 구현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왜? 원래 '정의'란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분쟁과 갈등의 본질은 '정의구현'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차'일 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뿐입니다. 법이나 제도는 그런 사람들간의 분쟁을 공정하게 조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법 밖에 존재하는 배트맨은 한계와 모순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배트맨이 아무리 악을 응징해도 끊임없이 악은 새로 생겨납니다. 배트맨 혼자서 모든 악을 응징할 수도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배트맨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결국 법과 제도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배트맨은 영원히 '흑기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엔 '배트맨의 아이들(배트맨을 추종하는 가짜 배트맨)'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마다 '정의'의 구현자가 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법과 제도를 무시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에 빠진 나머지 나와 다른 남의 의견은 곧 '악'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절차의 민주주의에 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미국은 몰라도 우리나라 만큼은 '배트맨'과 같은 슈퍼히어로들이 앞으로도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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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일본영화) - 할인행사
쿠보츠카 요스케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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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개봉된 영화인데 그 동안 인연이 없어 못 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보게 됐습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엔 이 영화가 없었거든요.

영화는 주인공 스기하라(쿠보즈카 요스케)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나의 연애이야기다."

영화가 굳이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그냥 "연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기하라는 재일한국인3세 고등학생입니다. 얼마 전까진 "재일조선인"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일본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싸움닭에 또라이로 통하는 문제아입니다.

권투 챔피언 출신의 아버지(야마자키 츠토무)는 젊어서 자칭 열혈 마르크스주의자로 "재일조선인" 신분으로 살아왔으나 하와이를 가고 싶어서 얼마 전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입니다. 국적을 바꾼 이유는 사실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닙니다만 그건 나중에 밝혀집니다. 아버지는 스기하라에게 어릴 때부터 권투를 가르칩니다.

스기하라에게 주먹을 뻗어 보라고 하곤 한 번 돌아 보라고 시킨 다음 말합니다.

"이 원이 내 영역이다. 이 안에선 안 다치고 마음대로 주먹을 뻗을 수 있다."

"시시해."

"이 원 밖을 나가고 싶으면 싸워야 한다. 이 원 밖엔 강한 적들이 우글우글하다. 맞으면 아프고 때려도 아프다. 그래도 나가고 싶냐 ? "

"응."

일본 속의 외국인 스기하라의 삶은 하루하루가 싸움의 연속입니다. 조총련계 학교에선 조선말을 안 쓴다고 선생에게 맞고 일본인학교에선 일본인이 될 수 없어 싸웁니다.

스기하라의 유일한 친구는 조선인 학교를 다니는 친구 정일이 뿐입니다. 하지만 정일이는 한복을 입은 여학생을 놀리던 일본 아이들을 말리다 칼에 찔려 죽고 맙니다.

스기하라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사쿠라이(시바사키 코우)라는 여자애를 만납니다. 둘이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마침내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려고 합니다. 이 때 스기하라는 자신이 "재일한국인"인 "이정호"임을 고백합니다.

사쿠라이는 아빠가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는 더럽다고 했다면서 무섭다고 합니다.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둘은 맨주먹으로 권투 시합을 벌입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방어만 하고 있다가 비겁한 방법을 써서 스기하라를 때려 누입니다.

"방어도 못하는 놈이 ! 그래 비겁하다해도 나는 이렇게 살아 남았다."

스기하라는 대학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육개월 뒤 사쿠라이가 스기하라를 불러냅니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스기하라는 사쿠라이 앞에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 일본인들은 우리를 "재일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재일"이란 말 속엔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는 뜻이 들어있다. 사자라는 이름은 사자 자신이 붙인 게 아니다. 그래 놓곤 사자라는 이름난 들어도 무서워한다. 그래, 가까이 오기만 해 봐라. 물어 뜯어 줄테니."

비로소 스기하라는 남들이 규정 지어준 자신이 아닌 스스로가 자각하는 인간 스기하라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이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도 재미있게 풀어준 멋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졌다곤 해도 원작이 재일한국인의 작품이란 점과 명계남, 김 민 같은 단역의 출연을 빼곤 모두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영화입니다만 자기 반성적인 면이 강하게 들어간 영화입니다.

사쿠라이는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 여자애로 나오는데, 가령 팬티는 보여줘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쟝 끌로드 반담"은 꼭 "밴담"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하고 남자애와 함께 별똥별을 봤다든가 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인들에 대한 풍자로 보입니다. 자신의 나쁜 점은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남을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비꼬고 있다고 봤습니다. 영화 속엔 이 밖에도 일본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도 성공한 걸 보면 아직 일본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반성하는 영화를 만든 것을 보면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우리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 지...우리가 일본보다 더 폐쇄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건 아닌지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와 재미, 잔인한 현실과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고 둘 다 훌륭하게 마무리했습니다. 표면을 흐르고 있는 주제 외에도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청춘의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좋은 영화입니다.

쿠보즈카 요스케의 갈기머리와 반항적인 눈빛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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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도시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
이사벨 아옌데 지음, 우석균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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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살 미국 소년 알렉스는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이라 탐험가인 할머니 손에 잠시 맡겨집니다. 할머니 케이트는 전세계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터프한 르포작가로 손자라고 어리광을 받아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분입니다. 서부에서 멀리 뉴욕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온 손자를 마중도 나오지 않을 정도이니 알 만 하죠.
 케이트는 알렉스를 데리고 다짜고짜 아마존 오지로 탐험을 떠납니다. 알렉스는 졸지에 인터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요청으로 아마존 오지에 살고 있다는 야수를 찾아 떠나는 모험에 끌려들어 갑니다. 아마존 밀림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3m 크기의 야수를 목격했다는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떠나는 탐험대에 끼게 된 것이죠.
 브라질에 도착한 알렉스와 케이트는 안내인, 사진사, 여의사, 인류학 교수, 현지 군인들과 합류해 오지 탐험을 떠납니다. 탐험대엔 알렉스 외에도 어린이가 한 명 더 끼어 있습니다. 안내인 산투스의 딸인 열두 살 나디아입니다. 나디아는 브라질인 아버지와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혼혈 소녀로 원주민 말에 능숙하고 자연과 동물들을 사랑하는 영특한 아이입니다. 알렉스는 나디아를 통해 숲 속에 살고 있는 주술사 왈리마이를 만나게 되고 자신들이 안개족이란 부족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사람이란 얘길 듣습니다.
 알렉스와 나디아는 탐험대에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을 예감합니다. 이후 소년 소녀는 이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는 곳에서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야수를 만나고 온갖 신비한 모험을 겪게 됩니다.
 이사벨 아옌데는 페루에서 태어나 고향인 칠레에서 살다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정부가 피노체트의 쿠테타로 무너진 뒤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미국에 정착한 작가라고 합니다. 그녀의 소설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다채롭고 깊이가 있습니다. 이 책은 할머니 입장에서 손자손녀들에게 얘기해 주던 걸 글로 써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알렉스는 바로 자신의 손자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조금도 유치하지 않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자연과 그 속에 살고있는 수 많은 원주민과 동식물들을 눈에 보듯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묘사도 일품이지만 신비로운 얘기 속에 아이들에게 올바른 생각과 불굴의 용기를 심어 줄 수 있는 스토리는 더욱 빛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라면 꼭 자녀와 함께 읽어 보시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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