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일본영화) - 할인행사
쿠보츠카 요스케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2001년에 개봉된 영화인데 그 동안 인연이 없어 못 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보게 됐습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엔 이 영화가 없었거든요.

영화는 주인공 스기하라(쿠보즈카 요스케)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나의 연애이야기다."

영화가 굳이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그냥 "연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기하라는 재일한국인3세 고등학생입니다. 얼마 전까진 "재일조선인"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일본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싸움닭에 또라이로 통하는 문제아입니다.

권투 챔피언 출신의 아버지(야마자키 츠토무)는 젊어서 자칭 열혈 마르크스주의자로 "재일조선인" 신분으로 살아왔으나 하와이를 가고 싶어서 얼마 전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입니다. 국적을 바꾼 이유는 사실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닙니다만 그건 나중에 밝혀집니다. 아버지는 스기하라에게 어릴 때부터 권투를 가르칩니다.

스기하라에게 주먹을 뻗어 보라고 하곤 한 번 돌아 보라고 시킨 다음 말합니다.

"이 원이 내 영역이다. 이 안에선 안 다치고 마음대로 주먹을 뻗을 수 있다."

"시시해."

"이 원 밖을 나가고 싶으면 싸워야 한다. 이 원 밖엔 강한 적들이 우글우글하다. 맞으면 아프고 때려도 아프다. 그래도 나가고 싶냐 ? "

"응."

일본 속의 외국인 스기하라의 삶은 하루하루가 싸움의 연속입니다. 조총련계 학교에선 조선말을 안 쓴다고 선생에게 맞고 일본인학교에선 일본인이 될 수 없어 싸웁니다.

스기하라의 유일한 친구는 조선인 학교를 다니는 친구 정일이 뿐입니다. 하지만 정일이는 한복을 입은 여학생을 놀리던 일본 아이들을 말리다 칼에 찔려 죽고 맙니다.

스기하라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사쿠라이(시바사키 코우)라는 여자애를 만납니다. 둘이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마침내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려고 합니다. 이 때 스기하라는 자신이 "재일한국인"인 "이정호"임을 고백합니다.

사쿠라이는 아빠가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는 더럽다고 했다면서 무섭다고 합니다.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둘은 맨주먹으로 권투 시합을 벌입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방어만 하고 있다가 비겁한 방법을 써서 스기하라를 때려 누입니다.

"방어도 못하는 놈이 ! 그래 비겁하다해도 나는 이렇게 살아 남았다."

스기하라는 대학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육개월 뒤 사쿠라이가 스기하라를 불러냅니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스기하라는 사쿠라이 앞에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 일본인들은 우리를 "재일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재일"이란 말 속엔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는 뜻이 들어있다. 사자라는 이름은 사자 자신이 붙인 게 아니다. 그래 놓곤 사자라는 이름난 들어도 무서워한다. 그래, 가까이 오기만 해 봐라. 물어 뜯어 줄테니."

비로소 스기하라는 남들이 규정 지어준 자신이 아닌 스스로가 자각하는 인간 스기하라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이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도 재미있게 풀어준 멋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졌다곤 해도 원작이 재일한국인의 작품이란 점과 명계남, 김 민 같은 단역의 출연을 빼곤 모두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영화입니다만 자기 반성적인 면이 강하게 들어간 영화입니다.

사쿠라이는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 여자애로 나오는데, 가령 팬티는 보여줘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쟝 끌로드 반담"은 꼭 "밴담"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하고 남자애와 함께 별똥별을 봤다든가 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인들에 대한 풍자로 보입니다. 자신의 나쁜 점은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남을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비꼬고 있다고 봤습니다. 영화 속엔 이 밖에도 일본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도 성공한 걸 보면 아직 일본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반성하는 영화를 만든 것을 보면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우리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 지...우리가 일본보다 더 폐쇄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건 아닌지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와 재미, 잔인한 현실과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고 둘 다 훌륭하게 마무리했습니다. 표면을 흐르고 있는 주제 외에도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청춘의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좋은 영화입니다.

쿠보즈카 요스케의 갈기머리와 반항적인 눈빛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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