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자 사계절 아기그림책 2
안나 클라라 티돌름 글.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읽는 이를 향해 말 걸어 책으로 초대하는 독특한 시점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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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 (앙리4세 사망 ~ 루이14세 사망, 바로크와 고전주의)


  1610~1614 앙리4세 죽음과 마리 드 메디시스(메디치) 섭정

  1624~1642 리슐리외, 최고 국무대신으로 활동

    1637 데카르트, 『방법서설』, 코르네유 「르 시드」

  1643~1651 안느 도트리슈 섭정과 재상 마자랭

  1648~1653 프롱드 난

    1659 몰리에르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


  1661~1715 루이14세 친정

     1667 몰리에르타르튀프

     1667 라신앙드로마크

     1670 파스칼, 『팡세』(사후 간행)

     1677 라신「페드르

    1682 베르사유로 이전

    1685 낭트 칙령 폐지

     1687~1697 신구논쟁

  1715 루이14세 사망




2. (전반부) 바로크와 프레시오지테(Préciosité)




3. (데카르트)




4. 고전극(Théâtre classique)


  1) 코르네유


Chimène :


Ma générosité doit répondre à la tienne :

Tu t’es, en m’offensant, montré digne de moi ;

Je me dois, par ta mort, montrer digne de toi.


내 고귀함은 당신의 고귀함에 응답해야 합니다.

나를 모욕함으로써 당신이 내게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당신을 죽임으로써 나도 내가 당신에게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 Corneille, Le Cid, Acte III, Scène IV




  2) 몰리에르




  3) 라신


Phèdre : De l'amour j'ai toutes les fureurs. 나의 사랑은 온갖 광기를 다 품고 있다.


- Racine, Phèdre I, 3




5. 파스칼




6. 모랄리스트와 신구논쟁



  샤를 페로(일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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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 [샤를 8세 제1차 이탈리아 원정(1494) ~ 앙리 4세 죽음(1610)]

  1515~1547 프랑수아 1세 치하

    1534 플래카드 사건

      1532 라블레, 『팡타그뤼엘』

      1534 라블레, 『가르강튀아』

     1549 뒤 벨레,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

  1562~1598 종교전쟁

    1572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1580~1588 몽테뉴, 『에쎄』

  1598 낭트 칙령


 



2. 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1494?~1543?)


 "Fay ce que voudras." (원하는 대로 하라)


 - 『가르강튀아 Gargantua』57장 '텔렘 수도원(abbaye de Thélème)'의 유일한 규율


 cf. 주의 기도 "que ta volonté soit faite (sur la terre comme au ciel)"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와 대조]




3. 플레야드 시인들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 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1549)


Las, où est maintenant ce mépris de Fortune ?

Où est ce cœur vainqueur de toute adversité,

Cet honnête désir de l’immortalité,

Et cette honnête flamme au peuple non commune ?


Où sont ces doux plaisirs qu’au soir sous la nuit brune

Les Muses me donnaient, alors qu’en liberté

Dessus le vert tapis d’un rivage écarté

Je les menais danser aux rayons de la Lune ?


Maintenant la Fortune est maîtresse de moi,

Et mon cœur, qui soulait être maître de soi,

Est serf de mille maux et regrets qui m’ennuient.


De la postérité je n’ai plus de souci,

Cette divine ardeur, je ne l’ai plus aussi,

Et les Muses de moi, comme étranges, s’enfuient.


슬프다! 운명을 멸시하던 그 담대한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온갖 역경을 이겨낸 그 마음은 어디 갔을까?

영원에 대한 그 영예로운 욕망,

속인은 지니지 못할 그 고귀한 영감은 지금 어디 있을까?


그 시절 저 먼 강가의 풀밭 위

달빛 아래서 뮤즈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춤추곤 했건만,

저문 날 어스름 밤에 뮤즈들이 주곤 하던

그 감미로운 즐거움은 어디 있을까?


이제 운명은 나를 얽어매고

자유롭던 내 마음은

나를 괴롭히는 숱한 불행과 슬픔의 노예가 되었다네.


나는 이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생각은 없으며,

신성한 열정도 역시 지니고 있지 않으니,

그리하여 뮤즈들은 마치 모르는 사이처럼 내게서 달아나 버린다오.


- Joachim du Bellay, Les Regrets VI




4. 종교전쟁과 참여문학



5. 몽테뉴 『에쎄 Les Essais』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Que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


(...) ce qui constitue une sorte d’apprentissage de la mort et offre une certaine ressemblance avec elle. C’est aussi que toute la sagesse et le raisonnement du monde se concentrent en ce point : nous apprendre à ne pas craindre de mourir.

그것은 죽음을 배우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죽음과 닮아 가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예지와 사유는 결국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 한 점에 귀착된다.

- 제1권, XIX 


Le peuple se trompe: (...) La grandeur de l'âme n'est pas tant tirer à mont et tirer avant comme savoir se ranger et circonscrire. (...) Les plus belles vies sont, à mon gré, celles qui se rangent au modèle commun et humain, avec ordre, mais sans miracle ni extravagance.

사람들은 흔히 잘못 생각한다. (...) 영혼의 위대함이란 높이 올라가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기보다는 한계를 정하여 조절할 줄 아는 데 있다. (...) 내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기적이나 과대망상 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에 따라 질서 있게 처신하는 것이다.

- 제3권, XIII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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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 소설의 탄생 - 발자크에서 카뮈까지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7
김화영 지음 / 돌베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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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하는 번역가, 김화영 교수님의 일반인 상대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를 위한 강의록.

˝소설은 인식의 한 수단이지만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언어 경험의 대상이다.˝ 따라서 ˝소설 저 위로 고공비행하는 대종합의 시선을 갖추기에 앞서˝, 먼저 ˝텍스트를 지근거리에서 밀착해˝ ‘자세히‘ 읽어야 한다.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까지, 프루스트와 까뮈를 남기고 절반쯤 읽었는데, 책이 지극히 훌륭하고 아름다워 중간평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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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그런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결코 아닙니다. 실존주의는 차라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점입니다. 즉 신이 실존한다고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신의 실존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설령 인간 바로 그 자신이 신의 실존에 대한 유효한 증거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낙관론이자 행동의 독트린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 고유의 절망과 우리의 절망을 혼동한 나머지 우리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자기기만 때문입니다.


  시대적, 논쟁사적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사르트르의 철학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지, 그 삶만큼 중요한지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럴 듯한 이름(과 심각한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는, 알맹이가 없는 사상인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오랜만에 읽으면 좀 다를까 싶었는데, 아직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아무래도 철학적 개입의 강한 목적을 띤 강연록인 만큼, 사르트르가 보다 체계적으로 쓴 다른 책들을 참고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사르트르의 저작만, 너무 오래되지 않은 것들을 위주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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