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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울의 여름 - Season in the Su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나뭇잎들이 짓푸르고 무성해졌습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자녀들 두고 어른들끼리만 한 잔 하는 건 좋지 않죠.
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애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영화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보리울의 여름"은 시원한 녹색빛 영화입니다. 화면 속에서 선선한 산들바람도 불어 오고 시원한 소나기도 내립니다. 이 영화는 요즘 세상에 보기 어려운 예쁘고 착한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나 코믹, 액션 등 짜릿한 자극을 기대하신 분은 여기까지 읽고 그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 보리울에 6년전 스님이 돼 버린 아빠를 찾아 온 초등학교 6학년 형우(곽정욱)와 갓 서품을 받고 보리울성당 주임신부로 온 김신부(차인표)가 함께 버스를 타고 옵니다.
형우는 스님 같지 않은 스님아빠 우남(박영규)을 만나 반갑기 보다는 서먹하기만 합니다. 6년만에 본 아들에게 미안한 우남은 차마 부자간 상봉의 정을 제대로 나누지 못합니다.
김신부는 의욕에 가득 차 있지만 하는 일마다 서툴러서 깐깐한 원장수녀(장미희)와 부딪히기도 하고 반항적인 성당아이들(고아)에게 얕보이기도 합니다. 젊은 수녀인 바실라 수녀(신애)만이 김신부를 위로합니다.
자칭 땡초인 우남의 넉살 좋은 인사로 김신부와 우남은 친해지고 가끔 막걸리도 한 사발씩 나눠 마시는 사이가 됩니다.
보리울의 여자 축구귀신 동숙(배종은)은 남자애들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과 자존심을 가진 아이지만 보리울 아이들을 모아 읍내 축구부애들에 도전한 축구시합에서 번번이 지고 화가 나 있습니다. 동숙은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은 우남이 축구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 것을 보고 감독이 돼 줄 것을 요청합니다. 흔쾌히 받아 들인 우남의 지도로 아이들의 실력은 날로 발전합니다.
한편, 고아라는 처지 때문에 매사 반항적인 태수(김봉주)는 내심 동숙을 인정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함께 축구를 하자는 동숙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결국 동숙은 태수의 자존심을 자극해 보리울 아이들과 성당 아이들의 축구시합을 가집니다. 축구 공 하나 없이 시합에 나갔던 성당 아이들은 비참하게 패하고 축구공을 사기 위해 빈병을 모읍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남의 빈병박스를 훔쳐 파출소에 잡혀 가고 맙니다.
평소 태수의 반항에 곤혹스러워 하던 김신부는 축구공을 사서 주고 직접 아이들의 코치가 됩니다. 사실 김신부도 한 때 공깨나 찼던 사람입니다. 마침내 보리울 아이들과 성당 아이들의 재시합이 열립니다. 빗속에 치러진 수중전에서 놀랄 만큼 발전한 성당팀의 분전으로 경기를 비기게 되고 두 팀은 더 큰 적인 읍내 축구부 타도를 목표로 한 팀을 만듭니다. 우남이 감독이 되고 김신부는 코치가 되어 온 마을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축구 연습을 합니다.
마침내 보리울 소년 축구단과 읍내 초등학교 축구부의 시합이 열립니다. 평소 깐깐하던 원장수녀님까지 참가한 응원단과 함께 경운기를 타고 행진하는 보리울 소년축구단, 과연 도내 4강에도 들었다는 축구부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 영화, 참 특이한 영화입니다. 이른바 상업적인 공식은 다 피해 갔습니다. 이런 영화가 제작된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진한 갈등도 반전도 없이 말 그대로 착하고 예쁘게만 갔습니다. 그렇다고 유치하고 저급하다는 건 아닙니다. 뻔한 이야기라 밋밋한 듯 하지만 섬세한 삶의 묘사가 보는 내내 마음을 유쾌하게 합니다.
어깨 힘을 뺀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다른 영화와 달리 시종 웃는 얼굴로 편하게 다가오는 차인표의 연기도 좋고 땡초 같지만 깨달음의 경지를 언듯언듯 보여주는 박영규의 연기도 좋습니다. 겉으론 깐깐해도 드라마를 보며 눈물짓는 소녀 같은 마음의 소유자인 원장수녀역의 장미희도 보기 좋았고 맑고 깨끗한 바실라 수녀의 신애도 예뻤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바로 섭외해 출연 시켰다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 영화는 마당에 모기불 피워 놓고 평상에 앉아 이웃들과 수박이라도 깨 먹으며 보면 더할나위 없을 영화입니다. 아, 어른들을 위해서 파전에 시원한 막걸리도 잊으면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