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
이정애 지음 / 길찾기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정애 작가님의 1990년 작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찾아왔다. 2001년 갑작스러운 절필 선언 이후,오랫동안 근황이 궁금했던 작가의 단행본 발간 소식에 무엇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혹시 다시 만화를 그리실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에 머리말부터 급하게 읽어 나갔다. 그러나 ‘프로작가로서 펜을 꺾은 마당에’라는 글귀가 가슴을 쳤다. 아아아~~~ 이젠 정녕 당신의 새로운 작품은 만날 수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예나 지금이나 ‘봄’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과목을 충실히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때의 ‘봄’은 계절적인 봄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봄, 바로 광복을 의미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에서의 ‘봄’은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 찬 순수청년 루이스씨의 첫사랑을 의미한다. 만화 속의 노엘이 순수하고 열정에 찬 청년이었듯이 이 작품을 그리던 시절의 작가 자신도 순수한 창작열정으로 몸살을 앓던 때였나 보다. 비록,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는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소재와 전개로 심의의 칼날 앞에 무릎 꿇려진 구멍이 송송 난 작품을 내세웠을지언정, 그 시절의 무모함과 열정은 무엇보다 진한 추억 한 자락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프로작가로서의 펜을 꺾은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응한 이유는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 탓이라고 말한다. 그 시절의 무모함과 열정,불안과 우울,혹은 기쁨과 섬세함 같은 것들이 그리웠단다. 폭풍 같은 정열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은 날의 감성을 앨범에 담는 기분으로 내는 책이라고…….

  이정애 작가님이 이 작품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를 연재하던 당시의 나이가 꼭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으리라. 지금 현재의 나에겐 그런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정열과 열정이 있느냐고 냉정하게 따진다면 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직은 넘치는 젊음에 기대어 조금 더 무모하거나 서툴러도 된다고 자위하지만, 이미 팍팍한 현실에 길들여져 버린 내 자신의 젊음의 무게는 나약하기만 하다. 하긴,누군가 내게 지금 당장 가장 두려운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넘쳐흐를 것 같은 이토록 지독한 열정이 사그라져버리는 한 순간이 두렵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젊음이란 언제나 싱그럽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듯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위태롭고 찰나처럼 짧은 순간이기에 그토록 아름답게 기억되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지금 만화를 보기 시작한 독자라면 ‘이정애’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이미 5년 전에 절필 선언을 해 버린 작가이며,굳이 절필 선언이 아니었더라도 소위 말하는 주류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아니었으므로,많은 독자들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는, 아니 안다기보다 좋아하는 만화가의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즐겨주었으면 하는 것이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의 조금쯤 과한 욕심이려나.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루는 소년 왕들의 이야기《열왕대전기》나 중세유럽이 배경이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모호함 속에 순수하고 신비로운 소델리니 교수를 만나는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 등의 작품에서도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이상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완결을 맺지 못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가의 절필선언 이후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열왕대전기》나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 등의 작품으로 이정애 작가를 만난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은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보석이 있듯이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만큼 오래도록 읽혀지고 사랑받는 만화도 있다. 지금 뿐 아니라 조금 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정애’라는 작가가 있었다고, 이런 만화를 그렸었노라고 알아주는 독자들이 있었으면 한다. 이 작품의 재판이 계기를 마련해 준다면 더욱 반가운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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