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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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를 처음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어릴 적 TV를 통해 재미있게 봐왔던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난다. 9살의 어린 소녀가 괴력을 보이며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바라보며 떠도는 괴짜 소녀의 인상이 이 소설 『모모』에서도 느껴 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모모는 말라깽이이면서 남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들어 주는 능력을 소유한 불우한 소녀로 등장하지만 그 옷차림이나 외모는 TV드라마의 삐삐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책 읽기 교재로 본다고 하여 구입해 줬던 책으로 이 후 드라마에서 이 책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늦게나마 읽어 본다. 내용의 주제는 조금은 어려운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서 과연 시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 갈까 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다. 공상과학과 같은 느낌도 있고, 어린 소녀 모모의 모험담이 담겨 있기도 하고, 우리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모습도 담겨 있고 해서, 단순히 어린아이의 모험 소설이라는 것 보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책을 보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늘 상 살아 가면서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시간이 없다”는 말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 개개인이 인식하고 느끼는 마음의 여유와 자유가 시간이 있고 없고’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도시 생활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뭔가에 쫓기고 내 몰리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과연 시간의 정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볼 때 물리학적인 의미와도 상통하는 내용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폴』도 생각난다. 주인공 폴의 마스코트 인형 삐삐가 휘두르는 망치에 모든 시간이 정지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그려지는 호라박사가 시간을 정지시키는 장면과 같게 느껴진다. 또한 모든 물질이 정지하는 순간 시간도 멈추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시간의 의미는 너무 어려워서 그 개념을 잡기도 어려운데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시간의 의미는 그와는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시간의 꽃”의 의미도 시간을 형상화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돌아 볼 수 있는 생각도 든다.


     소설에 등장하는 시간을 빼앗아 가는 회색신사들과 그들이 피는 시가나 그들의 분위기가 마치 우리들을 삶의 틀 속에 옭아 메어 놓는 현실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느 일면은 점차 획일화 되어가고 각박해지는 우리 삶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고, 단지 돈과 노동의 착취라는 생각에 한정하였으나 시간도 함께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색신사의 행태를 볼 때 마치 영화 『맨 인 블랙(Men in Black)』시리즈에서 검은 선글래스를 쓰고 번쩍하는 망각의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이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는 회색신사의 이미지가 비슷해 보인다. 그 역할은 서로 다른 의미로 보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언제나 없는 거리’를 갈 때 느리게 가는 것이 빠르게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때, 우리는 늘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는데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과 각 개인의 개성을 살릴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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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이야기 1 - 얀과 카와카마스
마치다준 지음, 김은진 외 옮김 / 동문선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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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셸 실버스타인이 쓴 그림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학창시절 시내의 대형서점에서 그림과 간단한 글씨만을 보면서도 그 전달되어져 오는 의미는 너무도 많았던 그림책이 생각난다. 왜 그 책의 기억이 날까 생각해 보니 이 책 『얀 이야기 1 – 얀과 카와카마스』에서 얀이 카와카마스에게 해주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으면서 과연 그 책은 어떤 책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어 보게 된다.


     소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딸 위녕에게 전해주는 엄마의 사랑을 책을 읽은 느낌을 통해 전해주는 이야기는 너무도 감동적으로 와 닿았었다. 그렇지만 막상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공지영 작가가 느꼈던 아니 위녕에게 전해주는 엄마가 느꼈던 느낌을 느끼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메마른 것인지 몰라도 조금은 공허하다고 할까(?), 뭔가 부족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시각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반면에서 이 책에서는 그 와는 다르게 느껴 진다. 얀이 카와카마스에게 전해주는 느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데 그 주변 환경은 더욱 썰렁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배경이 러시아의 초원이고 그곳에 사는 물고기 중에 한 종류인 가와카마스가 등장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적으면서 러시아의 초원을 얘기하면 왜 시베리아라는 동토의 땅을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라는 나라를 가보지도 못했고, 그곳의 환경이 어떤지는 몰라도 자주 방송매체를 통해 들었던 곳이 러시아 하면 시베리아라는 인상이 각인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동토라는 이미지가 이 책에서 그려지는 쓸쓸한 초원의 분위기와 맞물려 시베리아라는 느낌을 갖게 하나보다.


     등장하는 고양이와 가와카마스는 어울리지 않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일본—작가가 일본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이라는 느낌이 들고, 가와카마스는 러시아의 초원의 원주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를 덧붙여 놓은 것은 아닐까? 나의 얼렁뚱땅하는 상상이다. 


     쓸쓸한 초원에 인적 없는 들판에 눈 덮이고 삭막한 분위기에서 고양이와 물고기의 오가는 정의 이야기는 우리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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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이야기 2 - 카와카마스의 바이올린
마치다 준 글.그림, 김은.한인숙 옮김 / 동문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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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이야기』는 시리즈로 나오는 책인가 보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5권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의 책도 그렇지만 두 번째도 분위기가 조용하면서도 평온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 제목의 내용처럼 바이올린을 켜는 가와카마스의 모습은 쉽게 연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중간에 삽입 되어져 있는 삽화를 통해 그 느낌을 알아 볼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물고기인 카와멘타이의 모습도 쉽게 연상되지가 않는다.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주인공인 얀은 고양이고 그 주변에 가와카마스와 카와멘타이, 생쥐, 다람쥐 등이 등장한다. 주인공 얀을 중심으로 주변의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고양이의 먹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야생의 고양이는 삵이나 살쾡이 등의 종류이고 이들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나 기타 야생쥐와 다람쥐 등이 그들의 주식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이런 관계라고 하면 얀이 가와카마스와 카와멘타이나 생쥐 등에게 차를 마시자고 하면서 집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결국 잡아 먹겠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장면과 이어지는 헤어짐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는데 이런 장면은 야생의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일 것이다. 내가 너무 「동물의 왕국」과 같은 사실적인 야생의 모습에 너무 심취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왜 고양이인 얀과 물고기인 가와카마스가 등장하고 허허벌판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책에서 그리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일기는 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히는 작가의 얘기가 꼭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데 있어서는 동감이 간다. 그저 책 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그냥 그대로 느끼면 좋겠다는 얘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꼭 무엇을 읽으면 그 내용이 뭐고, 그 내용에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 무엇인데 하는 식의 교훈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그냥 책 속의 이야기에서 느끼기만 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런 면에 있어 나는 이 책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조용하고 정적이며 얀과 가와카마스 간에 오가는 느낌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앞에서도 얘기한 것과 같이 야생의 세계에서는 이들의 관계는 단순이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관계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눈 덥힌 벌판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나라와 같이 벌판보다는 산과 계곡이 많은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기가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벌판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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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주경철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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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대항해 시대』는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라고 한다. 이는 책에서 정의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인터넷의 백과사전에 설명되어진 내용이기도 하다. 이 용어에 대한 의미에 대해 책의 초반부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다른 설명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인터넷을 조사해 보니 1990년 코에이라는 회사에서 발매한 컴퓨터 비디오 게임의 이름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몰락한 귀족의 모험을 그리는 어드벤쳐 게임이라는 것이 또 다른 설명이다. 이를 봐도 저자가 설명했듯이 대항해 시대의 주된 해석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승리자 또는 정복자의 개념에서 역사를 그리고 있다고 하겠다. 이에 저자는 새로운(?)시각에서 대항해 시대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간의 대표적인 주인공은 당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제노바 출신으로 스페인 왕국의 군주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후원을 받아 아시아를 찾으러 떠났다가 신대륙을 발견하였고, 이를 계기로 대륙간의 교류를 통해 벌어지는 유럽의 식민지 확보 경쟁의 시발점을 제공하였다고 하겠다. 정치적인 배경, 그로 인한 식민지 쟁탈전에 따른 폭력, 화폐의 유통, 노예무역, 환경적인 요인, 종교적 교류, 언어, 음식, 과학기술의 교류 등 다방면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 특히 유럽 중심적인 대항해 시대 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15세기 이전의 아시아 정세와 중국의 정화의 해외 원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에 있어 나름 탈 유럽중심의 관점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다방면에 대한 피정복이나 종속국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내용이 제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연상하게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의 해석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일례로 유럽의 전염병에 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유입으로 인한 원주인의 90% 이상의 희생을 일으킨 홍역,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대한 사례는 동일한 견해이기는 하나 그 반대의 관점에서 아메리카의 질병이 유럽에 전파된 사례로 매독을 얘기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면역력을 키워온 유럽인이 대항해를 거쳐 아메리카에 들어가 전염병에 덜 접촉을 하게 된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 주었고, 이로 인해 대륙의 지배적인 힘을 키워 왔다는 설명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이 대목을 보면서 14세기 몽골의 유럽을 정복하는 과정에 나오는 흑사병의 얘기 또한 전염병을 하나의 무기화한 세균전(細菌戰)을 연상하게 한다. 대항해 시대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몽골군과 같은 유럽 침략은 아닐지라고 그들의 몸에 의해 전염된 전염병은 원주민을 몰살 하게 하였고, 그 결과 유럽인이 신대륙에 발판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역사를 써 나감에 있어 14세기의 몽골의 공격은 야만인의 침략으로 묘사 되어지고 있고,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인의 정복은 단지 사건으로 보여지는 것에 있어 다분히 승리자의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노예무역에 대한 시각도 강제에 의한 무자비한 노예 획득과 무차별적인 노동력 착취로 인식되어지던 내용을 아프리카 현지의 이해득실에 따른 무역이 시발점이었다는 것과 비단 아메리카대륙의 노예무역만이 아니라 유럽에도 적쟌이 많은 노예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상기 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바다를 통한 대항해 시대를 맞아 대륙간에 이어지는 생물학적인 파괴와 변종의 파급은 수백 수천 년을 이어 온 생태적 균형을 깨서 새로운 자연파괴로 이어지는 현상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되어 왔으며, 지금도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런 현상은 더욱더 파괴적인 양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 단순히 시대적인 배경과 그 결과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다양한 인문사회학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어 대항해 시대를 전후한 변화의 모습을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유럽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전쟁의 수행하는 하나의 획기적인 살상 무기인 전염병은 세균무기로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몽골의 유럽으로의 진출이나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은 동일한 정복전쟁의 내용이기는 하나, 전쟁에서 승리 후 지속적인 통제와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었는가 여부가 지금 우리가 보는 역사의 결과의 차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는 중국의 정화가 이미 대항해 시대 이전에 정복을 꾀하였으나 유럽의 식민지 확보와는 그 양상이 다르게 전개 되었던 점은 국내의 상황이나 시대적 요구가 달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국 내외의 시대적 상황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도구—배나 전쟁무기나 전염병과 같이 인지했던 하지 못하였든 경쟁력 있는 무기—의 확보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 획득한 지역에 대한 시스템적인 관리체계가 뒤따라야 함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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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조경식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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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독일의 함브르크의 대학교수였다고 한다. 그 대학의 실명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학가의 이야기다. 가상의 등장 인물들이 실재 소설이 발표되고 나서 누구를 모델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고 한다. 그만큼 소설의 내용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실감이 난다. 소설을 통해 독일 대학가에 대한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애정사는 세간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 중에 하나일 것이다. 개인간의 애정 내용 중에도 특수한 상황소설에서처럼 스승과 제자 간이라고 한다면 더욱 더 관심이 쏠린다. 소위 얘기해서 불륜(不倫)이라는 관계는 더더욱 관심이 높아 진다. 이야기의 내용은 스승과 제자의 애정놀음이 대학가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재 조합되면서 단순한 개인간의 애정놀음이 아닌 사회적 이슈를 통해 개개인의 목적에 맞게 재 조립, 창조되어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와 여 제자와의 불륜적 관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대학 내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암투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10대의 딸을 둔 유부남인 대학교수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담당 교수를 사랑하게 되어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은 여느 형이하학적인 애정물 이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야욕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암투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누구는 기자로서의 입지를 세워 성공하기를 원하고, 이를 이용하여 신문발행 부수를 늘리려고 하는 편집장의 거래가 있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공개 청문회의 증인을 유지하게 끔 매수하는 돈줄이 되는 모습이 있다. 총장은 자신의 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의 표를 의식하여 애정사건을 강간사건으로 확대하여 청문회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고 하고, 청문회를 통해 부총장의 새로운 자리로 오르려는 징계위원회장의 음모, 여성에 대한 입지를 높이기 위해 강간사건으로 확대하여 여론몰이를 하는 여성인권위원회장도 그들 부류들 중에 하나이다. 또한 역사학과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자료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계획에 맞춰 발표하기 위해 언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애정사건을 이용하는 모습은 각자의 용도에 맞게 사건의 재 구성 및 왜곡하는 현장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야기의 결과는 자신이 저지른 부적절한 관계를 정리하고 공개 사과와 대학가의 음모에 대해 밝힘으로써 대 반전으로 결말이 난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유부남인 대학교수와 논문지도를 받는 여 제자와의 애정놀음은 흔히 일어 날 수 있는 일들일 것이다. 물론 이런 애정관계가 객관적인 논문 지도와 학위 수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유부남과의 불륜이라는 문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이 이 사건을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왜곡하는 과정은 여느 정치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대학가 내에 벌어지는 정치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은 결자해지라고 했듯이 문제를 만든 당사자가 결론을 내고 있지만 발단이 된 사건도 그렇고 그 사이에 벌어진 대학가 내의 암투는 찝찝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청문회를 진행함에 있어 여론몰이를 하는 공권력의 횡포는 우리네 모습을 비춰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얼마 전에 본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재판하는 재판정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정해진 범인, 정해진 범행 행각을 짜맞추고 정해진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진행되어지는 연극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소설을 보면서 애정행각을 강간사건으로 비화하는 내용이지만 만약에 애정행각을 보지 않고 사건을 접했다고 하면 어떤 결론이 났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 각 분야별로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봤을 때 과연 강간이라는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렇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황상의 증거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당사자에 대한 얘기가 정신적 충격에 의해 정상적으로 진술 할 수 없어서 무시된다는 점정신과 박사님의 연구에 대한 권위의식이 작용한다과 사건을 목격한 인부들의 진술의 왜곡약자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 아닌 흥미거리를 목격한 목격자의 모습을 숨기려는이 돈에 의해 매수되는 모습은 우리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면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내용은 사뭇 우리들의 상황과는 달라 보인다. 소설에서는 정신과 입원과 격리를 하는 반면 우리는 거의 방치하는 듯한 방관의 모습으로 인식되지만…. 또한 사건 현장의 목격자라고 한다면 피해자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방관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제도가 법적으로 강구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우리의 법 제도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방관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명백한 사건 사고가 아닌 개인적인 상황이 결부된 사건 사고는 이를 이용하려는 여러 주변인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왜곡되어 비춰짐으로 인해 당사자는 물론 그 당사자의 가족에게 씻기 어려운 치욕으로 일정기간 이상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상황, 이런 문제를 처음부터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원천적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데…..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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