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
한스 카멀란더 지음, 박규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한스 카멜란더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174cm의 신장에 63kg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사나이다. 8,000m급 13개 고봉을 등정 하였고,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자일 파티를 하면서 등정했던 위대한 산악인 중에 한 명이다. 그가 이야기 하는 산에 오른 이야기는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연속으로 8,000m급의 산을 오르는 것을 비롯하여, 최단시간 등정기록, 단독 등정 기록 등은 가히 초인이라고 할 수 있을 내용이다.

     그런 산사나이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산 이야기 책인 이 책은 그가 산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을 실천해 왔던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첫 번째로 꼽는 생각은 정상이 다는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8,000m급의 거봉을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도 많이 들고, 생애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이기도 한 상황에서 거의 정상에서 100m를 남겨 두고 철수 할 수 있었던 모습을 보면 분명 그는 분명 정상에 올랐다는 것 보다는 산에 가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는 어떻게 산에 오르고 어떻게 내려 오는 가에 더 많은 비중과 생각을 했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 그가 생각하는 친구 즉 같이 산에 오르는 동료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8,000m급 거봉을 오르던 초기 대부분의 자일파티는 라인홀트 메스너(1944년생)이다. 한스 카멜란더(1956년생)가 메스너와 12년의 나이차이가 있다고 하니 메스너가 형도 한참 나이 많은 형벌이 되겠다. 그런 관계에서도 서로의 생명을 맏길 수 있는 동료로서의 관계는 무척이나 어렵고도 힘들면서 또 잘 맞는 친구 관계일 것이다. 특히 고도 8,000m에서 평지의 삼분의 일 밖에 안되는 공기에 영하 4,50도의 극한의 추위 속에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상호 보완해 가면서 고산을 등정할 수 있었다고 하면 첫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잘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내용은 책의 후반 부에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속에 잘 나와 있다. 조깅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나서는 길목에 친구들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나누는 잡답의 시간은 당시 20대 초반의 그에게는 강력한 유혹이었을 것을 ‘7,000m에서 후들리는 다리를 상상’하면서 물리쳤다는 얘기는 얼마나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산에서 보는 숫한 죽음들을 통해 그 자신이 느끼는 고독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거대한 설산의 빙벽에서, 또는 눈 속에서 마치 잠들어 있듯이, 아니면 잠시 가빠오는 숨을 고르기 위해 쉬고 있듯이 죽어 있는 주검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는 등반가이기도 하지만 산악구조 업무도 하나 보다. 그런 산악 구조 활동 속에 겪는 죽음의 모습도 그는 특별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런 죽음을 보면서도 등정의 목표에는 별달리 흔들림 없이 오르고, 또한 안전하게 내려 올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놀랍다. 그가 얘기하는 고독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일까? 그의 자일 파티였던 메스너도 ‘검은 고독 흰 고독’이라는 번역책을 통해 낭가파르밧에서 단독등반을 하면서 생각하는 고독에 대해 이야기 했듯이 같이 등반하는 동료가 있어도 고독을 느끼고, 그런 고독을 느끼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숫한 죽음과의 대면에서도 덤덤하게 이겨낼 수 있고, 여렇이 같이 오르는 산행에서도 자신만의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어찌 보면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그의 친구들이 얘기라는 한스 카멜란더의 모습과 자신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산에 대한 생각은 분명 명쾌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혼합되어 산에 올랐던 경험과 그 경험 속에 느꼈던 자신만의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덤덤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산에 대한 애정은 그 동안의 업적과는 다르게 멋진 산사나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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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 한 젊은 예술가의 뉴욕 이야기
박상미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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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뉴요커(New Yorker)’는 뉴욕 주 사람, 뉴욕 시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서울사람에 대한 동일한 개념의 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울러(Seouler)’ 아니면 ‘서울맨(Seoul man)’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데 영 어색하다. 그보다는 ‘서울 깍쟁이’이가 제격이다. 역시 그 나라 그 말로 표현해야 하나보다. 어찌 되었든 뉴욕에 사는 사람인데 단순히 몸만 뉴욕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듯 하다. 작가는 3가지 부류의 ‘뉴요커’를 분류하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 다른 지방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생활하는 사람, 뉴욕에서 태어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분류 방법이나 개념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뉴요커’에 대한 정의는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허나 이런 분류에 앞서 ‘뉴요커’ 하면 뉴욕을 대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가장 뉴욕적인 사람인데 이런 의미와 생각으로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가장 세련된 외모와 경제적인 부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영화, 책,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간접체험 된 내용으로 생각된다. 이런 간접 체험이 아닌 직접 살아 본 작가가 그의 뉴욕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또 하나 이 책을 보면서 부재로 붙은 이름이 ‘한 젊은 예술가의 뉴욕 이야기’에서 예술가라는 단어에서 어떤 사람을 예술가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화가라면 당연히 예술가의 범주에 들것이다. 이야기 중에 나오는 웹페이지 디자이너도 예술가 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속되게 이야기 해서 예술가라고 하면 삶의 현장이 예술—음악, 미술, 연극 등의 분야—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사전적 의미에 덧붙여 보통사람과는 다른 웬지 모를 감성을 가지고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런 사람이 뉴욕에 살면서 본 이야기라고 해석된다.

     예술가가 뉴욕에서의 삶의 모습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이 알려진 유럽의 유명도시들, 즉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과는 다르게 미국의 뉴욕에서의 생활이 예술과 연관될 수 있는 내용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뉴욕은 왠지 예술과는 별개로 비즈니스와 연계된 내용으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경제의 중심도시로서의 연상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예술가의 뉴욕에서의 생활하면 바로 와 닿는 느낌이 적어 보인다. 허나 잘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접하는 뉴욕의 예술 분야는 많아 보인다. 광고의 효과로 생각되는 브로드웨이는 연극과 직결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뉴욕도 경제 도시적인 면모 보다는 예술적인 분야에 더 많은 자리 메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둘러 보는 뉴욕의 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 그림 그리기가 본업인 작가의 뉴욕 화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 이야기는 재미있다. 또한 뉴욕거리의 책과 서점 이야기는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뉴욕지도를 입수하여 작가가 얘기하는 거리를 도면상으로 따라가 보고, 계획을 짜서 미국의 뉴욕을 가게 될 때 그 길들을 둘러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도 옛날의 뉴욕 뒷골목의 정경을 정감 있게, 그리고 감칠맛 나게 그려내고 있다. 현지의 사람들 모습과 같이 보여주는 모습이 흥미롭다.

     ‘뉴요커’를 보면서 우리의 서울 이야기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울의 맛집 이야기나 명소에 대한 거리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고,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가봤던 장소라서 그런지 작가가 쓴 ‘뉴요커’와는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뉴욕과 같이 고층빌딩의 숲 속에 연극, 미술, 음악 등의 이야기가 엮어져 이런 책이 만들어 지듯이 우리의 서울도 이런 이야기는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허나 주변에 보이는 책들의 이야기는 음식이나 옛날 공동품과 같은 우리의 생활과는 좀 떨어지거나 상업적인 느낌을 줄이기는 했지만 그런 류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우리의 서울도 이런 예술, 아니 우리의 삶의 현장의 이야기가 서울과 관련된 모습을 그려진다면 재미있기도 하면서 우리의 서울을 더욱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홍보용 자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뉴요커’에서 보여지는 뉴욕의 예술가들의 삶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서울이야기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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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의 역사
조르쥬 비가렐로 지음, 이상해 옮김 / 당대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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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强姦)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1 폭행 또는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부녀자를 간음함. ≒강음(强淫). 
            2 [북한어] 강제적 수단을 써서 불법적으로 어떤 목적을 실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라고 나와 있다. 즉 폭력을 동반하여 부녀자에게 성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용어의 의미와 내용은 최근에 와서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성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아동에 대한 폭력과 나아가서는 남성에 대한 성폭력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강압적인 성폭력의 내용을 이 책에서는 프랑스의 재판 기록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강간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을 휘두르는 쪽은 남성이고, 이 폭력에 희생당하는 대상은 여성이다. 또한 여성도 여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나아가서는 남아(男兒)도 이런 범주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 분명 강간의 대상. 즉, 피해자는 결국 물리적인 힘이 약한 약자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프랑스의 1600년대에서 최근 1900년대까지의 재판기록을 통해 시대적 인식과 그에 따른 변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존재성을 인정 받고 있었으며, 성폭력의 특수성—당하는 피해자 쪽의 수치심과 그로 인한 사회적 인식 등의 문제—으로 인한 문제로 현대의 인식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여성이 한 인격체로서의 존중 보다는 아버지나 남편의 예속물과 같은 인식으로 소유권(또는 보호)자가 가해자에 대한 고발에 의해 거론되어야지 범죄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며, 오히려 가해자 보다는 피해자의 행실과 지위, 보호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내용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또한 그 처벌의 내용도 없던 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고, 벌금이나 사형 등의 처벌로 그 정도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또한 강간을 당한 사람의 거부의사에 대한 인정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른 객관적인 평가의 내용에 따라 강간이라는 범죄로 인정되느냐 아니냐를 구분하였다. 단지 당하는 사람의 의사표현의 방법이 격렬하게 표현되어야 만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고 하니 현대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수치심과 사회적 인식의 문제—처녀성을 잃은 여성에 대한 인식, 강간의 피해자가 아닌 쾌락을 즐긴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등이 결부된 문제—와 피해자 개인이 숨기면 잘 들어 나지 않는 특수성에 의해 범죄에 대한 인식은 현대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내용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의학지식의 축적으로 신체적인 특징과 정신적인 영향에 대한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당시의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허나 이런 상황의 내용은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내용이기는 하지만 정작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또 한번의 폭력을 휘두르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간혹 이런 수사과정 상에서 벌어지는 수사관의 피해자에 대한 동일한 성폭력이 재발되는 사례도 우리 주변의 신문지상에서 간헐적으로 접하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과거 프랑스의 1600년대의 상황이나 우리의 상황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성폭력에 의한 피해자는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잊혀지지 않은 아픈 기억이고, 그로 인한 피해자의 삶의 변화로 인한 피해는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순간적인 성적 충동으로 피해자의 삶을 망쳐버리는 범죄 행위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범죄에 대한 인식의 과정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춰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재탕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부분에서 좋아지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가해자에 대한 일벌백계의 내용으로 점차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아직도 선진국의 상황으로 변모해야겠다는 느낌은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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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역사 - 빵을 통해 본 6천년의 인류문명, 개정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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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은 서양의 주식이다. 고대의 로마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빵이 우리의 밥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인데 ‘빵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고 연상되는 내용은 무슨 빵의 역사까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빵이라는 단순한 사물로 인식하는 생각에서 빵이 우리 인류에게 미친 역사적인 사실로 유추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내용이겠다.

     빵은 밀가루로 만들고, 밀가루는 밀로 만든다. 그렇다면 결국 빵의 역사는 밀을 어떻게 획득하느냐의 역사이고, 결국 인류의 기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투쟁의 내용이 ‘빵의 역사’에 대한 대체적인 밑그림이라고 생각된다.

     저자가 4천여 권의 책을 참고하여 ‘빵의 역사’를 섰다고 하니 그 분량에 대한 대단함이 느껴진다. 또한 본문 내용에서 보여주고 있는 다방면의 참고자료는 ‘빵의 역사”가 쉽게 쓰여질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만큼 빵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은 맥락의 내용이겠다.


     우리의 식생활이 최근에 많이 변화가 되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에서 다양한 먹거리의 발전으로 그 생활의 모습이 변화 되었고, 요즘도 동일한 현상이겠지만 쌀 소비권장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다양한 먹거리로 인한 쌀 소비 감소를 보여 주는 증거이겠다. 이런 내용 중에 특히 빵은 우리의 먹거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흔하게 주변에서 보고 있는 그 빵의 변모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 아니겠나 생각해 본다.

     특히 빵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과 쌀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중심이 대부분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의 문질문명이나 문화의 전개 양상은 결국 인간의 먹거리 해결이라는 근본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지금은 다양한 모양과 맛의 빵이 넘쳐나고 있고, 한술 더 떠 웰빙이라는 건강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부가하여 빵 관련 상품을 접하고 있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단순한 허기를 때우는 것에서 맛과 모양을 넘어 건강을 생각하는 먹거리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 과거의 전세계적인 먹거리 해결 방안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을 이 책에서 볼 수 있겠다.

     밀의 재배와 수확, 가공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와 종교적인 빵의 의미와 그 구체적인 모습은 그냥 행사로만 인지하던 내용에서 인간생활에 보여주는 각종 의미를 재차 인식하게 해 준다. 그 밖에도 감자, 옥수수, 귀리, 보리, 호밀 등 밀과 다른 대용작물에 대한 인간과의 관계와 각 작물들에 대한 사람들이 인식하는 내용의 설명은 새로운 느낌과 지식을 얻게 해 준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과거에는 동물들의 사료로 먹이던 작물, 그래서 꺼려했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먹거리였던 그런 작물들이 현대에는 웰빙이라고 하는 유행(?)에 의해 새로운 먹거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밀의 재배와 수확, 가공에서 빵을 만들어 먹는 모든 과정과 쌀의 가공 방법 등을 서로 비교해 보면 분명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점과 그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재배방법 상에서도 쌀 문화권과의 차이를 짐작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빵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면 문화권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이런 생각이 단지 빵만의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생산성을 중시하는 모습 속에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바로 먹을 수 있는 단계의 빵은 저장, 편의, 휴대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에 쌀은 끊이는 방법에 의한 조리와 수분을 어느 정도 이상 함유하고 있어야 하는 특성으로 기동성 있고, 편리함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로의 변화는 당연히 빵의 문화 쪽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빵만이 인간 모든 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먹거리 해결 방법으로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대표적인 방법은 역시 빵이고, 이런 빵을 얻고자 하는 과정이 결국 인간의 역사로 보여지는 내용이겠다.

     우리는 쌀 문화권에 살고 있지만 점차 빵 문화권과의 혼합이 가속화 되고 있다. 밀가루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신세대로 넘어가면서 서양화된 빵 문화의 영향으로 다국적 기업의 먹거리의 잠식은 우리의 문화를 바꾸는 결과가 되어 가고 있다. 간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빵의 먹거리 특성이 결국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런 모습은 결국 ‘빵의 역사’에서 먼 미래에 전세계가 ‘빵의 역사’ 속에 포함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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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잔혹사
그레그 캠벨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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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신문에서인가 책 소개서의 내용에 양손이 잘려 나간 모습의 여자아이가 우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소개된 이 책 “다이아몬드 잔혹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왜 저런 참혹한 짓을 누가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어지는 다이아몬드와 엮어지는 이야기는 왜 손목 잘린 여자아이와 다이아몬드가 서로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

     이런 잔혹한 모습의 현장이 신문에나 인터넷의 자료를 보면 다이아몬드의 원산지—적도부근에 위치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상황과 같이 설명 되어 나온다. 그런 살육의 현장에서 다이아몬드를 통한 부와 권력을 획득하려는 세력의 무지막지한 살육의 현장이 결국 발원점은 다이아몬드에 결부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을 너무도 소상하게 들려주는 이 책의 내용은 그저 경악의 수준을 넘어 선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고 기념으로 주고 받는 다이아몬드가 처음 발견되는 원석의 단계에 비극의 살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는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고가이면서 찬란하고 변치 않는 영원의 상징물이 끔찍한 아픔을 담고 있다고 하니 역설적이게 느껴 진다. 다이아몬드의 불변성과 사랑의 상징물로 인식되게 만든 내용은 본래의 다이아몬드의 성질도 있지만 드비어스라는 거대 독점기업에 의한 마케팅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가 천 만원이상을 호가하면서 뭇 여성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한 마케팅기법이나—대표적으로 표현되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표어가 낯설지 않다—원석의 생산과 공급을 조절하여 세계시장을 독점하는 드비어스라는 회사가 만들어낸 고부가치 상품의 효력은 세계 암흑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게 만든 역효과도 있다.

     작아서 어디든 쉽게 숨길 수 있으며, 변하지 않는 특성으로 그 가치는 동일 부피와 무게를 가진 다른 상품보다 더 고부가가치의 상품이겠다. 또한 노천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싼 인건비로 고가의 돌맹이를 줍는 활동으로 쉽고 얻을 수 있어 더더욱 그 역작용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세계 최 빈국 중에 하나인 시에라리온이라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산출되는 다이아몬드는 쉽게 부를 쌓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었으나, 피폐한 국민을 멀리하고 권력과 탐욕에 정치는 피폐해 지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러 결국 반정부 혁명에 의한 쿠테타와 내전으로 이어진 시에라리온의 상황은 비극 중에 비극이라고 하겠다. 무기와 식량 획득의 방법으로 다이아몬드의 밀반출과 이어지는 반군세력 RUF의 활동은 내전의 아픔을 더욱 더 깊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또한 RUF의 무차별적인 학살과 남녀노소를 불문한 무원칙의 세력확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반군세력이 집권세력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저질러진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팔의 절단은 인간이 이렇게도 악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이런 행위를 가한 대상이 우리로 치면 중학생 정도 나이의 어린 소년, 소녀병이라고 하니 더욱 더 경악의 수위를 높인다.

     결국 부의 상징, 사랑의 상징물로 인식되는 다이아몬드가 살육의 상징으로 바뀐 상황이 되었다. 살육의 수단으로, 무고한 시민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근원으로 다이아몬드가 자리잡고 있다. 밀거래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다이아몬드의 특성이 이런 비극을 자극하고 있고, 권력과 힘의 탐욕에 눈이 멀어 다이아몬드를 그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은 모습이라 생각된다.

     자세한 시에라리온의 국내 상황 설명과 다이아몬드 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통해 비극의 현장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시에라리온의 지명이나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책을 보다 보니 무척이나 지루함이 느껴지고, 복잡하게 엮어진 시에라리온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한 내용은 있지만 잘 몰랐던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과 다이아몬드와 결부되어 엮어지는 국제적 환경이 단순히 예쁘다, 멋지다, 비싸다 등으로 이어지는 감탄사만의 내용이 아닌 그 속에 담긴 비극의 현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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