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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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출간해서 150만부가 넘게 팔린 신경숙 작가의 인기작 『엄마를 부탁해』는 그 인기의 여세를 몰아 현재는 연극으로도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소설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작가 신경숙의 책을 구입했으나 거의 2년 가까이 표지조차 넘기지 않고 방치해 두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달 동안 사고 싶은 책과 CD의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가 용돈을 받으면 순서대로 사고 싶었던 책과 음반을 사 모았고 한 달 내내 책을 읽고, CD를 반복해서 들었고, 주말이면 홍콩영화를 보러 극장을 기웃 거렸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었던 신경숙의 작품을 오랜만에 마주한 나는 어쩐지 선뜻 책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아 2년이나 묵혀 두었던 것 같다.

  십대였던 나는, 돌이켜보면 꽤 많은 책을 읽었었다. 그닥 특별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소설이었고 신경숙을 비롯하여 정지우, 전경린, 은희경, 배수아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남자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남성 중심적 시선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그녀들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고 무감각해졌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동네 도서관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대형도서관에 매료되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쩐지 그녀들의 작품이 아닌 다른 작가들의 책을 골라서 읽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보다는 주로 신인작가나 무명작가의 작품을 골라 읽었는데 다듬어지지 않는 풋풋함과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어렸던 내가 좋아했던 그녀들의 작품에서 기성 작가의 농후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멀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거의 십 년 만에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다시 보면서 처음 표지를 넘겼을 때의 그 느낌이란……. 표지 안쪽에 무심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의 프로필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다소 메마른 듯한 인상의 무표정한 그녀의 사진은 세월을 지나 정면에서 측면으로 바뀌어있었으나 예전과 다름없는 어깨를 덮는 헤어스타일에 ‘전북 정읍 출생.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겨울우화」……. 로 시작하는 그의 약력을 본 순간 10년의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며 그간의 회포를 푼 다음에는 책장을 넘기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해졌다. 게다가 예전에 국어선생님께서 침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셨던 그의 유려한 글 솜씨라니……. 그간의 어색함을 감안할 때 읽기를 끝내는데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예상했었는데 진행속도는 나의 예상을 훨씬 추월하여 체 사흘이 되기 전에 나는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얼마 후에 작품 속 딸의 시선에 지나치게 빙의한 나머지 한동안 머뭇거리긴 했으나, 대체로 빠른 속도로 끝까지 읽어나갔고 읽는 내내 거의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났고 가슴이 먹먹해 졌다.

  생일상을 받기 위해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상경한 엄마는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그 길로 실종이 되고 만다. 처음에는 엄마의 실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가족들은 점점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고 잊고 지내던,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희생을 기억하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그것은 각각 큰 딸과 큰 아들, 그리고 남편의 시선으로 기억되고, 종장에 이르러 새의 몸을 빌어 자식들과 시골집과 자신의 고향집을 찾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히, 여러 명의 화자 가운데 작가인 ‘큰 딸’은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에서도 수시로 등장하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적 화자가 되는데 그만큼 딸의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

  그녀의 엄마 박소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열 일곱 나이에 시집을 갔다. 시집 와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늘 밖으로 도는 남편과 일찍 과부가 된 무서운 시누이와 가슴 아린 시동생 균을 살뜰히 챙기며 농사일과 집안 살림을 바지런히 해 냈고,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몸이 바스라지도록 집안일을 하고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작가의 손을 빌어 엄마 ‘박소녀’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릴 때 우리 엄마의 18번 중 하나는 대한민국 보통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공부 좀 해라.”였다. 소설 속 엄마가 큰 아들 형철이 검사가 되기를 바라고, 딸의 소설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공부를 많이 한 작은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우리 엄마의 바람은 딸들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을 얻어 엄마가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었다.

  “엄마는 너그 만 할 때,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몬 했다.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와 공부를 안 하노? 내가 나 좋자고 공부하라고 하나? 다 너그들 잘 되라고 하는 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공부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좀 해라. 으이.”

  아직도 귓가를 생생하게 맴도는 엄마의 그 말들. 실제로 엄마는 가난한 농촌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왔고, 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는 더 이상 다닐 필요 없다는 외할아버지와 1년을 대립한 끝에 1년을 꿇고 중학교를 들어갔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엄마를 눈여겨 본 담임선생님께서 예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건 엄마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여상에 간다고 해도 보내줄까 말까했을 텐데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도 아닌 예고라니……. 그건 가난한 집 맏딸이 감히 꿈꿀 수 없는 사치였던 것.

  어렸던 나는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거듭 강조하시는 엄마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인 거지, 왜 엄마가 못 푼 공부의 한을 자식에게 풀려고 하는 지 말이다. 엄마의 “공부” 소리가 더해질수록 엄마에게 반항하는 내 목소리도 커져갔고 반항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기 일쑤였다. 결국은 “그래. 니 마음대로 하고 살아라.”는 엄마의 체념 섞인 한숨과 함께 엄마와의 대립은 끝이 났지만 어린 시절 학교가 파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달려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때의 다정함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고마움이나 무한애정은 새록새록 느끼긴 하지만 오랫동안 반쯤 닫아버렸던 마음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표현하는 방법은 거의 잊고 살았다. 가끔씩 마음을 꺼내 보이려고 다가가다가도 종내는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돌아서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작가의 말처럼 끝내 잃어버린 엄마를 찾지 못하고 결말을 맞이한 것은 어쩌면 그가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인 동시에 아직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우리 엄마도 어느 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언제까지나 덜 자란 모습으로 칭얼대기만 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어린 날, 서툰 솜씨로 어설프게 만든 종이 카네이션에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엄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 볼까? 그런데 무슨 말부터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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