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고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 의사 가운 입은 러너가 말하는 달리기 너머의 인생
남혁우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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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달린다고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 달리기 부상 전문의 의사 러너의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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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러너 공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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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초부터 6개월 정도 혼자 러닝을 하고 있는 초보 러너다. 초기에는 거의 매일 3km 정도 달리다가 지금 2~3일에 한 번 정도 3~4km 를 달린다. 러닝을 막 시작했을 때보다는 물론 숨이 조금은 트인 느낌도 있고 몸의 근육도 약간은 성장한 듯 하지만 스트레칭을 생략하거나 자세가 좋지 않았을 때 무릎 통증이나 발목 통증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며칠 쉬면서 회복을하고 스트레칭을 통해 극복하기도 한다. 비교적 접근과 실행이 쉽지만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해나가기에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운동이다. 그래서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거나 러닝 자세를 스스로 교정해 가며 나에게 맞는 자세와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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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꾸준하게 지속 가능하게 돕는 필요한 또 하나가 바로 '러닝 격려자'이다. 물론 러닝 동호회나 러닝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도 있지만 나처럼 짧게 3km 정도 건강을 위해 뛰는 입장의 초보 러너가 작은 근육통때문에 전문가를 찾기는 참 쉽지 않다. 나에게는 이러한 러닝 공감 에세이가 일종의 '러닝 격려자'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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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고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은 러닝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례들을 담고 있어 좋았다. 다른 러닝 공감 에세이들과 약간 차별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스스로 러너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러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충에 깊게 공감한다는 점이다. 그저 통증이 있을 때 회복을 위해 단순하게 '뛰지 말라'는 교과서적인 대답이 아니라, 러닝을 하면서 겪는 각종 통증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며 계속 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 매우 다르다. 회복을 위해 달리기를 멈추는 경우 다른 근육 강화 훈련을 알려준다거나 통증의 원인을 고치기 위해 다방면의 확인 등 정말 러너들에게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의사와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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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실제 달리기 부상 전문의이자 러너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달리고 싶어하는 러너들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러닝을 시작하고 가졌던 사소한 고민들, 무릎 통증들, 강박과도 같은 생각들이 에피소드들에 녹아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동지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러너들의 공감을 얻는 '러너 공감 에세이' 추천 도서들

세 권 모두 러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읽었다. 이 책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러닝을 꾸준하게 해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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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매우 유명한 작가이자 운동을 위해 시작한 러닝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에 대한 이야기. 러너라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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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나는 달린다> - 요쉬카 피셔

기안84가 추천한 책, 독일의 정치인인 요쉬카 피셔가 러닝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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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 마쓰우라 야타로

40대에 시작해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달리고 있는 마쓰우라 야타로의 달리기 권장 에세이까지 아주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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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끝까지 가 본 적이 있다.'

끝까지 가 본 기억의 힘 (p27)

러닝은 꾸준함이 필요하다. 그 꾸준함의 원동력은 나는 체력이라 생각하는데 러닝이 그 체력을 길러주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러닝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다.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한다거나 한 달 안에 10kg을 뺀다거나 하는 식의 목표 말이다. 달성이 매우 어려운 목표이기에 목표을 완벽히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스스로 실망하고 실패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마라톤처럼 장거리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4번 뛰어도 성공이고, 2번만 뛰어도 아주 훌륭한 성공이다. 10kg이 아닌 1kg을 감량했다고 해도 아주 훙륭한 일이다. 근육이 늘어 몸무게가 늘어날 수 있으나 몸의 군더더기 지방은 빠지면서 건강해졌을 것이다. 1km 의 거리에 도달했다면 나중에 5km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엔 분명 10km에 도달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 목표는 다른 러너들처럼 서브4나 서브3 또한 half나 full 마라톤 완주가 아니다. 그저 지속 가능한 달리기, 건강한 7km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어떻게 나의 마음이 달라졌을지 궁금해 적어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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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중간에 걸었다는 사실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걸은 덕분에 끝까지 왔다고 생각했어요.

걷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p56)

러닝을 하다가 힘들어서 걸으면 마치 실패한 듯 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에게 패배한 것만 같고 저번보다 체력이 떨어진 것만 같다. 다른 러너가 나를 추월하면 진 듯한 느낌이다. 나 역시 뛰는 중에 비슷하게 느꼈다. 묘한 경쟁 심리가 작용하는 사람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 3km 뛰는 중에 한 번도 걷지 않기를 목표로 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의 몸 상태나 페이스에 따라 더 힘들어서 걷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힘들 때는 걸어도 된다고 의사 처방을 받는다. 러닝을 하다보면 이런 강박적인 족쇄를 스스로 채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지속적인 달리기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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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오래 달리고 싶다면 먼저 천천히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금 빠르게 달려도 괜찮은 몸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러너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완벽한 속도가 아니라 여러 속도를 오갈 수 있는 몸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달리는 법 (p113)

나는 6개월 정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으나 5km에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3km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며 3km만 달려도 충분히 힘들고 숨이 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의외의 부분을 만났다. 천천히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기는 했다. 존2 달리기를 통해 장거리 몸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달리는 법'에서는 아내의 페이스에 맞추기 위해 천천히 달리다가 오히려 통증이 생겨난 사례로 나에게는 매우 놀랍고도 새로운 부분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것과 천천히 달리는 것에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 적용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3km를 달리는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더 천천히 오래 5km 이상을 달리는 도전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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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14년 동안 꾸준히 달렸다. 돌이켜 보면 그 때의 신경 손상을 동반한 디스크 탈출증은 단순한 질환이 아니었다. (중략) 목 디스크는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멈춰 세웠고, 동시에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목 디스크, 그리고 달리기 (p126)

이 책의 저자는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고 목 디스크로 인한 수술을 고민 중에 있었다. 그러다 형의 충고로 달리기를 했고 서서히 통증이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지금까지 달려 오고 있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나에게 운동은 사치라 생각했고 귀찮았다. 40대가 되어 무너진 근육, 어깨와 허리 통증으로 고민하다가 기안84를 필두로 한 전국민 러닝 열풍에 나도 살짝 동참했다. 그렇게 몸의 통증은 서서히 잦아 들었고 이제는 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그래서 달리기를 통해 얻는 몸의 변화가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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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자고, 잘 회복하고, 보강 운동을 하고, 부상없이 꾸준히 달리며 건강한 마음과 여유, 그리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들이 모여 더 오래, 더 강하게 달릴 힘이 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갔다.

더 빨라야 한다는 착각 (p139)

현재 건강하게 달리기가 목표인 나에게 항상 기억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더 빨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달리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왜 그렇게 기록에 목마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 속 한 켠에 언젠가는 마라톤 풀코스 참여라는 작은 목표가 숨어있긴 하다. 러너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욕망을 잘 다루고, 욕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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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오디세이아
박용남 편역 / 리미트리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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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미트리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오디세이아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다시 만나는 오디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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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쏘아올린 <오디세이아> 광풍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대흥행을 이뤘다. 다회차 영화관 관람자도 많고 개봉한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맥스관의 영화표를 구하기 힘든 지경이라고 한다. 아는만큼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기에,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유튜브에서 관련 지식을 소개하는 영상도 보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관련 에피소드도 찾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디세이> 영화 관람을 재미있게 하고 난 후 그 감동과 여운이 한동안 남았고 나 역시 오디세우스와 헤어질 수 없어 더 만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났다. 그러다 <오디세이>의 책이자 원전인 <오디세이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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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는 처음부터 책이 아니었다고 한다. 음유시인들이 며칠에 걸쳐 부르던 노래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한다. 그래서 원전은 그 노래들을 엮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기면 흐름이 뒤죽박죽이고 읽기에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서 선뜻 두꺼운 <오디세이아> 책을 읽기에 겁부터 났고 어려운 책에 도전하기 두려움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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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 이십 년의 이야기다. 트로이아를 무너뜨린 사내가 제 집의 문턱 하나를 넘기 위해 치러야 했던 값의 이야기다.

p11




<한 권으로 끝내는 오디세이아> 의 특징

​<오디세이> 영화의 흥행의 여파로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오디세이아>, <오뒷세이아>, <오디세이> 등 다양한 제목으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서로 앞다투어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최대한 원전에 가깝게 번역한 책도 있고,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편역한 책도 있어 같은 제목의 책이라 할지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다른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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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오디세이아> 도 그 흥행의 물살을 타고 우리에게 나타났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으로 책을 구성해 소설처럼 읽기 쉽게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고, 각 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해설을 곁들여 이해가 더 쉽도록 돕고 있으며 해설을 통해 원전의 더 깊은 뜻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독자 친화적 소설로 재구성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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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줄거리

트로이아 전쟁의 목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계락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이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하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만나 위기를 넘기고, 마녀 키르케에게 부하들이 돼지로 변해 이를 오디세우스가 해결하고, 세이렌과 스킬라의 위협을 지나, 태양신의 소들을 먹고 동료들을 모두 잃는다. 칼립소 여신의 섬 오기기아에서는 7년의 시간을 허비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타카에서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구혼자들을 처벌하며 복수를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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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본다면 매우 익숙하고 평이하다. 다만 그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내용의 숨은 뜻과 해석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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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거절이 값진 것은 그가 치를 값을 알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는 페넬로페가 칼립소보다 아름답다고 우기지 않는다. 당신이 더 아름답고, 당신은 늙지 않으며, 아내는 필멸의 인간이라고 먼저 인정한다.

p127




영화와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

<오디세이아>를 읽다보면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와 전체적인 내용과 주된 스토리는 동일하지만, 세부적 내용들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놀란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내용을 영화에 담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오디세이아> 책을 읽는 흥미를 돋구고 새로운 내용처럼 다가와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긴장감과 극의 구성을 위해서인지 일부는 삭제되었고, 일부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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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의 예로 특히 '키클롭스의 동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키클롭스의 영역에 다다랐을 때, 영화에서는 키클롭스가 눈이 좋지 않고 당연히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에서는 키클롭스가 오디세우스 일행을 처음부터 불청객으로 인지했고 침입자였지만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아니'라고 소개했다. 또한 책 내용에서는 술로 키클롭스를 재우고 키클롭스를 제작한 창으로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와 책의 그 세부적인 과정은 다르지만 오디세우스 일행은 부하들을 잃었고, 키클롭스는 눈을 잃었다. 바위 아래로 양처럼 꾸며 동굴을 빠져나가는 장면은 동일했으나 영화에서 추가된 동굴을 빠져나와 키클롭스에게 도발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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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키르케'를 만났던 부분 역시 흥미롭다. 영화의 키르케와 사뭇 다르게 표현이 되었고 짧은 시간 머무른 것으로 표현이 되었으나 책에서는 1년의 시간을 머물렀으며 부하들의 권유로 키르케로부터 오디세우스는 떠났다. 페넬로페에게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의 의지가 꺽이는 듯한 부분으로 영화의 각색 부분이 더욱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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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우시카'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미 영화에서 본 장면 같은 경우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만 반대로 나우시카 부분처럼 영화에 나오지 않았던 부분은 선뜻 뇌에서 영상화가 진행되지 않아 책을 읽으며 혼자 머릿속에서 버퍼링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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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화와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새로운 발견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영화는 영화만의 흥미로운 맛이 있고, 책은 그 숨겨진 뜻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희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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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와 책 <오디세우스> 어느 것을 먼저 봐도 좋을 것 같다. 각자의 방식마다 나름의 재미가 있을 듯 하다. 인생에 오래 남을 훌륭한 이야기 속에서 지혜와 재미를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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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의 겉을 쓴 농담 한 마디가 홀의 경계를 풀어놓는 사이, 활은 오디세우스의 손에 쥐어졌다. 에우리클레이아가 홀의 문을 걸어 잠갔다. (중략) 그는 힘들이지 않고 큰 활에 시위를 얹었다. 오른손으로 시위를 퉁겨 보자 시위는 제비 소리같이 아름답게 노래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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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0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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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의 최고 걸작 소설! - 뉴욕 타임즈-




사실 이 짧은 서평 안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가치를 담아 내기는 쉽지 않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그 가치를 더욱 여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분량이 있는 편이며 장황한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심취해서 읽다보면 푹 빠져드는 재미와 묘미도 했다. 스토리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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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살짝 지루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등장하고 서로 만나게 되며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두 남자 사이의 관계를 사랑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처음엔 이 단어 표현들이 당혹스럽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와닿지 않았다. 문맥상 깊은 우정의 남자 둘 사이의 악수나 다독거림 정도로 판단되는 부분에서 애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 이 또한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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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지와 사랑'과 동일한 책이다. 즉,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녀간의 사랑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깊은 우정 이상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우리가 사랑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의 사랑은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며 특별하게 깊은 우정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저는 당신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이시여, 당신은 세상을 사악하게 만드시고 사악한 질서 속에 놔두고 계십니다. 저는 집마다 골목마다 시체가 깔린 것을 제 눈으로 봤습니다. 부자들이 자신들 집에 축대를 쌓거나 도망치는 것을, 가난뱅이들이 형제들을 묻어주지 못하고 그냥 팽개쳐두는 것을, 그들이 서로 의심을 품고 유대인들을 가축처럼 때려죽이는 것을 (중략) 우리를 몽땅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작성이시나요?

p289


골드문트가 상당히 매력적이며 미남이라는 점에서 처음엔 뭔가 미덥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지도 않고 연예인 중에서도 상당히 잘생긴 축에 속하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설정이어야 이야기가 재미있게 흘러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겠다는 빠른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주인공이 주인공 다워야 이야기가 재미있을거다. 어디에서나 사랑을 받고 여인들이 홀라당 넘어가기에 골드문트의 방랑기가 참 재미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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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는 질서를 지키고 금욕과 이성이 중심인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골드문트는 이와는 대조되는 삶을 살았다.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며 사랑하고 예술가의 삶을 산다. 이 두 사람의 대화 안에서 상당히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간다. 정답이 있다기보다 그저 다른 각자의 삶이라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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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중심에는 골드문트의 어머니가 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여성이었고 방탕한 삶을 살았기에 평이 좋지 않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정적 평가를 했고 골드문트는 이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골드문트의 삶은 어머니의 삶과 많이 닮아았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결핍은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고 그 결핍을 채우는데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여인들을 통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했던 골드문트가 아니었을까.


시녀가 아닌 아그네스가 하얀 털가죽 깃을 단 연한 하늘색 옷차림을 하고 들어왔다. (중략)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날아왔죠? 아름다운 새여, 당신은 군인인가요? 아니면 떠돌이 광대인가요? 혹은 가련한 나그네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이오." 그는 껄껄 웃었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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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는 매우 매력적이고 잘생긴 청년이다. 매력적인 곱슬머리에 목소리도 좋아서 만나는 여인들마다 그에게 빠져든다. 유부녀든 처녀이든 두 자매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흠모한다. 골드문트는 가진 것 없고 집도 없는 뜨네기 여행가이자 떠돌이 학생이건만 이 잘생긴 청년을 여인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배고프면 빵과 우유를 기꺼이 내어주고 몸도 마음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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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의 생활에서 도망나와 떠돌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노숙을 하거나 헛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농부를 만나거나 안락한 성에서 머물기도 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 성에서 쫓겨나 떠돌이 동료인 빅토르를 만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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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험을 통해 골드문트는 점차 성장해 나간다. 스승 니클라우스를 만나 예술가의 기질을 발견하고 원하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조각 작품에 담아내었다. 나르치스의 모습을 담아 작품에 요한이란 불렀다. 재능을 인정 받아 자신과 함께 하자며 스승은 권유했으나 골드문트는 다시 떠나기로 방랑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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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랑의 시간 속에 흑사병으로 죽은 이들을 목도한다. 수많은 이들이 흑사병으로 인해 쓰러졌고 고통 속에 죽어감을 보았다. 흑사병의 잔해들 사이에서 만난 레네와 집을 만들고 함께 살아간다. 그러다 레네에게 병과 죽음이 찾아왔고, 골드문트는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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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는 귀족의 여인 아그네스를 만나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그간 농익은 골드문트의 유혹으로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진다. 밤중에 궁성에 잠입해 백작의 애인을 만나다 백작에게 도둑으로 몰리며 체포되었고 교수형의 위기에 처한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가 했으나 뜻밖의 인물과 재회한다. 바로 나르치스였다. 나르치스의 권유로 그렇게 골드문트는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간다. 물론 수도자의 삶이 아닌 손님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리아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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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르치스, 당신은 어머니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죽을 작정이오?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할 수도 죽을 수도 없소."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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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의 삶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결국 하나의 진실에 닿는

두 영혼의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의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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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혜 - 니체와의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오광일 편역 / 유아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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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이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즐거운 지혜

삶이 무거운 우리가 니체에게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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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철학은 매우 보편적이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책을 찾아 읽다보면 기대 이상의 높은 난도에 당황하곤 한다. 니체의 철학에 한 걸음 다가서려 한 호기로운 도전이 좌절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궁금하다. 그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책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으며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니체의 철학에 한걸음 다가서고 싶은 욕망이 늘 들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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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혜 - 니체와의 산책> 은 니체의 철학이 어려울 것이란 두려움이 가득한 이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며 손을 건네는 책이다. '나'와 '니체'의 대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니체의 철학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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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혜>는 <즐거운 학문>와 뿌리가 동일한 책이다. 원서 제목이 Die fröhliche Wissenschaft 이다. <즐거운 지혜>에는 원서의 내용에서 전반적 이해를 어렵게 하는 문장과 일부 장이 삭제 및 보완 되었다 한다.





인간은 '해야 한다'와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붙여야만 살 수 있는 동물이 되어버린 거야. 삶의 이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지.

1. 태어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p14)

얼마 전에 읽었던 <흔들릴 때마다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에서 빅터 프랭클의 철학을 만났는데 인간은 의미를 갈구하는 존재이며 의미있게 살기 위해 산다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장 첫 장에 언급된 니체의 철학과도 연결이 되어 참 흥미로웠다. 여기에서 니체는 "웃음과 이성, 자연은 결국 목적을 가르치는 자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지'라고 말한다. 인간이 웃음과 즐거운 지혜, 비극이 함께 어우려져 인간이 살아간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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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이는 진정한 쾌락을 알 수 없어. 철저하게 깊은 고통을 경험한 자만이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어.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것을 극복했을 때의 쾌락도 더 깊어지거든.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위대한 영혼을 가졌어.

29. 고통을 아는 자의 행복 (p75)

사실 고통과 쾌락의 관계에 대해 선뜻 이 의미가 와닿지 않았으나 어쩌면 우리는 사실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다. 군대에서 힘들었던 고통의 시기를 지나 사회에 나왔을 때의 쾌락, 취업난의 고통에서 허덕이다 드디어 만나게 된 면접의 기회에서 느끼는 쾌락,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기와 만났을 때의 행복 등 고통이 큰 만큼 이룬 성과의 쾌락은 그 어떤 기쁨과 견줄 수 없다. 취업난의 고통의 과정이 깊으면 깊을 수록 힘들게 얻은 직장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감사함이 오래 가기란 또 다른 부분이겠지만... 고통의 과정을 통해 얻은 성과는 진정한 쾌락으로 다가오며, 우리가 현재 이룩한 성과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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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사로잡는 포인트는 따로 있어. (중략) '은근하면서도 차분하고 여유 있는 다정함'이야. 너무 서두르거나 감정을 쏟아내면 안 된다는 거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끌리는 거라고.

41. 사랑의 기술 2 (p101)

20대에 니체의 철학을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니체가 사랑의 기술까지 알려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30대가 될 즈음 경험적으로 알게된 사랑의 기술이 140년 전 이미 니체는 깨닫고 <즐거운 지혜> 책에 담아 놓았다는 생각에 지혜와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당신이 얻고자 하는 지혜는 이미 대부분 과거의 선배들이 이미 경험했고 책에 담겨 놓았음을 기억하자. 사랑을 얻고 싶다면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가져야 함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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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어디로 갔냐고? 내가 말해주지!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신을 죽였다.! (중략) 내가 너무 일찍 왔군. 아직 때가 아니야. 이 엄청난 사건은 이미 일어났지만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어. 번개가 친 뒤에도 천둥소리가 들리고, 별빛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눈에 닿는 법이지. 신의 죽음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이미 그 일을 저질렀지만, 아직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니체의 한 마디 : 신을 죽인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은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65. 우리가 신을 죽였다 (p 153-154)

'우리가 신을 죽였다' 에서는 '미친 남자'가 등장한다. 니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사실 이 내용만으로 온전히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좀 찾아봤는데 과학이 발전해 나가면서 종교적 세계관의 권위가 약해지는 시기였고, 이로 인해 선과 악의 기준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에게 니체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였다. 우리의 기준으로 봤을 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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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음에 사로잡히기보다 삶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 그래서 그 모습이 슬프면서도 기쁘게 느껴져. 나는 사람들이 죽음보다 삶에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네. 삶이라는 생각이 지금보다 백배는 더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말일세.

86. 죽음에 대한 생각 (p201)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럴 때마다 뚜렷한 답을 얻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어야 한다는 결론이있다. 다만 니체의 죽음에 대한 대답을 듣고나니 죽음에 대한 생각에 치우치기 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백배 더 가치있다는 말이 나를 환기시킨다. 사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더 재미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데 하릴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지를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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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에세이 책보다 철학 책에 더 손이 가는 듯 하다. 마음을 다독여 주는 에세이 책들은 F의 위로라고 한다면, 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겨낼 수 있는 직언이 담긴 철학 책은 T의 조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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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의 조언이 더욱 내 마음의 고통을 떨쳐 내는데 도움이 됨을 느낀다. '그래도 괜찮아'라는 에세이의 다독임은 나를 나태하고 합리화 시켜버리는 게으름뱅이로 만들지만, '그 고통은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철학의 강인한 말이 내 정신을 번뜩이게 만든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름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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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혜>처럼 가벼우면서도 깊은 내용이 담긴 철학 책이 매우 반갑다. 철학 책이 어려우면 잘 읽지 않게 되고 금방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오늘 니체와의 산책은 내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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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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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서리꽃

짧았지만 진하고 뜨거운 슬픈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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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서리꽃>은 기존 작품들과는 살짝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랑'이라는 메인 스토리에 조정래 특유의 스타일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함께 여행하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었고, 특히 가독성이 매우 좋아 술술 읽힌다. 그 속에서도 사회적 문제를 절묘하게 녹여내어 조정래 작가만의 시선과 고유의 특성이 여전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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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두에 작가의 말 '직업병의 행렬 속에서' 로 책이 시작된다. 평소라면 관심을 갖지 않고 넘겼을 부분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이며 '직업병'이란 단어가 주는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이 대목에 나는 조정래 작가에 대한 경외로움을 느꼈다.  조정래 작가가 오랜 글쓰기 노동으로 인한 탈장 수술과 복부 대동맥 팽창 수술을 경험했던 담담한 고백이 담겨있다. 80세가 넘은 거장의 삶이 이 직업병의 사례만으로도 얼마나 노력을 하고 깊게 몰두했는지 깊이가 느껴진다. 평생을 작품 창작에 바쳐온 그의 집념은 가히 '정신승리'라 불릴 만하다. <서리꽃>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 작품이 한층 더 귀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또한 조정래 작가님이 건강을 특히 기원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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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리꽃>은 '이재이'와 '윤소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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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는 부잣집 둘째 아들로 부모의 권유에 따라 경영학 유학을 떠났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철학 공부에 매진한 뒤 귀국한다. 귀국 후 친구 민태식의 도움으로 윤소인과 재회하게 되는데, 둘의 인연은 유학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졸업 작품으로 이재이는 시를 쓰고 윤소인은 그림을 그려 하나의 작품을 함께 완성했었고, 당시 이재이은 윤소인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이재이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수첩을 건네며 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연인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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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인 가정의 비극적인 배경 또한 안타까우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윤소인의 아버지는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빼앗긴 후 사업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기나긴 법적 공방과 소송 끝에 아버지는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윤소인은 막대한 비용과 빚을 떠안아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 이러한 그녀의 비극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재이는 윤소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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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인 가정의 비극에서 조정래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기업은 윤소인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절묘하게 변형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부당하게 편취한다. 이에 맞서 아버지는 기나긴 소송을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결국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현실의 불합리와 대기업의 횡포, 그로 인해 무너지는 개인의 비극을 다루는 지점에서 조정래 작가만의 사회 비판적 시선이 짙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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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의 사랑이 매우 가슴 아프면서도 소설을 읽으며 내 자신을 이재이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되었다. 나도 이재이처럼 누군가를 계산없이 그저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까? 순애보를 넘어서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이재이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 이상의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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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는 자신에게 상속될 막대한 재신을 형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형에게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윤소인 가족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가맹점도 내준다. 친구인 민태식의 가족의 시기를 살까봐 친구 가족에게도 가맹점을 내준다. 좋았던 순간도 잠시 그간 윤소인의 기침이 심상치 않았는데, 병원 진찰 결과 윤소인에게 폐암이 발견된다. 수술과 요양비 또한 이재이는 모두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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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함께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난다. 이 대목은 그저 순애보적 사랑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재이는 헌신적으로 윤소인의 요양을 도왔고, 그렇게 윤소인은 회복을 하게되고 두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소인은 아버지의 빛을 갚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그림을 마음껏 그리지 못했다. 이에 이재이는 기꺼이 윤소인에게 마음껏 그간 못 그렸던 그림에 몰두하게 돕는다. 다만 그림에 몰두하는 이 1년의 시간이 두 사람에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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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윤소인의 꿈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파리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작품에 대해 풍부한 자신들의 감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이 두사람의 모습이 아름답우면서도 매우 슬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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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언급된 반 고흐의 작품들을 직접 프랑스 파리로 가서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이재이와 윤소인이 느꼈던 감상을 나 역시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풍성한 정보를 이 책에 담고자 열심히 자료를 공부하고 모은 조정래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면 나는 이재이와 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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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의 시대 배경은 현대다. 스마트폰과 AI를 등장시켜 정보를 검색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럽게 소설의 곳곳에 담겨 있다. 다만 이 소설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조정래 작가는 사랑 전문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말인 즉슨 조정래 작가가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지만, 전반적으로 약간 '올드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계적으로 깊어지고 감정이 차곡차곡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고 아쉬웠다. 또한 두 사람의 대화에 요즘 젊은 층이 잘 쓰지 않는 단어와 어조가 자주 사용되어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철학을 전공한 이재이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관념적이고 생경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여 대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조정래 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던만큼 사랑 전문 작가와 콜라보나 검수와 같은 형태로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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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정래의 소설 <서리꽃>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짧았던 반 고흐의 생애와 피어나지 못했던 그의 삶, 많은 관광객들이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싶어 관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재와 대비되는 절묘함이 그려진다. 이 둘의 사랑은 마치 서리꽃처럼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랑의 온도만큼은 매우 뜨거웠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냈지만 자신만의 높은 기준 탓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윤재인의 모습이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림에 몰두 했던 반 고흐와도 닮았다. 이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이재이는 반 고흐의 동생과도 닮았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들이 밀려온다. 소설이 주는 여운이 상당히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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