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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1)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밀란 쿤데라
2) 매혹적이다! 환상적이다! “끓고 있는 얼음”과도 같은 이 어마어마한 소설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흔한 언설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못된 상상이 이빨로 고삐를 잡아끊고 마구 뛰놀았고, 땀에 젖은 눅눅한 공중에서 물고기 떼가 살랑거렸다. “물체의 4차원을 발견”한 듯 마르케스는(Homo iste statum quartum materiae invenit) 머뭇거리는 우리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린다. 우리가 넘겨진 곳은 “자세한 듯하면서도 막연”하고, “흥분과 실망, 회의와 터득”이 자폐적으로 순환하며, 기쁘지만 동시에 서글퍼서 향수(鄕愁)마저 느껴지는, 야릇하기 짝이 없는 세계이다. “엄숙한 존경심과 불경한 호기심의 이율배반”은 어쩌면 “문학의 운명”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근데 그게 묘하게 짜릿하다.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다들 믿었잖아요. 똑같은 얘기를 내가 했다고 해서 남들이 믿지 않을 까닭은 없죠.” 따지고 보면,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이념들을 가지고” 죽고 죽이는 우리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지 않은가. 바야흐로 좋은 시절(buen dia-『백년 동안의 고독』은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일대기이다, 불어로는 다름 아닌 belle epoque!)이 아닌가.
3) 이전에 천명관, 『고래』에 대한 감상평을 쓰면서 ‘작가가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는 은희경의 심사평을 인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어 보니, 『고래』가 마르케스의 분명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예컨대, 영화라는 걸 처음 접한 마콘도 사람들이 “한 영화에서 죽어 땅에 묻혔고, 그래서 그들이 애도의 눈물까지 흘려주었던 사람이 다음 영화에서 아랍사람으로 바뀐 채 다시 (살아나) 나타나는 장면"을 보고 그런 “엉터리사기는 참을 수 없다"며 화를 내면서 극장의 의자를 부숴버리는 대목에서는 기시감(旣視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여전히 훌륭한 소설이다).
4) 또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하얀 전쟁』의 저자, 안정효의 충실한 번역에 힘입은 바 크다. 안정효는 이후 한국번역문학협회가 제정한 제1회 번역문학상(1982)을 수상하기도 했다.
5) 책을 다 읽고 나니 송두리째 뿌리 뽑힌 공허의 거울 속에서 웬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노인은 다시 아이가 될 채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