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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운명』은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의 대표작으로, 이른바 ‘운명 4부작’의 첫 번째 권이다. 1975년에 발표되었고, 위 4부작은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청산』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운명』의 내용을 기본으로 한 변주들이다.
다른우리 출판사에서 2002. 12.부터 2005. 3. 사이에 모두 번역되었다가 현재는 네 권이 다 품절되었다. 다른우리 출판사에서 2002. 12. 출간한 『운명』은 독일어 중역본이다. 아마도 2002. 10. 10. (스웨덴 현지 시각) 노벨문학상 선정 발표 후 급히 번역하여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부작 국역본 중 『좌절』만 헝가리 문학 전공자의 번역이다.
『운명』은 2016. 5. 민음사에서 다시 나왔다. 헝가리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유진일 박사의 새 번역이다. 헝가리 문학잡지인 <뉴거트Nyugat> 3세대 작가인 로너이 죄르지(Ronay Gyorgy)의 아들, 로너이 라슬로(Ronay Laszlo) 교수 밑에서 수학하셨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선정 발표 후 번역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와신상담의 시간이 있으셨다.
소설의 제목 ‘Sorstalanság’은 ‘소르슈탈란샤그’ 정도로 발음하고, 영어로 fateless의 의미라 한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sors는 ‘운명’이고, talanság은 ‘원인불명/혼란’ 정도의 뜻인 모양이다(talan이 '없는', ság이 '것'). 우리도,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고, 피하거나 빠져나올 수도 없을 것만 같은 비극적 사태에 ‘不’運(fate‘less’) 내지 運‘命’(宿命, fatum, 필연성)이라는 말을 붙이곤 하였다.
그러나 강제수용소 생활을 남 얘기하듯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결국 독자들을 '대신 화내게 하는' 그의 당혹스러운 글몸이나,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내가 점점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 없다. 그 말은(여기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282쪽)라는 언급을 보면, 그가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자 했던 것은 꼭 그런 내리누르는 느낌의 운명만은 아니었던 듯도 싶다. 도리어 야만은 현재 진행형 아우슈비츠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우리 자신들로부터 비롯된다.
임레 케르테스는 2016. 3. 31. (현지 시각) 타계하였다(관련 기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