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갈수록 재미있기는 한데, 펼치다 만 논지들이 찜찜하고 아쉽다.

  비교적 잘 망라된 기본 문헌들에 대해 아직 소화가 덜 되었거나 생각이 덜 버무려지셨다는 느낌도...? 학술서 형태로 조금 더 심화한 책을 따로 내시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비교하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공학 베이스가 있는 이정우를 읽었을 때와 같이 '머리가 뻥 뚫리는 느낌'은 아직 들지 않는다. 이것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생성해내시기를 기대해본다. 들뢰즈 과타리를 어떻게 죽이느냐가 관건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의 문장이 스포일러일 수도 있나?)

  간단히 말해, 계산기계요, 논리함수인 컴퓨터는, 자기 파괴 위험을 감수하는 무작위성(차이, 난수)을 스스로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스스로 탐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초인공지능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페드로 도밍고스가 『마스터 알고리즘』에 쓴대로,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기계를 가진 인간 대 기계가 없는 인간의 대결이다. 데이터와 직관력의 관계는 말과 기수의 그것과 같다. 당신(기수)은 말을 앞지르려 노력하지 않는다. 당신은 말을 탄다."는 것이다.

  "It's not man versus machine; it's man with machine versus man without. Data and intuition are like horse and rider, and you don't try to outrun a horse; you ride it."




  그리고... 앨런 튜링 아카이브 http://www.turing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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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부르크 강령 - 형법의 목적사상
프란츠 폰 리스트 지음, 심재우 외 옮김 / 강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주옥같은 책. 그야말로 강령.

독일에도 이런 입장이?!
게리 베커 이전에 파울 요한 안젤름 리터 폰 포이어바흐(1775~1833,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그의 넷째 아들)가, 그리고 프란츠 폰 리스트(1851~1919,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사촌형인데 오스트리아에서 받은 작위를 숙부에게 물려주어 그것이 형법학자 리스트에 승계되었다)가 있었다!

상세 리뷰는 다음 기회에...

"형법의 역사는 법익으로 선언된 인류 이익의 역사이다. 일정한 시대의 형법은 그 시대 인류의 손익에 관한 대차대조표이다." (63쪽)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체계적으로 대량의 관찰을 수행하는 사회과학의 방법이다. 넓은 의미의 범죄통계학만이 우리를 목표로 이끌어갈 수 있다. 우리가 형벌의 법익 보호적, 범죄 예방적 작용을 과학적 확실성에 따라 확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범죄를 사회적 현상으로, 형벌을 사회적 기능으로 고찰해야 한다. 그것만이 논쟁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이다." (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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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만을 무기로 삼은 문장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예순에 가까운 성공한 작가가 모든 것을 내걸고 이처럼 끈질기게 싸울 수 있었다는 것에 경이와 경의를 느낀다.

  당시에 졸라가 발표한 시론 13편 중 「Lettre à M. Brisson」과 「Lettre au Sénat」 두 편을 제외한 11편을 우리말로 옮겼다(13편 전부를 옮긴 책이 2014년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에밀 졸라: 전진하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모두 '드레퓌스 사건'의 추악한 전개에 맞서 시시각각 정세적으로 개입한 글들이다.

  (원문을 넘겨볼 수 있는 링크 https://gallica.bnf.fr/ark:/12148/bpt6k113523m/)

  드레퓌스파가 맞닥뜨려야 했던 근거 없는 중상모략과 국익론,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음험하게 진실을 늪에 빠뜨리려 하였는지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비록 당시에는 찜찜한 승리로 봉합된 측면이 있고, 졸라는 암살당하였지만, 시대를 증언하고 고발하였던 이들 덕분에 인류는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다.

  과학주의가 어떻게 뜨겁고도 냉철한 인류애와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에밀 졸라는 자꾸 관심이 가는 사례이다.


  지금 상황에 비추어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구절들이 많다.


1897. 11. 25. 르 피가로에 실린 「쉐레르-케스트네르 씨 M. Scheurer-Kestner」(진실이 밝혀졌으니 당연히 정의에 입각한 해결이 쉽게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쓴 첫 글이다) 


  '사건'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여러 정황이 나로 하여금 사건을 탐구하게 하고 하나의 공식 의견을 가지게 했을지라도, 조사가 진행 중이고 재판이 열릴 테니 정직한 시민으로서 할 일은 가만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그토록 분명하고 그토록 단순한 사건을 가증스러운 상호 비방으로 흐려놓는 것은 정말 금물이다(23쪽).

  정의를 위한 진실한 투쟁, 이것보다 더 영웅적인 투쟁은 이 세상에 없다(25쪽).

  앞서 말했듯 여기서 '사건' 자체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사건'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자에게는 더없이 간단하고, 더없이 명료하다.

  사법적 오판은 슬픈 일이지만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법부가 틀릴 수도 있고, 군부가 틀릴 수도 있다. 여기서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오판이 내려졌을 때 시급한 단 하나의 의무, 그것은 조속히 오판을 시정하는 것이다.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날, 바로 그날 진정한 과오가 시작되리라.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판을 인정하는 데 괴로움과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결심을 하는 날, 바로 그날 만사가 형통하리라(28쪽).


1897. 12. 5. 르 피가로에 실린 「조서 Procès-verbal」


  이제 나는 가만히 군사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고자 한다. 이를테면 나의 역할은 끝났다. 나는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어 더 이상 내가 투쟁할 필요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53쪽).


1897. 12. 14. 발간된 팜플렛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à la jeunesse」


  청년, 청년들이여! 언제나 정의와 함께 있으라. 그대들의 내면에서 정의의 관념이 희미해지는 날, 그대들은 파멸하리라. 지금 나는 사회적 관계의 보장(la garantie des liens sociaux)에 지나지 않는 '법전'의 정의(la justice de nos codes)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존중해야 하리라. 그러나 좀더 숭고한 관념, 모름지기 인간의 판결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정의, 심판자들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기결수의 무죄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의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법을 향한 그대들의 불타는 열정을 자극하는 모험이 아닌가? 아직 이해관계나 인간관계가 뒤얽힌 이전투구에 휩싸이지 않은 그대들, 아직 어떤 비열한 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은 그대들, 순수와 선의로 목청껏 외칠 수 있는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정의의 완성을 위해 일어날 것인가? (67쪽, 유기환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부분 번역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1898. 1. 6. 발간된 팜플렛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à la France」


  진실은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으리라. 사악한 무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전진이 한 걸음 한 걸음 적시에 이루어지리라. 진실은 그 자체로 온갖 장애물을 분쇄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또 얼마간 진실을 땅속에 묻어두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때에도 진실은 땅속에서 자라며, 땅속에서 엄청난 힘을 얻고, 어느 날 폭발의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버리리라. 앞으로 몇 달 더 거짓과 밀실 속에 진실을 가두어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재앙을 준비했음을 곧 알게 되리라(73쪽).


1898. 1. 13. 로로르에 실린, 바로 그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 J'Accuse...! - Lettre à M. Félix Faure,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대통령 각하,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진실은 당신의 통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단지 헌법과 측근의 수인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래도 역시 완수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사건'이 진정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오늘에서야 각자의 입장이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 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장 멀리까지 울려 퍼질 재앙 중의 재앙을 준비했다는 것을(106쪽).


1898. 2. 22. 로로르에 발표된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 진술 Déclaration au jury」(어처구니 없게도, 졸라는 명예훼손죄로 재판받게 된다)


  청컨대 그 좌석에서 진정한 여론을 대표하십시오, 그리고 모두 지혜와 정의의 화신이 되십시오. 잠시 후 심의실에서 여러분이 표결할 때 저는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노력이 국가의 이익에 다름 아닌 시민의 이익을 당연히 지켜주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류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익과 만인의 이익을 혼동하기 때문일 겁니다.

  (...) 여러분의 사업이 처해 있는 통탄할 만한 불경기에 대해 여러분이 느끼는 불안은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도처에서 작금의 위기가 재앙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거래는 점점 더 위축되고, 매상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품고 계시는 생각, 여러분의 얼굴에 씌어 있는 생각은 너무나 읽기 쉽습니다. "그만하면 됐어, 이젠 제발 끝내자." 여러분은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죄 없는 한 인간이 악마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한 인간의 이익 때문에 온 나라가 이 같은 혼란에 빠져도 좋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우리가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온갖 죄악에 대해 우리, 진실과 정의에 목마른 우리가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배심원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저에게 유죄 편결을 내린다면, 여러분의 평결에는 오직 하나의 이유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지키려는 욕망, 생업을 재개하려는 욕구, 저를 단죄함으로써 프랑스의 국익을 해치는 캠페인을 저지할 수 있다는 신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배심원 여러분,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건대, 저는 여기서 제 개인적 자유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단죄하는 것, 그것은 저를 더욱 더 대단한 인물로 캐워주는 일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자는 결국 존엄하고 신성한 존재가 되기 마련입니다(...).

  좋습니다. 저는 저를 변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거듭 말씀드리건대, 만일 저를 단죄하는 것이 불행한 우리나라의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류가 될 겁니다! 목하 우리나라를 죽이는 것이 그들이 몰고 온 단말마적 어둠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위정자들은 끝없이 과오에 과오를 거듭하고 있고,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법적 오판이 저질러졌고, 이후 그것을 감추기 위해 매일매일 건전한 양식과 공평한 정신에 대해 새로운 테러를 가해야 했습니다. 한 범죄자의 무죄 석방을 위해서는 한 죄 없는 인간에 대한 유죄 선고가 필요했던 겁니다. 바야흐로 오늘 그들은 여러분에게 저를 단죄하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제가 진창에 빠져드는 조국을 보면서 고통의 절규를 내질렀기 때문입니다(116~119쪽).


1899. 9. 29. 로로르에 실린 「알프레드 드레퓌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à Madame Alfred Dreyfus」(드레퓌스는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아니라 단지 감형을 받고 바로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풀려난다. 무죄판결과 완전한 복권만이 진실과 정의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여겼던 드레퓌스파는 드레퓌스와 그 가족이 사면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부인, 이 사면은 정녕 가슴 아픈 사면입니다. 과연 그토록 가혹했던 육체적 고통 뒤에 이토록 가혹한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는 걸까요? 정의에 의해 의당 누려야 할 것을 자비에 의해 하사받았으니 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인지요!

  가장 나쁜 사실은 이런 최후의 불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것이 조율된 듯하다는 것입니다. 재판관들이 그것을 원했지요, 그들이 범죄자들을 구하기 위해 죄 없는 자를 다시 공격한 것이지요. 물론 자비라는 탈을 쓴 잔학한 위선 속에 몸을 숨길 작정을 하고서 말입니다. "그대는 명예를 원하지만, 우리는 그대에게 자유만을 적선하려 하오. 그대의 법적 불명예만이 그대의 집행인들의 범죄를 가려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오." 지금까지 그들이 저지른 기나긴 죄악의 목록 가운데 이보다 더 가증스러운 반인간적 테러는 없었습니다. 살인자들이 계급장을 주렁주렁 단 채 백주에 대로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성한 자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다니요, 신성한 자비를 거짓의 도구로 만들다니요, 신성한 자비로 죄 없는 자를 모욕하다니요,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 결정적 평화는 오직 정의 속에 존재합니다. 일체의 비겁한 행동은 오직 새로운 열병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164~165쪽).



  『실험소설』에 관해 쓴 글(http://blog.aladin.co.kr/SilentPaul/10183497)에도 일부 언급하였지만, 다음 책들을 더 참고할 수 있겠다.




  그 밖에도,


  Alain Pagès,  Émile Zola, un intellectuel dans l'affaire Dreyfus (Paris: Librairie Séguier,1991)

  Jean Bedel, Zola Assassin? (Paris: flammarion, 2002)

  Les Intellectuels face a l'affaire reyfus alors et aujourd'hui (Paris: L'Harmattan, 1998) - '나는 고발한다!' 발표 백주년 기념 논문집

  Pierre Birnbaum, L'affaire Dreyfus (Paris: Gallimard, 1994)


  모두 알라딘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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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불과 몇 년 전에 이런 시대도 있었다.

  트위터가 아직은 사그라들지 않아 핫하던 시절, 名士의 일거수일투족, 생각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전파하던 그런 때였다.

  정권의 질식성에 대한 반정립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상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고, 또 잘 속는다.


  강준만 교수가 추린 '멘토'라는 사람들은, 시간의 놀라운 힘으로, 책이 나오고 겨우 6년이 지난 지금, 포르투나(fortuna)의 이런저런 시험에 직면해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저마다의 천성과 밑천, 비르투(virtu)를 드러내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글 쓰는 기계', 강준만 교수의 순발력과 부지런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포퓰리즘에 대한 반이분법주의 문제의식에도 공감하지만, 너무 재발랐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간 당시에는 비슷비슷한 필진 혹은 대담자들-'멘토들'-로 조합된 유사한 책들이 쏟아졌는데, 그 중에서도 제목빨이 유난한 이 책은, 바로 뒤에 나온 『안철수의 힘』을 예비하는 책으로, 실은 안철수를 띄우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었던 책이다. 분량과 내용 면에서 제일 앞 안철수 꼭지가 가장 자세하기도 하지만, 당시엔 위 멘토들과 안철수의 관계가 정리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죽이기』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말았다(『강남좌파』는 차라리 여전히 유효한 독자적 기여가 있다고 본다).


  기계적 극중주의로, 의도와는 달리 뺄셈만 하다가 갈 길을 잃고 서글픈 신세가 된 안철수를 망치는 데, 강준만도 조금은 기여하였다고 하면 과장일까.





  어제를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이제는 상당수가 그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퇴장한, 인용 문헌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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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지은이의 『엄마, 이렇게 말해주세요』가 꽤 좋아서 읽어 보았다.

  이번 책도 곰곰이 생각하여 볼 만한 실용적인 내용이 많았다. 만화도 귀엽다.


  그런데 이 분은 부모의 성역할과 아이의 성차를 주어진 것으로 고정하여 놓고 있다.

  대부분의 육아 책이 그렇기는 하다.

  그러한 접근이 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찾아보니 70년 7월 12일생으로 나이가 그렇게 많으시지는 않다.

  블로그 https://ameblo.jp/heath-lab/

  Webinar 사이트 http://webinar-woman.com/archives/instructor_info/takeuchi

  아기는 아기일 뿐, 딸이나 아들인 것을 의식하여 대하게 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은데, 그래도 이런저런 환경에 은연하게 영향받는 것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겠지.

  남자아이인 조카와 비교해 보면 처음부터 다른 면들이 있는 것도 같고.

  개인차와 성차를 구별해내며 성중립주의와 성인지적 관점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에 다른 책이 또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어 책은 모두 검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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