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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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가정 폭력의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소녀


우리에게는 생소한 벨기에 작가 '아들린 디외도네'의 장편 소설 <여름의 겨울>이다. 큰 기대감없이 읽기 시작했으나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열다섯 소녀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싶은 내용들이 펼쳐지며 점차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가슴 졸이며 책을 읽었다. 소녀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흡인력이 상당하며 작품성, 스토리의 개연성, 섬세하고 세련된 문학적 문장들, 소녀가 성장해 가는 요소 등 소설은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독자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가정 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은 아니다. 허나 소녀의 눈으로 그려지는 소설 속 세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득차 있다. 일명 쓰레기 방에 사냥의 전유물을 전시하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로 가축을 기르는 낙으로 살아가며 아메바처럼 지내는 어머니. 충격적인 사고를 목격하고 머릿속의 기생충에 지배되어 웃음이 없는 남동생 '질'. 이 가정의 중심에서 남동생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연민하는 주인공 소녀가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놀란 것 같았다. 놀란 눈빛이었다. 노인은 자기 얼굴이 고깃덩어리가 된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헤아리려는 것처럼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쓰러졌다.

p31

충격적인 사고가 벌어졌다. 소녀와 남동생의 눈 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동생 '질'은 그 충격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변모한다. 동네에서는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강아지들도 사라진다. 남동생 '질'이 친칠라를 압정으로 고통을 가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을 소녀는 목격했기에 범인이 누구인지 가늠하지만 어찌하지 못한다.

마리 퀴리 평전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그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어야 하는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어떤 역할을 해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

p75

소녀는 타임 머신을 꿈꾼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으로 돌아가 남동생 '질'을 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며 타임 머신을 만들어 내겠다 다짐하고 단계를 밟아 간다. 이 소녀의 굳은 다짐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힘든 과학 분야에 접근하며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간다. 모두 남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나는 단지 기생충이 내 동생의 뇌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애를 영원히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었다. 내 존재 전부를 희생해야 한다 하더라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는 살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p112

타임 머신을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이 무너지고 남동생 '질'이 점차 자신과 멀어지고 심각해지는 모습에 어찌해야할지 모른다. 마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상황에 어린 소녀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사이에 자신을 먹잇감 취급하는 아버지의 압박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어머니는 딸을 치료해 주며 마음을 공유한다. 그리고 돈을 벌어 떠나라고 말한다.

그래,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묻지도 않을 거란다. 하지만 만약 사라져야만 할 어떤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류바의 남편이 텔아비브 항구에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라.

p233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영 교수님을 만난다. 그리고 소녀는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의 갈증을 해소해 나간다. 또한 폭력의 고통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영 교수님의 아내엔 야엘이다. 집에서 가면을 쓰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소리를 지르는 그녀는 과거 가정 폭력 가정들을 도왔으나 예기치 못한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만약 아버지가 죽지 않는다면, 그 말 때문에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너무 지쳐 있었다. 무언가가 끝이 나야만 했다. 사실 아마도 우리 넷 모두가 동의하는 유일한 것일 터였다. 이 가족을 끝내야 한다는 욕망.

p272

마지막 결말 부분을 읽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가정 폭력의 중심 아버지에 대항하는 소녀의 몸부림이 극에 달하는 부분이다. 사냥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의 아버지를 한 소녀가 감당하고 당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욕이 없는 어머니, 가녀린 소녀, 어린 남동생. 이 가족이 극한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가정 폭력에 고통받는 가족의 모습과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굳건히 나아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용기와 희망을 발견한다. 소녀를 응원하며 긴장감을 느끼며 읽는 소설이 뇌리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14개 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를 직접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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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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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퍼버그

항생제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 : 슈퍼버그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는 전세계를 위협하며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예방을 위해 재택근무 및 개학 연기 등 다양한 노력이 현재 진행중이다. 그런데 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보다 슈퍼버그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매년 3만 5천명이 슈퍼버그로 인해 사망한다고 하니 매우 놀라운 수치다.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가 바로 슈퍼버그다. 항생제와 슈퍼버그의 관계는 마치 천사와 악마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항생제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천사라면 박테리아는 천사의 공격의 수를 파악해 점점 강해지는 악마다.



맷 매카시의 <슈퍼버그>는 항생제의 시초인 페니실린의 발견부터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몰두하는 이 세상의 숨겨진 의인들과 험난한 임상 연구 과정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슈퍼버그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작은 목적이 달성되는 셈이다. 인류를 위해 필히 이루어져야만 하는 항생제 개발의 속 이야기를 만나 본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지 겨우 1년 만인 1929년 여름 그는 페니실린 분자에 관한 연구를 포기했다. 플레밍과 옥스퍼드대학의 동료들이 다시 연구에 착수하고 급성장 중이던 제약회사들과 협력해 세계 최초로 항생제를 대량 생산하여 시판하게 된 건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였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p31)

페니실린의 발견은 전 인류의 구원이다. 박테리아 감염으로 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현재도 페니실린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군 페니실린에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 슈퍼버그가 발견되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다. 우연히 페니실린을 발견함으로 세상에 기여한 플레밍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두 진균 칸디나 알비칸스크립토콕쿠스 네오프로만스 치료제인 니스타틴을 찾아낸 엘리자베스 헤이즌레이첼 브라운도 역시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니스타틴 역시 진균으로 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궁극적인 문제는 많은 항생제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신약의 생산과 시판 단계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거기에는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비아그라 같은 약을 만들어낸다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므로 그 비용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항생제의 경우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이윤이 적다. 항생제는 대체로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훌륭한 항생제도 머잖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생제 내성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생긴다.

항생제 개발의 황금기 (p39)

항상 모든 문제는 돈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항생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되지 않는다. 일류를 구원할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항상제는 언젠가 슈퍼버그에 의해 정복당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 인류의 과제다. 단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항상제 개발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류의 적과 싸우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지만 그 항생제 개발 과정이 녹록치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폐렴이나 요로감염 같은 일상적인 감염은 집에서 일주일 정도 약을 먹으면 나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약들이 듣지 않았다. 박테리아가 정말로 점점 더 똑똑해지고 강해지고 있었다.

항생제의 관리 및 감독 (p93)

내가 폐렴이나 요로감염이 걸렸는데 항생제를 먹어도 낫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 이상 손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그저 흔한 질병인 요로감염으로 인해 죽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 때문에 목숨을 잃는 다는 자체가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뭔가 억울한 죽음으로 느껴진다.

그의 연구팀은 항생제를 바른 페트리 접시를 사용해 사람의 대변에서 위험한 박테리아를 가려내고 그것이 혈류 감염을 유발하는지 알아내려 한다. 대변을 갖고 씨름하는 일은 말처럼 매력적이지도 않고 힘들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략) 보통 사람의 몸속에 사는 100조 개의 박테리아 중 하나는 슈퍼버그로 변이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리신 (p223)

100조 개의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일, 사람의 대변에서 박테리아를 찾아내는 일. 참 기피하고 싶은 일이다. 엄청난 박테리아의 종류에서도 겁이 나지만 박테리아 연구를 위해 대변을 구하고 박테리아를 찾는 일은 그저 듣기만 했는데도 힘들다. 이 책을 읽으면 그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록펠러 대학 연구팀은 박테리아를 죽이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에서 추출한 효소를 이용해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이 과정을 확인하고 개입하려 한다. (중략) 리신이 박테리아 세포벽을 분해하기 위해 수십억 년 이상 진화해온 효소라고 했다. 거의 박테리아 종류마다 다른 리신이 있을 정도로 고유하며 박테리아는 이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항생제와 달리 리신은 시간이 지나도 효과가 약해지지 않는다.

획기적인 리신 연구 (p232)

박테리아 세포벽을 순해하는 효소인 리신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항생제 개발이라는 방향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박테리아를 죽이는 착한 바이러스라는 부분이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만큼 신비롭다. 항생제 개발 뿐 아니라 리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달바가 모든 감염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아니었으며, 어떤 환자들에게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달바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박테리아는 달바에도 내성을 갖게 될 것이다. 박테리아는 항생제를 신중하게 이용하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브래드 스펠버그의 경고를 유념하려 했지만 달바 임상시험 이야기는 다른 의료센터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에필로그 (p380)

달바 임상시험의 과정들을 통해 항생제 개발의 험난한 여정을 엿보았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부터 필히 거쳐야 하는 승인 및 허가, 연구 개발을 진행하기 위한 투자, 지속적인 관찰 및 연구 등 어느 하나 쉬운 방법이 없다. 개발 중인 항생제가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자가 많이 나올 수도 있음을 무시할 수 없기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슈퍼버그와 혈투를 벌이는 이 세상의 과학자 및 연구원 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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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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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위로

다람쥐가 전하는 고요한 위로를 발견해 본다





주인공 다람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담겨있다.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인간의 내면을 다람쥐 이야기 안에 유머러스하게 담고 있다. 철학적인 혜안을 담은 이야기이 넘쳐나고 의아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독특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나의 이해도가 떨어져 그럴 것이다.



1941년생 저자 톤 텔레헨은 의사로 일하며 시집과 동화를 펼쳐냈다.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네델란드 최고의 동화 작가의 삶을 살았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동화들이 많이 펼쳐냈다. 이 책에도 역시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다람쥐가 무심코 우리에게 던지는 위로를 받아 보자.

"하는 일마다 모두 안 되는 그런 날이 있지." 두더지가 왜가리 발 아래 구멍을 파면서 투덜거렸다. "너도 그런 날이 있잖아." ... "그렇지. 그런 날이 있지." 개미가 대답했다.

p9

"하는 일마다 모두 안 되는 그런 날이 있지."라고 두더지가 말하는 부분이 참 오묘하다. 왜가리는 넘어지고 싶어하는데 넘어지지 못해 다른 동물들이 애써보지만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두더지의 시도가 실패하자 그 때 두더지가 말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넘어지지 않은 왜가리는 넘어지지 못하고 항상 실패했다. 넘어져야 성공이 되는데 이게 실패한다. 사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넘어지는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누군가는 넘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넘어지지 않아 실패했다 말한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냥 흘려 버릴 수 있는 대목이었으나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매우 멍해졌다. 매우 철학적이다.


다람쥐는 이따금씩 자기 안에서 느끼는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콕 집어 어디가 아픈지는 절대 알 수 없었다. 뭔가 울적한 아픔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픔도 터무니없는 것일까? (중략) "쑤시는 듯한, 뭐 그 정도의 통증은 나도 가끔 있어." 잠시 후 개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그것도 아픔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래도 좋아."

p58

아픔 혹은 통증이라면 꿀벌의 허리 통증, 사슴의 뿔이 타는듯한 통증, 달팽이 더듬이 경련, 낙타 혹의 얼얼함, 하마 입 안 통증 등 동물들이 호소하는 통증처럼 우리는 대개 겉으로 드러나는 통증을 생각한다. 그 중 다람쥐는 내면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픔이 터무니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통증도 아픔이지만 내면의 아픔도 쑤시는 듯한 통증으로 나타나곤 한다. 누구나 가슴 절절한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의 통증을 느껴보았으리라. 어쩌면 다른 통증들을 능가하는 아리는 그 통증을 말이다.

'나는 그럼 거북이가 아닌 걸까? 그럼 나는 뭐란 말이지? 생각해보면, 나는 발을 질질 끄는데 그래서 거북이인가...' 거북이는 이리저리 발을 질질 끌어보았다. '아니지. 이건 특별할 게 없어. 발을 질질 끄는 건 너무 흔하잖아.' 거북이는 계속 생각했다. 거북이는 외롭고 불안해졌다.

p69

거북이의 모습에서 얼핏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울고, 개구리는 개굴개굴 우는데 거북이는 특별한게 없다. 우리는 모두 거북이가 거북이임을 알고 있고 지나가던 코끼리는 무심하게 거북이를 거북이라 부른다. 자기 자신의 특별함을 자기 자신만을 모르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낯설지 않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면서도 특별함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자존감, 자신감을 생각한다. 특별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자. 누구나 가슴 한켠에 거북이 한 마리씩 품고 있지 않을까. 안녕 거북아.

꿀단지를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꽁꽁 숨겨두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은 꿀단지를 열고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러자 곧 둘은 다시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p123

뭔가 바보같으면서도 명쾌한 개미와 다람쥐의 이야기다. 꿀단지를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불안함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꿀단지의 꿀을 먹어 치워 안전함과 편안함을 도모하는 모습이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굳이 이런 저런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불안함을 지우는 방법은 불안함을 없애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작은 고민은 그 즉시 해치워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도 있겠다. 어떤 해석이든 우리 삶 안에서 빛나는 지혜처럼 느껴진다.

*****

다람쥐, 메뚜기, 개미, 달팽이, 코끼리, 거북이, 귀뚜라미, 도마뱀, 고슴도치, 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동물 친구들의 캐릭터가 책을 읽는 나의 머릿속에 살아 숨쉰다. 이야기의 숨은 뜻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저 귀여운 동물들 이야기 혹은 무미 건조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어느 한 이야기도 아무런 의미없이 씌여진 것이 없다. 그저 짧은 식견인 내가 그 숨은 뜻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어린 시절에 봤더라면 잘 모르고 지나칠 뻔한 이야기들을 지금 어느 정도 그 숨은 뜻을 발견해가며 읽는다. 세월이 흘러 책도 많이 읽고 수많은 경험이 쌓인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만 같다. 다람쥐가 전하는 고요한 위로를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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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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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단조로운 일상이 빛나는 순간





햇살이 따사로운 날, 커피한 잔을 마시며, 혹은 일상의 단맛에 기분 좋을 때 펼쳐 읽기 좋은 책이다.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단조롭고 지루할 것일 수도 혹은 한없이 빛나는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저자 마쓰우라 야타로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는 일상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잘 즐기고 찾아내고 있다. 사람, 사랑, 여행, 편지, 독서, 대화, 산책, 관찰 등 일상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을 특별하게 만들고 한껏 즐긴다. 그의 바라보는 일상처럼 나의 시선도 그가 바라보는 방식처럼 닮고 싶어진다.


감성적이라 해야할까, 이성적이라 해야할까. 저자의 글은 일상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성적 식견과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감성적 마음이 어우러진다. 일상 안에서 그 무언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감성적인 동시에 매우 이성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 그저 좋다'가 아닌 '나는 이래서 좋다'라는 설명이 함께 있으니 저자의 글을 통해 저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이다. 이러한 저자의 행동들은 '마음챙김'의 실천 버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러 가서 식재료를 고를 때부터 즐거움은 시작된다. 요리를 완성하기까지의 그 일련의 과정이 따분한 일상이 아닌 즐거운 행위가 되는 것이다. 소중한 일상을 일깨우는 일. 이것이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스무 살 때, 뉴욕의 웨스트 73번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는 매일 아침 10시에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때는 일상이 퍽 단조로웠기 때문에 그런 나날 가운데 악센트가 필요했다.

등을 곧게 펴고 (p62)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 생활에서 악센트가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스무 살 때의 저자는 공원 산책이 일상의 악센트였다고 한다. 단조로운 일상을 빛나게 하는 것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풍요로워 진다. 이러한 시각이 우리 삶 자체를 빛나게 한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아닌 활력 넘치고 흥미진진한 일상으로 바꾸는 것은 그저 시선을 살짝 다르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만연한 오늘 점심에는 공원 한 바퀴 돌아보련다.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장 간단한 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조용하고 느긋한 것입니다. 무엇 하나 빠져서는 안됩니다.

오래된 바 주인의 가르침 (p109)

술을 마시지 않는 저자는 오래된 바 '라디오'를 찾는다. 무알콜 칵테일을 즐기며 바 주인 오자키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바텐더들의 근사한 몸가짐은 기본적인 몸가짐부터 가르치는 주인의 철학에 있었다. 서 있는 법, 인사하는 법, 걷는 법. 아주 기본적이며 간단한 것들이자만 잘 지키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올바른 자세로 앉기, 틈틈이 스트레칭 하기, 매일 운동하기, 삼시 세끼 잘 챙겨먹기 등 정말 기본이지만 우리는 잘 하지 못한다. 일상에서 나는 이러한 기본을 지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잘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봐서는 보이지 않는 숨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멋진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눈을 돌리고 싶은거나 아름답지 않은 수많은 것 안에도 어딘가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잘 본다는 것 (p128)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는 저자.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쉽사리 하지 않는다. 숨어 있는 것을 꺼내어 본다는 것, 한 눈에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빛나는 것을 발견하는 것, 이런 것이 진정으로 보는 것이라 말한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볼 때 집요하게 집중해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숨어 있는 빛을 발견한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람을 잘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물건을 잘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잘 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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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Anyway -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역설의 진리
켄트 키스 지음, 강성실 옮김 / 애플씨드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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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미,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역설적 10계명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서든 바르고 정의롭고 선행을 베풀고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수많은 현실적 방해물들이 이러한 우리의 선한 마음을 짓밟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왜 우리는 선해야 하며 약자를 위해 살아야 하며 사람들을 도와야 할까. 인생의 회의감에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들지만 이 책은 이러한 역설적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라 말한다.



저자 켄트 키스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로 미쳐가는 세상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개인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의 역설적인 리더의 십계명과 책에 담긴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우리의 인생지침서로 삼고 이대로 수행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진정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한다.

역설적인 지도자의 십계명

1. 사람들은 논리적이지 않고 불랍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라.

2.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절하라.

3. 당신이 성공하면 거짓 친구들과 숨은 적들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성공하라.

4. 당신이 오늘 선을 행해도 내일이면 모두 잊힐 것이다. 그래도 선행을 베풀라.

5. 정직하고 솔직하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도 정직하라.

6. 큰 뜻을 품고 살아가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넘어질 수 있다. 그래도 큰 뜻을 품으라.

7. 사람들은 약자의 편을 들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래도 약자를 위해 싸우라.

8.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쌓아올려라.

9. 도움이 필요한 사라들에게 도움을 주고도 공격받을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을 도우라.

10.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고도 크게 낙담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서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를 웃게 하거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예의를 지키거나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도 선행을 한 것이 된다.

제4계명, 그래도 선행을 베풀라 (p55)

선행이라 하면 대개 거창한 것을 떠올린다. 기부를 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의 선행이 떠오른다. 그런 행동들이 매우 바람직한 선행이긴 하지만 선행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열심히 일하는 것 역시 선행이 될 수 있으며 뒷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거나 문을 잡아 주는 일 또한 선행이다. 양보, 예의, 청소, 나눔, 미소 등 작은 것들이 모여 사람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선행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선행 자체가 목적이 되어 선행을 해야 한다. 이 점을 항상 기억하자.

우리는 약자를 동정한다.

그리고 약자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약자가 승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을 응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 직업, 명예가 걸려 있게 되면 우리는 대개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제7계명, 그래도 약자를 위해 싸우라 (p87)

십계명 중에서 유독 일곱번째 계명이 뇌리에 남는다. 항상 내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나의 소신과 같기 때문이다. 약자는 언제나 약하다. 강자를 따르고자 함은 본능적 흐름이다. 약자를 위해 싸운다고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약자를 위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매우 역설적이다. 현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약자를 도와 해피앤딩을 맞이하는 일은 희박하며 대부분은 드러나지도 않는다. 약자를 돕는 과정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약자를 도우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현실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신있는 행동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기억하고 지키고 싶다.


*****

십계명의 내용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왜 마더 테레사가 역설적인 리더의 10계명을 인생지침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다. 사랑, 친절, 선행, 정직, 약자를 돕는 등의 매우 당연하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세상은 점점 미쳐가고 살아가기 힘들지만 정의는 언제나 살아 숨쉰다. 이러한 정의를 깨우는 역설적 십계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영웅을 꿈꾼다. 이 세상에서 영웅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것들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작은 친절과 선행들을 베푸는 우리가 이 시대의 영웅이다. 쫄쫄이 코스튬을 입고 빌딩 사이를 누비며 악당을 물리쳐야만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얼마든지 희망과 정의가 넘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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