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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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가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 로마제국이 몰락의 상황으로 접어 들면서 그들의 정치 체제의 한계와 망하게 된 이유를 배우게 한다.

     대 로마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꼽으라고 하면 한 손을 넘어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많은 내용의 이유를 손꼽을 수 있겠다.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하는 로마인, 원로원을 통한 풍부한 인재 등용,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등의 명석한 인재의 강력한 리더쉽, 분권형의 집권체계, 법제화에 따른 제도의 완성도, 구성원의 철저함 등등 나열하기에 끝이 없다. 그런 내용 중에 나는 지도층의 노블리스오블리제(noblesseoblige)를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즉 집권층, 기득권층, 실력자의 솔선수범이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이런 공감대가 거대 제국을 천 년이 넘게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런 생각과 느낌은 이 책의 연재물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생각을 읊조리게 한다. 이런 생각과 지식을 갖게 한 것은 나름의 생각을 해설하는 저자의 주관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재미도 있고, 나름의 저자의 생각에 동조하게 한다.

     13번째로 나온 이 책 “로마인 이야기—최후의 선택”은 이런 로마인에 대한 생각 중에 제국의 쇠퇴기에 접어 들면서 여러 제도적인 장치—권력이양 방법, 정치적 구도, 세금체계, 화폐구조, 등등—의 변화는 거대제국을 서서히 무너지게 하는 내용들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바라보는 관점은 명확하다.
     13권에서 다루는 정리리더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의 황제가 큰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처음에서 끝까지 두 황제의 치세는 앞 권들에서 거론하는 여러 황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콘스탄티누스의 경우는 기독교의 공인이라는 사건을 통해 중세 이후 번성하는 기득권층인 기독교도들에 의해 미화되었다는 내용을 당시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내용을 보면 콘스탄티누스와 디오클레이티아누스와는 기독교에 대한 생각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당시의 황제가 기독교에 대한 특별한 배려에 의해 공인되어졌다는 설명은 없다. 다신교를 믿는 당시 로마인들의 종교관 중에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로 인정되는 평범한 사건이었다고 보여 진다. 후세에 기득권층이 된 기독교도에 의해 위대한(?) 황제의 반열에 올라 설 수 있었던 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라는 설명은 새로운 모습으로 보게 만든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나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이나 모두 나름의 관점과 목적에 의해 인정되고, 시행되었던 일련의 정치 행위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행위이며 이런 정치행위가 거대제국의 통치자로서 다수를 위한 관점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결과를 만들어 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 두 황제 모두 로마제국을 망하게 만드는 쪽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기득권층의 피와 땀의 희생은 거대 로마제국을 이끄는 공감대 형성이고 이런 정신은 로마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희박해지는 쇠퇴기에 두 황제 또한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기독교의 공인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네 이웃을 사랑하라—과 맞물려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인지는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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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 법의학과 과학수사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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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학에 관련된 책은 최근에 많이 출간되었었다. 그런 내용에 흥미를 느껴 몇 권을 읽었던 기억도 난다. 또한 이런 내용은 모 방송의 연재물로 CSI과학수사대라는 외화물의 내용을 보면서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내용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컬러 화보와 중간중간 실존 인물들에 대한 소개, 다양하게 다루는 법의학 관련 내용은 전문적인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사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생생한 현장감을 주면서 외화시리즈에 나오는 장면장면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한다. 한마디로 시각화 했다고 생각된다. 화보 위주의 이야기 전개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루는 주제별로 나타나는 사건 개요와 설명은 작가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보면서 기존에 나와 있는 법의학 관련 책과 별반 차이가 없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막상 책을 펼쳐 보면서 그 구성은 법의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컬러 화보로 보여주는데 있어서는 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좀 비싸다.
     책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하는 것이 다루는 주제—증거 수집, 자살이냐, 타살이냐?, 죽음의 흔적, 사체 속의 벌레들, 피는 알고 있다, 발사된 총알, 등의 장별 이야기는 사진과 곁들여 지면서 현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하게 보여져 재미가 더해진다. 또한 법의학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우리 사회의 죽음과 시체, 등의 터부시 하는 관습도 있겠지만 책 속에 보여지는 장면이나 내용의 화보는 특정관련자 이외에는 볼 수 없는 사진이라는 한정과 특수성의 부여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너무 폐쇄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외국의 사례를 통한 간접이해도 있지만, 우리의 방송매체를 채우는 각종 사건 사고의 내용도 특정 사건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일반인의 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고,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수사 방법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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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이가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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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구입한지는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꽂이에 꼽혀 있다가 문득 눈에 띄어 읽어 본다. 책의 표지가 무척이나 야한 그림이다. 포르노나 가학적인 성행위의 주인공들의 복장과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림의 표지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의 특징적인 내용으로 소개하는 글들은 무생물이나 곤충의 시각에서 보는 변태적인 행위를 소설화 했다는 색다른 내용이라는 이야기다. 허나 이야기의 전개와 방법에 있어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많고, 다루는 소재 또한 파격적이다.

     SM(새디즘(sadism)—가학증과 마조히즘(masochism)—피가학증)의 약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많은 SM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중에 방금 전에 써 놓은 가학증과 피가학증의 약자가 맞을 것이다. 이 SM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 작가가 이 소설의 작가라고 한다. 헌데 이야기의 내용과 다루는 내용은 살인과 정신이상자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내용이나, 죽인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 또한 이런 행각을 벌이는 사람이 하나가 아닌 여러 다수라는 내용에 있어 비정상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인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는 제목과 잘 맞는 것 같다. 책 표지나 중간에 나오는 여자의 벌거벗은 뒷모습은 무척이나 선정적이면서도 퇴폐적인 느낌을 작게 한다. 또한 SM클럽에서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퇴폐적인 일본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비단 일본이 이런 모습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일본인 작가의 이야기와 아무리 상상의 산물이 소설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면을 조금이나마 가미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곱게 보여지지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소설의 내용과 이야기는 실망감이 많이 드는 작품이고, 새로운 시각—죽은 사람이 곤충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에서 써 내려간 소설의 특이점이나 재미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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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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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네 집에 대해 옛 기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풀어가는 이야기는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또한 여성의 젊은 시절 사랑했었던 옛 연인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내면서 앳된 젊은 여인의 사랑이야기가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 속에 우리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한편으로는 서글픈 우리의 과거 이야기 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추억의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작가 박완서 소설은 옛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자전적인 내용인지 아니면 나름의 픽션을 덧붙인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하게 만든다. 그런 만큼 이 소설은 젊은 여인의 첫사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미있으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결부되어 내 주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구나 하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분명 감상주의자는 아니고 무척이나 현실적인 인물로 생각된다. 또한 이런 인물이 우리의 한국 현대 여성으로 나의 어머니 세대의 전형일 것이다. 그런 만큼 삶에 대한 애착과 생활력은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근본일 것이다. 그런 악착 같은 생활 속에서도 나름의 첫사랑 이야기는 가슴 설레게 하고, 엿듣고 싶게 만드는 사랑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주인공 시각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
     무능하고 나약한 그 남자는 부잣집(?) 아들로 노모의 응석받이로 자라면서 한국전쟁 이후에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소외되어 무위도식하는 모습으로 비춰져 보이고, 이와는 정반대의 악착 같은 삶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은행원과의 결혼은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그 시대 상황에서의 좋은 탈출구로 생각된다. 허나 로맨틱한 젊은 시절의 첫사랑은 쉽게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이 소설의 초두에 이야기를 풀어 내는 돈암동 안감내에 대한 이야기는 그 남자와 얽힌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는 지명이면서도 장소라고 하는 것은 뭔가 특별함을 부여해 주고 있다.

     주인공이 그 남자와 청계천 주변의 방산시장, 중부시장 등을 전전하면서 보여주는 사랑이야기는 현재의 방송매체를 장식하는 타락하고 쾌락적인 뉴스거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은행에서 일하는 남편과 친정의 경제적인 문제 등을 풀어주는 남편을 속이고 옛 애인과의 애정행각(?)은 현대의 주간지 등을 장식하는 가십거리의 하나로 결말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그 남자의 삶에 메시지를 전하면서 처음에 나오는 돈암동 안감내에 있는 그 남자네 집은 주인공의 젊은 날을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끝맺음이 된다.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 젊은 여인의 첫사랑 이야기는 솔직하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소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너무도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생각은 소설 속에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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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
김성환 지음 / 열림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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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를 아십니까?”의 TV방송 제목이 생각이 난다.
     고바우 하면 모 신문에 기제 되었던 신문만화의 주인공으로 나름으로 시대를 풍자하고 해학을 곁들인 신랄한 비판 만화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생각에 최근 청계천의 복원과 맞물려 당시 상황을 보여 준다는 내용에 책을 구입하였다.

     만화에서 주었던 느낌과 책에 나오는 그림의 느낌은 동일한데 왠지 모를 부족함이 느껴진다. 또한 왠지 급조된 느낌을 받는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시대 상황에서 서민들의 애환과 상황을 보여주는 만화풍의 그림은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솔직하게 보여 준다는 느낌은 전달되어 오고 있으나 그림의 전개와 그에 따른 이야기의 내용은 책 나름의 독특한 맛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림 속에 전해지는 내용과 그에 따른 설명이 단순한 그림의 해설로 이어지는 내용은 후반부에 가서 지루한 느낌을 갖게 한다. 화가인 저자가 직접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을 연상하여 그림의 내용과 덧붙여 설명되었더라면 책의 재미와 당시 상황을 사실적인 내용으로 전달되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00여 쪽의 책 분량과 만화풍의 그림이 신문에서 보았던 풍자만화의 느낌을 전해주고 있고, 40 여장의 그림은 부족한 느낌을 갖게 한다. 아니면 당시 상황의 사진과 곁들여 저자의 그림을 보여 준다면 보다 사실적인 면이 더 부각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나름의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린 그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또한 당시 상황의 사진을 찾는다는 것 또한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단지 편하게 책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 좋아하는 게으른 책읽는이의 불평의 얘기일 것이다.

     청계천의 복원과 맞물려 책이 나오고, 그에 따른 “그때를 아십니까?”의 시대상황을 고려한 책의 출간이 왠지 모르게 급조한 느낌을 갖게 하지만 저자의 시대 상황을 풍미하는 그림은 지금보다도 더 먼 훗날에 우리 서민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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