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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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서 당사자인 조르바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느낌이 우리들 정서에 친근한 느낌을 준다. 역자의 번역 느낌을 그렇게 번역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400여 쪽에 달하는 조르바의 행동거지가 어찌 보면 푼수 같기도 하면서, 다방면에 걸친 엔터테이너와 같은 탤런트이면서, 여성에 대해서는 의혈남 같은 느낌은 전편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다 읽고 역자의 후기에 소개하는 조르바의 실존인물에 대한 설명과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설명에 이어 영화화 되었던 ‘희랍인 조르바’의 주인공이 앤터니 퀸이라는 설명을 보니 딱 맞는 이미지의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을 읽으면서도 외모와 느낌이 앤터니 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이 배우가 주연을 하여 영화화 되었었다고 하니 나의 생각과 같았다는 느낌이 든다.

     털털하면서도 안 해 본 것 없이 다해본 인물, 여성에게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정의에 동참하고, 불의를 보면 과감히 떨쳐 일어나 행동으로 보이는 인물, 사상과 생각이 직설적이고, 박학다식하며 내색하지 않지만 평상시의 거친 말 속에 녹아 들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인물, 이런 종류의 표현으로 조르바에 대한 설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막상 이 책에 대한 명성이나 주변에서 봐 왔던 찬사에 책을 선택하고 구입은 했지만 오랜 동안 책장에 꽂아 놓았다가 펼쳐 보면서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중반 이후까지 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 읽었다고 작가의 이야기나 조르바의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나”인 작가와 조르바 간에 오간 사건사고와 이야기의 내용이 이 책의 주 내용이고, 그 내용은 주로 주인공인 조르바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인 나는 광산업자로 본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책을 많이 읽고 글 쓰기를 하는 속되게 이야기 해서 샌님이고, 이런 광산업을 현장에 직접 나서서 추진하는 공사 현장감독이라고 하겠다. 조르바는 탄광 채굴에 대한 업무 추진과 그에 얽히는 주변 상황에 개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조로우면서 조르바의 생각이 한마디로 무엇이다 라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느낌과 생각을 전편을 다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끼게 한다.
     작가에 대한 설명과 조르바에 인물 설명, 그리고 책에 대한 기타 참고내용을 찾아 보니 “자유를 향한 영혼의 투쟁”이라는 어구로 표현해 놓았는데 막상 전편을 읽고 그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반드시 그런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수도원에서의 언행과 행동, 은퇴한 늙은 여가수 부불리나와의 애정행각(?), 그리고 죽음, 과부 소멜리나의 행동과 그녀의 죽음 등은 조르바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은 아닐까?

     한마디로 조르바의 생각이나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내용이 무엇이라고 단 몇 마디의 내용으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조르바라는 인물에 대한 느낌들을 묶어 보면 여느 책 소개서에 나오는 ‘자유스럽다’, ‘거침이 없다’라는 단어들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읽는 내내 주절거림과 같은 조르바와의 대화 내용은 한편으로는 뭔가 깊은 속뜻이 있는 것과 같기도 한데 이런 내용은 잘 모르겠고, 오히려 구수하다고 할까 이 인물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은근함에 끌리게 한다. 마지막에 유럽을 전전하다가 러시아에서 결혼하여 여생을 마치면서도 작가와의 서신을 통해 그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정감이 느껴지게 한다. 이런 인물을 통해 작가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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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최대의 교훈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권오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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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다. 헌데 그 내용이 무척이나 이상적이다.

     최근 들어 이런 질문들을 해 본다.
       “나의 아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나의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단순히 먹고 살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생각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해 줄줄 알고, 가슴이 뜨거운 그런 사나이로 키우고 싶고, 그렇게 자라낫으면 좋겠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보던 중에 이 책이 눈에 띈다.

     이런 나의 생각이 이 글을 쓴 저자와 마음이 통한 것일까? 나와 똑 같은 고민은 저자도 한 모양이다. 그렇길레 이 책이 1774년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달이 되었고, 책으로 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총 7장에 각 장 별로 5~7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내용이 무척이나 다방면에 아들에 대해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자질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대인관계에 대한 내용과 국가관, 결혼관, 등에 대한 생각을 아들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배어 나온다. 이런 글과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그의 아들은 무척이나 행복한 아들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런 글을 보고, 이런 아버지의 아들은 어떤 일생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일지만, 책의 서문에 저자의 화려한 정치경력과 그의 편지를 토대로 책이 만들어졌다는 설명과 이런 편지를 받았던 아들의 생애가 어떠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아버지의 능력을 뛰어 넘지는 못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는 이런 종류의 말과 글들이 과연 아들 입장에서 제대로—의도한 데로—받아 들여졌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의 아들도 나의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면 잔소리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받아 들이고 곧바로 나오는 반응은 듣기 싫어서 딴청을 피우는 행동이 나오는 현실과 비교 했을 때 좋은 글로만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좋은 글과 좋은 행동, 아버지의 모범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더 고민해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저자의 아들에게 전하는 이 글이 나를 대신해서 아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이 아니라 아버지인 내가 잘 기억해두고 생각해서 아들에게 이런 종류의 내용과 이야기로 아들에 대한 기대와 의도를 나의 것에 맞추어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나의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행위들의 고민에 적지 않은 지침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지혜롭고, 건강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크기길 모든 부모들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나 이런 좋은 지침서를 저자와 같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나만의 독특한 전달방법을 통해 나의 아들이 이해하고 내가 바라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나의 역할일 것이며, 그러기 위한 고민은 역시 계속되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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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김경수 그림 / 물병자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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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동물원’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소설류의 책인 줄 알았다. 바로 전에 읽었던 ‘스타쉽 투루퍼스’의 영향일까? 공상과학 소설류의 책이겠거니 했던 나의 추측은 내용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나의 상상과는 너무도 판이하고, 너무도 과학적인 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의 학문적 연구와 그 내용에 대해서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나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인간 행동학적인 소개는 파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조직에 대한 내용은 부족과 초부족이라는 내용으로 매 장마다 전자에 서술하는 단어의 의미에 초(Super-)를 붙여 현대의 인간 생활사를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다.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이 좁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삶의 형태와 행동의 모습을 관찰한 결과와 인간들의 도시화되고, 밀집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모습과 연관되어 비춰지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마치 “인간 동물원”과 같이……

     저자가 서술하는 우리 인간들의 거대하고 비대해진 그러면서도 좁은 공간에 밀집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런 모습을 통해 도시화된 인간동물원 속의 인간들의 행동 양태를 설명해 내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세분화되고, 분업화된 사회 속에서 지위상승에 대한 끝없는 추구는 정상적인 모습도 있지만 반사회적인 파괴와 학대 등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원인이라고 한다.
     또 다른 내용의 이야기로 섹스에 대한 해석과 그 분류는 다양하다. 10가지의 종류로 섹스에 대한 분류도 기발하지만 그 마지막 분류의 내용 속에 지위섹스라는 해석은 TV를 통해 원숭이들의 행동을 보여 주면서 비춰졌던 화면이 연상되면서 그 이유를 새삼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런 모습 속에 지위섹스의 모습을 보여 주는 화면들은 영화나 우리 주변의 사진들 속에 나타나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그런 것을 보면 무척이나 선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이유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 밖에도 집단에 대한 이야기와 각인에 대한 현상, 자극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느끼고 느껴왔었던 그런 모습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이야기 속에 우리 아이들의 ‘왕따’가 발생하는 현상도 해석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동물원 속에서 각 동물별로 각자의 시간을 소비하는 방법과 행동양태는 다양하다. 이런 현상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행동이나 동물의 행동이나 모두 비슷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동물원에 갔을 때 흔히 볼 수 있다. 어슬렁거림이나, 관람객을 놀라게 하거나, 구석에서 잠만 자는 행동이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이런 가지가지의 모습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같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 모양이나 내용은 약간의 변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본질적인 내용은 동일하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동물원에 갇혀 한정된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의 모습으로 이 굴레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는 현재의 닭장 같은 아파트 숲 속에서 더욱 높아지고 거대해지는 빌딩 숲으로 변화될 것이고, 인간이 가 보지 못한 지역과 살지 못하는 지역이 없어지는 세계가 펼쳐질 것이며, 그 수많은 인간들이 먹고, 마시고, 뿜어 내고 싸데는 오물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또 다른 발명과 발견의 필요에 의해 해결 할 수 있는 과학문명이나 방법은 연구되리라 생각하지만 ‘인간돌물원’에서의 삶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고민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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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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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강화복”에 대한 내용이다. 고릴라 같은 모양에 2톤의 철갑으로 되어 있고, 마치 슈퍼맨과 같은 힘을 내게 하고, 동료와의 다중 채널을 통한 교신이 가능하며, 시각, 청각 등의 능력을 강화해 주는 만능의 철갑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이 묘사로 보면 최근까지도 네트웍 게임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타크레프트를 연상하게 한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른다. 허나 그 게임에 나오는 전사와 같은 모양의 주인공이 소설에 나오는 기동 보병의 설명 내용과 무척이나 유사하다. 이 책의 원작은 1950년대의 작품이라고 하니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의 원 모습은 이 소설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재미있다.
     저자가 상상하는 미래의 군인의 모습과 군인에 의한 세계 통치, 그리고 우주 개발을 통해 은하계에서 그 외계로 뻗어 나간 상상의 나래는 이 소설 속에 녹아 들고 있다. 허나 처음 시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이야기는 영화에서 보아 왔던 미국의 특수부대원의 훈련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어찌 보면 전쟁미화 내지는 군대 예찬과 같이 보여지는 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중간 중간 퇴역 군인의 말을 통해 전쟁에 대한 해석과 미래사회의 정치 모습, 그리고 책임과 의무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 나름의 사상을 옮아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유의 이면에는 분명 피와 땀과 같은 노력이 있고, 이런 피와 땀의 희생 위에 건설된 자유가 진정한 권리를 창출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때는 미래 사회로 가면 눈부신 과학발달로 인해 무엇이든 편리해지고 간단한 조작으로 대부분의 일상사가 해결되는 모습을 상상하고 한다. 이런 모습은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의 내용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내용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들이다. 결국 뭐든지 ‘편하게’라는 말로 대변 될 수 있는 것 같이 인식 되어져 왔다. 허나 아주 먼 미래를 가지 않은 현대의 우리모습을 보면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의 성인병으로 결국 운동부족의 원인을 들고 있다. 결국 생활의 이기가 몸을 망가트리는 모습이 현대의 모습이지 않나 생각된다.
     허나 이 소설 속에 그려지는 미래의 군인들—특히 기동 보병—은 지금의 특수부대원과 같이 악천후 속에서, 기아의 상태에서, 사막에서, 바위투성이의 산악지역에서 생존 훈련을 통해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 내용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런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미래 기동보병의 근간이 되는 “강화복”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탕이 되고 있다. 2톤이 넘는 특수 장갑의 강화복을 움직일 수 있는 근간은 결국 인간의 건강한 신체에서 기초하고 있으며, 이런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정신력은 과학문명이 발달한 미래에서도 통용되는 근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내용에 대해 생각하면 결국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과학문명을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주체인 인간이 체력과 정신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면에 있어 운동과 체력 단련이 공부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신병으로 교육 받는 과정에서 전투에 참가하고 장교과정을 거쳐가는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군대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도 연상이 된다. 이런 이유에서 더욱 재미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기동보병으로 거듭나는 모습과 그 과정 속에 주어지는 힘과 권한은 무척이나 철저하게 통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화복에 의한 힘의 보강과 원자탄, 수소탄 등의 무기류 등의무장하는 모습은 미래사회에서 보여지는 무기체계가 지금과는 그 위력이 엄청나게 큰 폭으로 변화될 것을 예상하게 한다. 이런 강화된 힘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 입어 무한정으로 커져 갈 것이다. 이런 커진 힘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느냐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미래사회의 전투 보병이야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군인의 모습과 흡사하면서도 미래의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있는 이야기가 적정하게 혼합되어 재미를 배가 시킨다. 또한 1950년대의 상황에서 이런 미래 상황을 상상한다는 것에 작가의 상상력에 경탄을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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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1
하비에르 시에라 지음, 박지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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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이 고난의 시간을 맞이하기 전 제자들과의 만찬으로 유명하고, 이 내용을 주제로 한 제자들과의 저녁식사 장면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한 최근에 ‘다빈치 코드’라고 하는 소설로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주제로 한 소설로도 다빈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중에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기를 소설로 한 작품이 있다는 소개를 보고 읽어 보게 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띈다. 주인공 나는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종교재판관이면서 암호해독가로 등장하는 레이레 신부가 밀라노에 급파 되면서 시작된다. 아고레로라는 익명의 인물로부터 들어온 7행의 암호문과 이를 밝히기 위해 급파된 레이레 신부는 다빈치가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에 그리고 있는 ‘최후의 만찬’을 보게 된다. 다빈치의 천재적인 그림 솜씨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보이는 기이한 행적은 뭇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을 불러 오고, 이는 이교도의 상징이 담겨 있다는 추측으로 발전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세력과 음지에서 자신의 종료활동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림을 통해 나름의 교리는 세상에 남겨 놓고자 하는 다빈치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설 속의 나인 레이레 신부는 암호문 해독에 대한 과정과 '최후의 만찬'에 보여지는 상징들을 하나하나 읽어 가면서 다빈치의 천재적인 모습을 들어내 놓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수수깨끼를 만들고 이를 풀게 끔 하여 지적유희를 즐기는 다빈치의 모습은 그의 천재적인 모습을 한층 부각 시킨다. 그 일예로 레이레 신부의 암호문의 1차 답인 숫자 5를 찾았으나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것을 다빈치의 제자를 통해 답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최후의 만찬’에 담겨 있는 그림에 대한 내용도 그 제자들을 통해 상징하는 의미를 아주 일부를 말하고 있다. 이런 암호를 풀어 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한다. 또한 이어지는 사건 사고는 소설의 이야기를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든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기존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은 타락하고, 폭력적이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치중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수도원의 이교도—카타르파라고 하는 종파—를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닭을 죽이게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 또한 교황에게 아첨하는 화가 안니오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교황의 눈을 멀게 하고,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다빈치의 천재적인 그림 솜씨와 책 표지에 보여주는 ‘최후의 만찬’ 그림에 맞추어 설명 되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델레그라치에 성당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생동감 있는 그림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어느 한 순간의 움직임을 그림에 담았으리라 생각되지만 각 인물별로 보여주는 몸 동작은 그냥 단순한 모습이 아닌 다빈치의 고도의 계산과 치밀한 의도 하에 그려진 모습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만든다.
     다빈치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대표적인 화가로, 과학자로, 기술자로, 사상가로 불리게 된 이유를 이 ‘최후의 만찬’을 통해 느끼게 한다. 다빈치 개인에 대한 소개와 찬사도 느껴지지만, 위인전이라는 느낌 보다는 천재의 모습 속에 탄생한 ‘최후의 만찬’에 대한 소개서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은 다빈치 코드와는 다르게 <푸른책>이라고 하는 알려지지 않은 성서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타로 카드에 그려진 수녀와 수녀가 들고 있는 푸른 성서는 기존의 교회에 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성서를 암시하고 있다. 진짜일까? 그 <푸른책>에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또한 소설적인 요소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왠지 이런 내용이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기존의 종교계에서 죽음을 불러 오는 비밀스런 움직임으로 더욱 더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고, 기존의 기득권과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보여 보다 소설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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