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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서 왔습니다
오은정 지음 / 미구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 미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왔습니다
북에서 온 92년생 시인 '오은정'의 이야기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24/pimg_7283801804582158.jpg)
1992년생이면 2025년 올해 33세의 나이다. 2009년 한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당시 17세의 나이였다. 같은 민족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북의 이야기는 순수하게 궁금한 대상이다. 매체의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많이 듣곤 하지만 언제나 새롭고 마치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상한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북한의 가난한 서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변가의 한 마을에서 자란 소녀의 탈북까지의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아직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상상 그 이상의 내용에 놀라웠다. 첫 부분에 언급되었던 17살의 탈북이 매우 순탄하게 보였기에 그래도 탈북을 하는 순간은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그 순간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다사다난했다.
나는 두만강을 넘은 순간부터 그리움이라는 병을 얻었다. 두만강을 넘기 전 되새기던 기억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흐려지고 사람들은 얼굴이 없어졌다. 두만강 너머를 꿈꿨던 나는 이제 하얀 신발을 신고 고향 땅을 밟는 꿈을 꾼다. p15
17세의 오은정, 두만강을 넘는 그 순간의 일화를 책의 맨 처음에 담았다. 하얀 눈이 소복한 추운 겨울 두만강을 건너는 한 소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아득했을까. 두려움 한편에는 가슴 속의 작은 기대감에 동화를 신고 눈을 밟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댁에 두고 온 어린 동생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강을 건넌 이후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가기 까지는 더 험난했다. 공안에게 붙잡혀 다시 북송될 수도 있고 그러면 탈북자라는 낙인이 찍혀 더 삼엄한 감시를 받게 된다. 실제 자신의 엄마가 탈북에 실패해 다시 북송되었기에 그 두려움은 온몸을 휘감는다.
바다 마을에서 빨간 팬티만 입고 수영을 즐겼던 소녀, 어린 시절이 가난하고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엄마는 꽃제비에게 밥을 줬고, 아빠는 꽃제비들에게 밥도 주고 돈도 줬다. 그리고 아빤 엄마와 대판 싸웠다. 술마시며 친구들과 노느라 가족에겐 무관심한 아빠, 아등바등 딸을 키우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엄마, 먹을게 없어 소나무 속껍질을 먹고 변비가 생겼던 일. 군인 삼촌들에게 몰래 아기 강아지 셰퍼드를 키우고 기른 곰이를 3년이 되는 해에 팔았던 일화. 엄마와 아빠가 싸웠고 엄마가 한동안 집을 나갔다 돌아왔던 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추억일 수 있으나 그 당시는 죽음의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치앞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눈 앞에 가득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은 가난하고 부족했지만 그 안에서 나름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어디나 사람사는 곳은 비슷한 듯 하다. 남녀가 서로 무도회장에서 쪽지를 주고 받고, 해변에서 수영하고 어죽을 끓여 먹고 엄격한 사회 체계 안에서도 그들의 삶은 유유히 흘러간다. 먹을게 넉넉치 않은 곳, 산딸기는 아이들에게 놀이이자 권력이었다. 이런 봄같은 이야기만 가득했다면 좋았겠지만 추운 겨울은 금방 다가왔다.
내가 여기서 김밥을 먹으며 이겨 내는 날들이 많을수록 동생이 고향에서 김밥을 먹을 수 있다. 처음 김밥을 먹었던 추억 위에 지금 내 손에 들린 김밥이 덧씌워진다. p68
김과 밥이 귀해 김밥이란 음식 자체가 귀한 음식인 북한, 반면 한국에서 김밥은 가장 저렴한 음식으로 바쁠 때 한 끼 때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저자 오은정은 이 극명한 차이를 경험하고 피부로 느낀 장본인이다. 엄마가 먼저 탈북을 하고 아빠와 여동생만 남은 상황에서 삶은 점점 피폐해져갔다. 그러다 동생의 기침은 점점 심해졌다. 비교적 잘 살지만 아이가 없던 J 아저씨는 동생을 데려다 키우고 싶다 말한다.
생존의 나날이었다. 하루하루가 그저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 그저 살기 위해 살았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 엄마의 탈북, 아빠의 사고, 먹기 위한 도둑질, 한겨울 나무하기 등 하나하나 이야기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엄마와 아빠의 보호막이 없어진 순간부터는 지옥의 나날이었다. 물론 선의로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연명했다. 하지만 돈이라는게 참 무섭다. 착했던 사람은 사기꾼이 되고, 남자들은 늑대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먹을 것이 없는 현실은 칼날과도 같았다.
북한에서 라오스로 탈북민들이 모여드는 걸 눈치채곤 라오스 정부에 우리를 북송시키라고 요청했다. 대사관 직원들이 한 사람씩 불러 한국에 가길 희망하는지 면담했다. (중략) 2주 뒤면 한국에 입국한다던 일정이 몇 달 뒤로 미뤄졌다. 갇힌 공간에서 오로지 기다림으로 채워야 하는 하루는 일 년처럼 길었다. p247
이런 지옥과 같은 곳을 떠나 탈북할 수 밖에 없는 구조와 현실이 크게 공감되었다. 나라면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어린 나이의 소녀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했다. 지독한 생활력이 없으면 그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녀는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텼다.
탈북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계속 될 것이 불보듯 뻔해 보인다. 북한의 실상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더욱 처참하고 처절하다. 북한이 바뀌지 않는한 탈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탈북은 현재 진행형임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나니 참 내가 행복에 겨워 살고 있었음을 다시금 느낀다. 내 자신도 흙수저의 삶을 살았기에 기회가 참 적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행복한 것임을 이제서야 할게 된다는 게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느껴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조국의 핏줄이 흐르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이 참 가슴이 아파온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분명 시인의 에세이였거늘. 기쁨과 슬픔, 잔잔한 드라마와 스럴러, 스펙터클한 탈북과 현재의 평온함 등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이 공존하며 이 책을 읽는 내 자신의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흥분되고 슬프고, 가슴 아프고 또한 기뻤다. 이런 책을 읽게 해준 저자에게 경의로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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