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당 엄상섭 형법논집
신동운.허일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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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를 수놓은 또 한 사람 영걸. 호당 엄상섭은 ① 처음에는 법전편찬위원회 형법각칙 기초자로서, ② 중간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정부초안에 대한 법사위 주심으로서, ③ 마지막에는 국회 본회의 형법전 독회 석상에서 법안설명에 임하는 법사위원장 대리로서 우리 형법전 제정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책 vi쪽).

그 논문과 논설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유효한 대목이 많고 깨닫는 바가 큰데,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일본 문헌을 경유하긴 하였어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선진이론을 두루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독자적이고도 민주적인 형법전과 형법이론을 세워낸 과정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절차형법인 형사소송법의 실질적 민주화라는 과정이 뒤따라야 했지만, 이런 분들의 고뇌가 쌓여 우리는 안주하지 않는 발전의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여전히 개선 여지가 크다고는 보나, 형사법제는 적어도 여전히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의 것이 이제는 나은 점이 더 많다고 본다).

역사를 들여다 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예컨대 제1부 제8장 ˝긴급행위에 대한 시론˝ 등은 기대 이상으로 논증이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아서 놀랐다. 깨달음과 논의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끌어올려지지 못했던 시절에, 이런 글들은 가히 우뚝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집권자에 대한 신뢰는 독재화의 첫걸음이다. - P8

신기(新奇)를 좋아하고 이념론의 매력에만 현혹되지 말고 인간의 생태를 토대로 하는 학구적 태도를 가지는 데서만 ‘사람을 해치지 않는 형법이론‘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 P9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먼저 하나 생각해 둘 것은 이 형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이미 여러 가지 법률을 제정할 때의 경험에서 잘 아시다시피 형법이라고 하는 것도 법률의 하나로서 이 법률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 - 즉 다시 말하면 사회도 개조하고 혹은 도의관념도 확립시키고 사회악도 모두 제거하고… 그런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이 형법에다가 지워가지고는 도저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법에다가 지나친 부담을 과했다가는 혹은 "뿔을 고치다가 소를 잡는다"는 것과 같은 결과에 돌아갈 것입니다. - P70

이것은 비근한 예입니다마는 우리가 형법에다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면 이런 결과가 날 뿐이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법학자들이 말하기를 형법의 제2의성이라고도 ‘형법의 보충성‘이라고도 합니다. 형법의 보충성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하고 형법만 잘 만들어 놓으면 여기에서 좌익세력도 막아지고 모든 사회문제도 해결된다고 할 때에 형법은 엄하게만 만들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법이라는 것은 그때그때에 일어나는 일을 절대적으로 해결 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자... 이 정도로 본다면 국회의원 동지 여러분의 건전한 양식을 가미할 때에는 아까 말씀드린 바 두 가지 원칙의 조화점이 저절로 발견될 줄 압니다. - P71

이는 내란죄와 같은 중대하고 또 정치성이 강한 범죄의 구성요건의 중요부분이 되는 ‘국헌문란‘이라는 개념이 정치력의 영향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의에서 설치된 조문이며, 이는 결국 우리나라처럼 후진성이 강한 국가에 있어서는 민주세력은 거개 야당의 위치에 놓여 있게 될 것이고 소수의 신흥세력이 되기 쉬울 것이라는 예상에서 이러한 민주세력의 좌절을 방지하여 그 육성을 기하기 위함이니 형법 민주화의 하나인 것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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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개정판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2001년 판에는 통계에서 population이 ‘모집단‘이 아니라 ‘전집‘이라는 생소한 용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가 선택된 곳이 종종 보이고, 독해에 상당히 방해가 된다(instance를 ‘사례‘가 아니라 ‘범례‘로 옮긴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컨대, version을 ‘번안‘으로, class를 ‘유목‘으로 번역. 그러면서도 ‘집합‘인 set는 번역하지 않고 ‘세트‘로 표기).

Tversky와 Kahneman의 원문인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Vol. 185, Issue 4157 (27 Sep 1974), p. 1127에는 ˝heart attack˝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책에는 ˝뇌일혈˝로 나오는데, 저자들이 책을 내면서 맥락상 지극히 사소한 이 부분을 바꿔쓰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무튼 번역상 의구심이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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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중의 고전이고, 경제학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기초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 체계도, 경제활동도 여전히 화폐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번번이 가치를 보정한다는 것이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경우 착각으로 인해 그런 과정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책 156쪽). 아무튼 화폐가치가 늘 변동함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사회적 불공정, 사회 불만, 사회적 비효율성이 막대하고(책 132쪽), 합법의 외양을 띤 강탈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책 108쪽). [책에서는 "social injustice"를 "사회적 불공평不公平"으로 옮겼으나, injustice는 '불공정不公正'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just에 "平"의 의미를 넘는 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justice도 '정의正義'라 하지, '공평'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번역에 관하여 후술.]


  사람들을 미몽에서 깨우기 위한 글이라, 비유와 예시가 풍부하고 쉽게 읽힌다. 8장 211쪽 이하의 '요약' 부에 책 내용 전체가 명제 식으로 요약되어 있다.


  다만...


  번역되지 않았다면 읽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우선 감사한 일이나, 의구심이 드는 대목들이 있어 몇 군데 원문을 찾아보았고, 번역에 대한 신뢰가 다소 떨어졌다(먼저 확실히 밝혀두자면, 필자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고, 이 책의 옮긴이와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번역 경력이 일천하다). 참고로, 1928년에 나온 책이라 저작권이 만료되었기 때문에 웹상에서 원문 PDF 파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https://babel.hathitrust.org/cgi/pt?id=mdp.39015020847706&view=1up&seq=7 등.


  예컨대, 8장 첫 문단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have seen that credit control, even international credit control, is already in process of development. Such control must, in its details at least, be exercised by central banks, not by governments; these may only lay down general rules.

  But there is much more than this that governments may and should do in order that we may at least possess a reliable monetary standard. []


  역자는 아래와 같이 옮기시고는 다음 문단까지를 한 문단으로 처리하셨다(둘째 문단 뒷부분은 생략).

  신용 관리, 심지어 국제적 신용 관리가 이미 발달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용 관리는 세부사항만이라도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행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전반적인 규약을 마련하는 선에서 끝나야 한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화폐 본위를 갖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


  우선 중앙은행이 하는 통화정책으로서 "credit control"은 "신용 통제"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신용 관리"라 하면, 개인이나 기업 관점에서 대출 등에 관한 '신용 등급'을 관리하고,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신용조회, 조사, 평가, 채권추심, 부실채권 처리 등을 통하여 '신용 위험'을 관리한다는 의미의 credit management의 뜻을 강하게 내포하게 된다(단적으로, 신용정보협회에서 시행하는 '신용관리사' 시험은 중앙은행 업무나 통화정책과는 무관하다 http://www.cica.or.kr/ 참조).

  "credit control"을 신용 통제가 아니라 신용 관리로 옮겼기 때문에 그것이 "[must] be excercised" 된다는 것도 "이루어[져야 한다]"로 두루뭉술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신용 통제 정책이) "수행", "시행", "집행", "실시"[되어야 한다] 등으로 번역되었어야 의미가 분명하다. 법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수행"으로 쓰는 경우가 왕왕 있고, 이 문단에서도 어감상 가장 가깝지 않나 싶다.

  '규약規約'이라는 말은 협의에 의한 '약속約束'으로서 규칙을 의미하나, 본문의 "general rules"에서 rules는 (중앙은행과 구체적 역할은 다르더라도) credit 'control'을 위한 것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lay down"하는 것이므로 "규정"으로 번역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general rules"도 "전반적인 규약"이 아니라 "일반규정"이 된다. 이 글의 맥락과 용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rule"은 법학에서는 "principle" 또는 "standard"에 대비하여[예컨대, '규정 중심 규제' 대 '원칙 중심 규제';  Louis Kaplow, Rules Versus Standards: An Economic Analysis, 42 Duke Law Journal 557-629 (1992) 등 참조], 또 경제학에서는 "discretion"에 대비하여('준칙주의' 대 '재량주의') 쓰이는 특수한 질을 갖는 용어이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general"과 함께 쓰이기까지 했으므로, 흔히 쓰이는 "일반규정"으로 번역함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각론을 정하거나 집행하지는 않고 원칙만 세워 (이를테면 법령으로) 성문화하여 둔다는 의미가 된다.

  사소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위 인용문에서 세 번 등장하는 may도 번역문에는 그 의미가 완전히 빠져 있다. "정부는 고작 일반규정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다. (문단 나눔) 그러나 우리가 신뢰할 만한 화폐 본위를 가질 수라도 있기 위해서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은 훨씬 많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번역 문제를 더 다루지는 않는다. 뜻만 얼추 통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미묘한 말맛의 차이가 큰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부글북스는 고전 번역의 틈새를 잘 찾아나가고 있다. 스스로도 여러 권 가지고 있고, 특히 애덤 스미스의 『정의에 대하여』나 케인즈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출간된 것을 반갑게 생각하고 있었다(아직 읽지는 못했다). 대부분을 같은 역자가 번역하셨기에 찾아보니, 부글북스의 대표로 나온다. 당신께서 직접 출판기획 및 번역 업무를 함께 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분량이 길지 않다고는 하여도 평이한 내용도 아닌 책들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 거의 한 달에 한 권꼴로 - 번역해내고 계신 셈인데, 아무래도 완성도를 더 높여 내시려면 한계비용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목록을 정리하고 나니 '이 책도?' 싶고 더 엄청나서 경외심이 느껴지는데, 이런 분 번역에 관하여 왈가왈부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개역판이 나온 책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봐서 책을 내신 뒤에 어떤 식으로든 번역을 다시 점검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우리 지식사회와 공론장에 기여하시는 바가 매우 큰 분이심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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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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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재미있는 글이 많이 나온다.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 영화가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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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주의의 승리라 이름할 수 있을 웅혼한 서사. 인문학자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도저히 생산해낼 수 없을 것 같다. 562쪽부터 647쪽까지에 걸친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표지면은 책이 나오기까지 지은이가 인고한 세월을 응축하고 있는 것같아 자못 경이롭다. 책은 3·1운동이 어떻게 우리 "존재의 기초"이자, "불회귀적 사건"인지를 설득력 있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책 543 ~ 544쪽). 우리 헌법이 왜 첫머리에 '3·1운동'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년 6월경 책의 80% 정도를 읽고 덮어두었다가 오늘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율이 돋았고,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가 나왔다(당시에 남겨 둔 리뷰는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923232).


  우리도 Project Gutenberg (http://www.gutenberg.org/)와 같이 여러 1차 자료와 문헌들을 디지털 아카이빙하는 작업에 더 투자하면 좋겠다. 20세기 이전 자료들이 대부분 한문으로 남아있는 탓에 우리 자신에 대한 연구에 진입장벽이 존재하지만, 중국, 대만, 일본과 협력하여 발전된 한자인식(OCR) 기술을 나누었으면 좋겠다(현재까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http://archive.history.go.kr/ 참조). 여러 언어간 번역 자료를 부지런히 디지털화하여 번역기의 정확도를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런 연구가 더 많이 쏟아지고 또 외국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자료 더미에 묻힌 원석을 발굴하여 빛나는 보석으로 꿰는 작업이 많아지면 좋겠다.


  국문학, 국어학, 국사학은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개척하여야 할까. 국어국문학의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우리 정신의 근간이라는 당위적 언설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국영수"의 앞자리를 아직 '국어'가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국어'의 특권적 지위를 보장한 것이 도리어 혁신을 가로막아 도태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중고등학교 교과목으로서 '국어'는 미래세대에게 우리 말과 글의 비전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가. 아무리 가장 높은 비중을 둔들 2, 30대에 이르러 꾸준히 한국문학을 읽는 인구가 얼마나 될까.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려 쓰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광호, "국어국문학, 미래 한국의 救命艇 될 수 있을까?", 교수신문 (2018. 10. 8.)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2793 등 참조.

  작가가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이고, 문학이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문예지가 첨단 논쟁의 무대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실기 위주의 문예창작학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문학도, 작가도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 자체가 20세기에 비하여 심각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이는 곧 사고의 단순화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우리말을 보존하는 노력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학술지에 우리 어휘를 살려 투고한 적이 있었는데, 가독성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수정을 권고받은 일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언어생활의 거대한 빙산이 급속히 녹아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호기,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20)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 경향신문 (2015. 8. 1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182207085&code=210100; 신효령, "[기자수첩]문학의 위기, 만화·영화는 멀쩡하건만···", 뉴시스 (2018. 10. 18.) https://newsis.com/view/?id=NISX20181017_0000444984 등 참조.

  [유수의 영어 언론과 잡지들은 영어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많이 쓴다. 아름다우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장들이 전 세계 독자들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열어 컨텐츠를 사보게 만든다. 우리도 순우리말 어휘, 옛말을 포함한 거대한 유의어 사전을 만들면 어떨까. 비슷한 단어들을 적절히 교차하여 구사하고, 또 전달하려는 뜻에 따라 그 단어들간 미묘한 차이를 가려쓰려는 노력이 많아지면 언어 세계의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영어로 글을 쓸 때 자주 참고하는 유의어 사전 사이트인데, https://www.thesaurus.com/을 써보면,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자질구레한 단어들까지, 비록 연결선의 강약은 다를지라도, 어휘의 그물망을 정말 촘촘하게 연결해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erriam-Webster 사전을 보아도,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과는 그 폭과 깊이에서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love" 같은 말을 찾아보면, 이것이 라틴어나 고대 영어, 고대 상류 독일어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12세기 전부터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가 나온다. 최신 용례와 풍부한 유의어, 반의어 목록이 제공됨은 물론이다. https://www.merriam-webster.com/. 한글이 최고야 하면서 국뽕에 취해 있기에는, 우리말이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백 년 전까지만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는 것 자체가 과제였지만, 국립국어원(https://www.korean.go.kr/)에서 지금 벌이는 말뭉치 구축 사업 등 여러 사업에 더하여 어휘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보존하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민간 활용이라는 측면을 더 신경써주면 좋겠다. 지금 웹상의 사전 시스템으로는, 예컨대, 처음부터 "다홈"과 같은 말을 모르면 이를 찾아 쓸 도리가 없다. '도리어', '오히려', '차라리', '그래도' 같은 말들을 찾았을 때 이들을 연결해서 보여주어야 비슷한 뜻을 가진 말들을 교환하여 쓸 수 있다. 언어 순수주의가 역설적으로 우리 언어를 빈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여야 한다. 언어는 자꾸 이어 버릇하여야 풍부해진다. 유연석, "국립국어원, 중단됐던 '국가 말뭉치 구축사업' 10년 만에 재개", 노컷뉴스 (2018. 12. 6.) https://www.nocutnews.co.kr/news/5072089 참조.]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워낙 밀도가 높은 대작이라 선뜻 요약하기가 힘들지만 오늘 읽은 부분에서 몇 가지만 아래에 밑줄긋기 식으로 갈무리해 본다(제3부 제4장 이하에서 제4부 제2장 '이중어' 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당대의 잔다르크들을 복권시킨 제3부 제4장 '여성' 편은 감동적이었고, 이광수와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심훈, 또 제3의 길로서 엄상섭에 대한 서술도 흥미로웠다. 조소앙이 베르그송을 만나고 와서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라고 내뱉었다는 일화도 나온다[책 442쪽, 「베르그송과 조소앙」, 『동아일보』(1936. 3. 18.), 이철호, 「한국 근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상허학보』 36, 2012. 10.에서 재인용].


  권보드래 교수님도 정말 부지런히 쓰고 계신다. 공저가 많으신데, 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실지 기대가 많이 된다.


박원경은 19세 소녀로 "천황폐하께 불경이요 (...) 부모님께도 불효" 운운하며 설득하는 심문관에게 "내 앞에 천황폐하가 어디 있"냐고 반박하면서 "우리 부모님 생각은 (...) 칭찬해주실 테니까 나는 효녀"라고 당당히 진술했다는데, 그 소문이 당시 황해도에 파다했다고 한다. - P397

"나는 3·1 운동 없으면 오늘은 없다." - 함석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저작집 6』, 한길사, 2009, 164쪽. - P431

엄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나‘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존재의 기초이자 폭발적 성장의 계기인 것이다. 3·1 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비로소 집단적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서의 정체성을, 즉 저항하는 존재로서의 자존을 형성할 수 있었다. 조직망도 통신망도 저발달한 상태에서 사실상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운동은 지금까지도 부동(不動)의 민족적 알리바이다. ‘우리‘는 단연 일제에 반대했던 것이다. 비록 힘이 모자라 짓밟혔을지언정 그것은 식민지시기 내내, 그리고도 오래 더 살아남은 기억이었다. ‘3·1 운동이 없었다면 민족으로서의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 P543

그러나 동시에, 이광수 같은 인생과 대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독립운동가들의 존엄마저 박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고 이광수를 망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광수를 몰아내는 대신 그와 대결하고 싶다. 그는 아직 내게 맞설수록 새로운 대상이다. 그러므로 적대와 분할이 기승스러워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3·1 운동의 봉기 대중처럼, 대결할지언정 누구도 추방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죄를 묻고 벌을 정해야겠지만 궁극에는 모든 존재를 품는 그런 질서를.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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