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 그러나 이 세계 자체, 우리 주위에 있으며 우리 내면에도 현존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일면적인 것이 아니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전적인 윤회나 전적인 열반인 경우란 결코 없으며,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라는 것도 하나의 착각인 셈이지.


(...) <언젠가>라는 것은 착각이고 다만 비유에 불과[하네!] 죄인의 내면에는 지금 그리고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깃들여 있다, 바로 그런 이야기야. 자네는 죄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자네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아니 모든 중생 개개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바로 그 생성되고 있는 부처를, 바로 그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부처를, 바로 그 숨어 있는 부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네. 고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이 세계는 매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따라서 나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나에게는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세상만사의 이치가 틀림없이 그러하며, 세상만사는 오로지 나의 동의, 오로지 나의 흔쾌한 응낙, 그리고 나의 선선한 양해만을 필요로 할 뿐이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나를 후원해 줄 뿐, 나에게 결코 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 말이야. 나는 나 자신의 육신과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 여기 있는 이것은 한 개의 돌멩이네. 이 돌멩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흙이 될 것이며, 그 흙에서는 식물, 아니면 짐승이나 사람이 생겨나게 될 거야. 예전 같았으면 이럴 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겠지. <이 돌멩이는 단지 한 개의 돌멩이일 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마야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순환적인 변화를 거치는 가운데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정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그것에도 가치를 부여해 주는 바이다.> (...)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 그 사물들이 가상이든 아니든 그것은 별 문제가 안 돼. 만약 그 사물들이 가상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사실 가상적 존재인 셈이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사물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와 똑같은 종류인 셈이지.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거야. (...)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생산적이지 않았던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1-2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ㅎㅎㅎ

2015-01-29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물리적/심리적 분량이 길어 다소간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국제적 세력구도가 생성되고 자리잡게 되었는가에 관한 한 설명으로, 이름하여 '문명 불평등 기원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정한 사회 혹은 민족이 '우연히' 환경적, 지리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 살게 된 것이 결국 문명간의 우열('지배'라는 견지에서)과 역사의 진행방향을 좌우하였다는 논지입니다.

1998년 퓰리처 상 일반 논픽션 부문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하였다는데, 흥미롭긴 하지만 그 정도인가 싶긴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논증의 허점이 많아 보이네요.


저자의 에필로그가 멋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인간사랑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1989년에 간행된 이 책은 그의 가장 초기 저작이지만 지젝의 핵심 사상이 모두 담겨있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고, 이어질 그의 다른 책들(지젝은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연애도 해가면서 도대체 언제 그렇게 많은 책을 써/싸제끼는 것인지!!!)에서 주요 주제에 대한 변주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니만큼 지젝에 대해서는 일단 말을 아끼기로 하겠습니다. 그의 문체는 신선하고 위트 넘치지만, 마르크스, 라캉, 무엇보다 특히 헤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독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지젝이 정세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평'의 주요한 이론적 전거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도 듭니다.

맛보기로, 지젝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는 대목을 소개해드립니다. 표현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문학에서 헤겔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제인 오스튼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정신현상학』에, 『맨스필드 공원』은 『논리학』에, 『엠마』는 『백과사전』에 필적한다. 우리는 『오만과 편견』에서 오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진리의 변증법에 관한 완벽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엘리자벳과 달시는 각자 상이한 사회적 계급에(그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 그녀는 빈곤한 중산층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오만 때문에 그의 사랑은 엘리자벳에게 가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엘리자벳에게 청혼을 하면서 그는 그녀가 속한 세상에 대한 경멸을 그녀에게 솔직히 고백하였고 그녀가 그의 프로포즈를 전례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녀의 편견 때문에 그를 거만하고 허영심에 가득 차서 우쭐대는 인물로 바라본다. 그의 오만한 프로포즈는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고 그녀는 그를 거절하게 된다. (...) 그들의 관계가 결렬된 후 그들은 각자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결혼으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가 지닌 이론적인 흥미는 첫번째 만남의 실패, 타인의 실재적인 특성에 대한 이중적인 오인이 최종 결론의 실정적인 조건으로서 작용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진리에 곧바로 도달할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오인을 통한 고통스런 우회로를 피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오인을 '통해서만' 타인의 본성에 도달하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만 달시는 자신의 그릇된 오만으로부터 벗어나고, 엘리자벳은 자신의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계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 속에서 자신의 편견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고, 달시는 엘리자벳의 허영 속에서 자신의 그릇된 오만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기 때문이다(인용자 ; 앞에 '각각의 주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전도된 형태로 되돌려 받는다.'는 구절이 나옴). 다시 말해서 달시의 오만은 엘리자벳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단순한 실증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의 본성의 직접적인 속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녀의 편견어린 시점으로부터만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스러운 시점 속에서만 잘난 체하고 무식한 처녀가 될 뿐이다. 헤겔의 용어로 말하자면, 타인의 결점이라고 인식된 것 속에서 각자는 (그것을 모른 채) 자신의 주체적 위치의 허위성을 인식한다.

타인의 결점은 단지 우리 자신의 관점상 왜곡을 객관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자가 김화영 교수님이시기에 집어 들었습니다(김화영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알베르 까뮈 『이방인』, 『페스트』를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플로베르도 집필에 무려 4년 반이라는 세월을 보냈다고 하고, 번역작업 역시 꼬박 3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줄거리야 많이 알려져 있는 터이니 패스하고, 작가도 역자도 심혈을 기울여 단어를 고른 티가 많이 났습니다.

“내가 볼 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무(無)에 관한 한 권의 책,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