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의 나레이션 1
강경옥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너를 좋아해'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 상대에게서 연극 연습을 하느냐는 대답을 듣게 되는 여자 아이가 있다. 열 일곱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세영은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에 둘러싸여 시작도 끝도 없이 생활의 중간에 서 있는 자신을 의식한다. 그러나 그 현실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다. 그는 생각한다. 누가 이 군중속의 평범함에서 나를 구별해 줄 것인가 라고... 그 누군가는 세영의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 줄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세영의 꿈일 수도 있다. 그 외에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건 세영을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해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또 세상에게 묻는다. '왜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걸까? 무얼 믿지 못하는 걸까...?' 세상을 믿으려 하고, 사람을 사랑하려하는 17세 여자아이의 독백은 소름이 끼칠만큼 솔직하고 섬세하다. 구체적으로 형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어떤 덩어리 같이 뭉쳐진 채 머릿속을 굴러다니던 생각들이 세영의 입을 통해서 하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알몸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세영의 독백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세영을 사랑스런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에게 다가올 17세에 대한 기대를, 17세인 현재의 마음을, 지나온 17세에 대한 회상을 세영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평범하고 솔직한 세영에게 자신을 이입시킨 이들의 일종의 '자기애'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그러한 자기애를 자극하여 다양한 연령층의 공감을 얻어내고 매니아를 형성시켰다.

1991년부터 월간 <하이센스>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1998년 시공사에서 4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오래 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출판된다는 것은 그만큼 지속적인 호응을 얻어왔다는 말이다. 주인공 한 명 한 명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과 섬세한 심리묘사, 유별난 개성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 그러한 호응을 얻어내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강경옥의 다른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유의 '자아찾기'는 <노말시티>의 마르스보다는 가볍게 <별빛속에>의 유신혜보다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세영은 17세의 한 해를 보내면서, 17세로서의 자신을 찾아나갔으며 이윽고 18세를 맞이한다. 거기에는 17세의 세영과는 또 다른 세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영은, 아니 우리 자신은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고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의 세상을 딛고 살아간다.

'17세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나는 지금 17세의 세상 밖에 볼 수가 없으니까요.'

17세의 눈으로 읽혀지는 삶의 독백들은 담담하게 묘사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17세가 되어 17세의 세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은 '세영'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그의 성숙을 격려하고,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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