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레이죠 히로코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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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이별의 슬픔과 마주한 소년

이 소설은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온전히 소설 내용에 집중하고 작가가 준비해 둔 모든 코스 요리를 맛있게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내용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다면 소설이 시시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소설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 소설이 매우 흥미로웠고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래서 다시금 당부하고 싶다. 뭔가 가슴 뭉클해지는 가벼운 소설 하나를 읽고 싶다면 이 서평을 읽을 것이 아니라 부담없이 이 소설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청소년 문학 장르로 잔잔한 일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연히 작가의 삶을 살게 된 대학생 소년 모도리노가 버찌관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러다 생각치 못하게 어린 소녀 리리나를 만나게 된다. 집을 관리하면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모도리노는 예상치 못하게 천방지축의 당돌한 리리나를 돌보게 된다. 졸지에 보모 역할을 하며 하루 세 깨 밥을 해 먹이느라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둘을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그렇구나, 저건 양벚나무였구나!"

스마트폰 화면에 뜬, 만개한 양벚나무는 가지 가득 새하얗게 꽃이 피어나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면을 내리자 빨갛게 익은 귀여운 버찌 사진이 나타났다.

'버찌 열매는 5,6월에 익습니다. 오오오! 좋은데? 그래서 버찌관이었구나!'

그 나무의 정체 (p77)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한 소년 모도리노가 있다. 약 100페이지까지는 뭔가 일이 벌어질듯 하면서도 잔잔한 흐름이 지속되었다.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잔잔함도 잠시 세상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이동은 매우 자연스러워 책을 읽는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분명 작가도 그 부분을 노렸을 것이다.

모도리노가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동시에 혼란스런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 놀라움과 다양한 의문과 슬픔이 몰려왔다. 지금이 꿈인 것인지 현실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서 차츰 숨겨진 내막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짧지만 매우 강렬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그 과정에서 이런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며 뒤늦게 마음 한 켠에 쓰나미가 밀려왔다. 슬프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련하고 가슴 미어지는 탄식이 나왔다.

아니야,분명 나아리랑 손을 잡고 언덕을 올랐는데.

아니야, 잠깐만. 아니야, 잠깐만.

기억이 폭포처럼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와 요란하게 소용돌이쳤다. 혼란에 빠진 나를 소용돌이가 삼켜버렸다.

기억의 소용돌이 (p173)

먼저 형과의 기억을 찾는다. 내가 알던 것들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다. 아버지의 눈빛이 싫다. 또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아리다. 후반부에 나아리의 정체가 나온다. 나아리 어머니도 만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렇게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기억을 되찾고 안정을 얻는다. 그리고 슬픔이 밀려온다.

"너희는 사이가 좋았으니까.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항상 붙어 다녔고. '우리는 버찌 같아. 열매 두 개가 이어져 있는 느낌이야!'라는 나아리의 말에 다들 몸서리쳤던 거 기억해?"

"그랬었지. 버찌라고." (중략)

나아리는 나와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나아리는 어떤 일에도 긍정적이고, 기본적으로 의욕이 가득한 아이였다.

잊어서는 안 되는 (p177)

꿈과 현실, 그리도 동화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순간은 감탄이 나왔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등장 인물은 결코 이유없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소설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다. 모든 등장 인물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연결 고리를 알게 되고 난 후 모든 것이 평온해진다. 이제 그녀와의 이별을 받아 들일 때가 되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미래의 희망이 담겨 있다. 현실은 가혹하지만 꿈과 동화는 활기차고 빛난다. 현실의 슬픔을 꿈을 통해 이겨내는 형상이다. 주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허나 이별에 대한 내용이기에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이별에 대한 내용이지만 책 내용이 좋아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아 추천한다는 말을 꼭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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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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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를 읽는데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가독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매우 폭넓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결코 얕지 않은 정보를 다룬다. 온전히 이해하고 서평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이 책이 가진 가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지금껏 효율성의 시대를 살았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석탄 채굴, 노동력 착취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연 파괴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가장 효율성이 높은 방식으로 모든 것에 접근했다. 바로 효율성의 시대였다. 그런 효율성의 시대는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구의 온난화부터 재난 재해까지 지구는 점점 병들어가고 조금씩 우리는 병들어 가는 지구의 시그널을 접한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만 하는 방향 즉, 우리 시대의 염원이자 숙제가 주어졌다. 바로 회복력 시대로 나아가야만 한다. 과거 자연을 약탈하고 망친 우리는 그 심각성을 느끼고 다시금 자연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명애 의식을 통한 자연과의 새로운 연계가 필요하다.

효율성이라는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통창력을 다 갖추고도 과학 경영 원칙을 산업 생산에 적용하는 과정의 첫머리부터 명백히 드러난 모순을 보지 못했다.(중략)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는 해도 갈수록 더 적은 노동자가 필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더 적은 노동인구와 더 많은 실업자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딜레마: 효율성의 증가, 노동자의 감소, 소비자 부채의 증가 (p135)

회복력과 적응력에 대한 내용에 앞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시대를 지배한 효율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효율성이 가져온 현재의 모습을 직면해야 한다. 명백해 효율성에 의해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 인쇄 혁명으로 인해 지식이 세대를 넘어 전달되고, 석탄과 증기 기관으로 인해 시간 장벽은 점차 사라지고 이동 거리가 단축되었다. 허나 한편으로 가축의 대량화로 인해 세계 초원은 황폐해지고 메탄 가스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한다. 인간이 육류를 먹기 위해 자연이 점차 파괴되는 것이다. 석탄, 석유로 인한 자연 파괴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는 시간적,공간적 관계를 민주화해 전 세계에서 상업과 교역,시민 생활,사회생활을 위한 새로운 제휴가 번성할 수 있도록 돕고, 그에 따라 사회는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이동한다.

회복력 혁명 인프라 (p251)

세계화는 값싼 인력을 찾아 다른 나라로 공장이 이동했다.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 역시 미국에 제조업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오프쇼링에서 온쇼링으로의 전환이다. 점차 세계화에서 세방화 되는 신호들을 볼 수 있다. 인간 노동력의 전면적 방향 재설정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앞으로 노동력은 생물권 관리에 집중되며 생태계 관리 분야에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 전망한다. 기후 관련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아날로그 관료제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제로섬 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자연 자본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적 프로세스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GDP에서 QLI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글로벌 대기업에서 유동적인 글로컬 네트워크에 블록 체인으로 결합된 민첨한 첨단 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정학에서 생물권 정치로 등이 그 변화의 예다.

회복력 혁명 인프라 (p253)

기존의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에서 벗어나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의 공유를 장려하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본다. 근면과 물질적 진보만을 중시했던 과거에서 벗아나 이제는 지구의 리듬과 흐름에 맞춰 매 시간 매 공간의 회복력이 강조된다. 회복력 인프라를 통한 변화다. 지구와 재결합하는 회복력 시대의 앞에 서 있다.

지금까지 여정은 길고도 짜릿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 지구상 존재의 종말을 감지하는 바로 이 순간에 이르러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물 종으로서 보편적 친밀감을 느끼고 경험하며 지구 생명력과 하나가 되는 생명애 의식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애 의식의 출현 (p359)

물론 아직 갈길이 멀다. 기업마다 녹색 혁명이라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 친화적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있음에 부정할 수 없다. 하루 아침에 망할 수도 있는 기업이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길고 긴 싸움이다. 자연의 품에 우리는 다시 안겨야 한다. 정부는 자연 친화에 기여한 기업을 독려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에너지를 공유하고 순환하고 공유해야 할 것이다. 생물과 자연에 중심을 둔 정책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점차 조금은 더 나은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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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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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500년간 사랑받아 온 고전의 지혜

저자의 논리에 매료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우신' 즉, '어리석음의 여신'을 나 또한 예찬하고 있다. 우신은 최고의 신이며 신과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는 우신은 자신이 여자이면서 여자를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사로잡히는 것 또한 여자의 어리석음 때문이라 말한다. 여자들은 어리석기에 스스로를 화장하고 꾸민다. 남자들은 이런 여자에게서 시시콜콜한 대화와 쾌락을 원한다. 무언가 반박의 여지가 있을 듯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탄탄한 주장을 펼친다. 어리석음의 신의 논리적 주장에 우리는 쉽사리 어리석은 주장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리석은 자의 주장이란 말이 틀린말도 아니게 된다.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도입부에서는 조금 어려웠다. '우신은 누구인가'로 부터 시작하는 내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우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단계는 저자 에라스무스 혹은 박문재(옮긴이)님과의 만남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책 내용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키득거리게 된다. 1511년에 출간된 책 내용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름이 없음에 놀랍고 그 해학과 풍자의 방식에 또 놀라웠다. 진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영원히 그 가치가 빛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회나 인간관계도 우신인 나 없이는 즐거울 수 없고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잘못 알기도 하고, 아부나 애교에 넘어가기도 하고, 알고도 모르는 척 묵인하기도 하며, 어리석음의 달콤함에 누그러지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략) 수많은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21장 요약: 우신 없이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p70)

이 구절을 읽고 감탄했다. 인간관계에서 올바른 소리만 해서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우신의 가르침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아내는 남편에게 올바른 말만 해서는 가정의 분위기가 좋게 이끌어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친구들이 만나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관계는 돈독해진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숨막히는 토론 배틀은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이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고 부드럽게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구절을 통해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분별력이란 많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현자들은 염치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반면에, 어리석은 자들은 애초에 염치가 없는 데다가 위험에 구애받지 않기에 무슨 일이든지 거침없이 달려들어 해냅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 어느 쪽이 분별력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에 더 어울리겠습니까?

29장 진정한 분별력도 우신에게서 나온다 (p88)

용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긴 겁이 없어야 용기가 나온다. 위험함을 잘 모르는 아이가 넘어지면서 걷게되고 부딛히면서 피하게 되는 것처럼 세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분별력이 생겨낸다. 다 큰 어른은 조심성이 많고 생각이 많아 덤비지 못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종종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험하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분별력을 얻게 된다. 도전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정말 현명한 것일까란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현자의 안일함에 의문이 생겨나다.

성직에 있는 어떤 사기꾼이 재미 삼아, 또는 돈벌이를 위해 고안해 낸 마법의 표시를 하고 기도문을 외우기만 하면 부귀영화, 즐거운 인생, 풍족한 삶, 무병장수, 이팔청춘 같은 노년이 주어지고, 마지막에는 천국에 가서 예수님 옆에 앉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략) 남의 것을 강탈해 모은 재산 중에서 푼돈에 불과한 금액을 헌금하면, 자신들이 평생 저지른 레르나 늪 같은 죄를 단번에 씻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돈 주고 산 면죄부 한 장으로 그동안 무수히 저질러온 (중략) 범죄들에 대한 값을 다 치렀다고 믿게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새롭게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40장 가톨릭에 만연한 온갖 미신들 (p126)

가톨릭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어 1559년 금서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가톨릭에 대한 실랄한 비판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나 역시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태 신앙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까지 성당에서 활동하며 많은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러다 종교라는 곳 역시 돈에 의해 유지가 되며 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모순이 가득한 성당의 모습에 환멸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 책에서 에라스무스가 꼬집은 면죄부의 행위인 고백 성사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 받는 느낌도 든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며 착실히 살아감이 더 중요한데 주말에 성당에 나가지 않는 자체가 죄로 치부되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헌금과 교무금 없이는 성당을 유지할 수도 지을 수 없어 집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2차 헌금을 종용하는 모습은 천국을 빌미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종교의 숨겨진 민낯이 아닐까.

"진짜가 없는 곳에서는 진짜와 닮은 것이 최고다." 또한 "적절한 때에 어리석은 척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다"라는 시구도 옮게 여겨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중략) 에피쿠로스 철학자들 중에서 (중략) "적당히 어리석어야 매력적이다", "영리해서 알아차리고 화내기보다 멍청해서 모르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62장 우신을 칭송한 저술가들 (p212)

우신을 칭송하는 속담들 명언들이 세상에 참 많음을 알게된다. 세상을 숫자와 정답으로 접근하고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다. 정답을 나름 맞춰가며 비교적 바르게 살아온 나지만 때로는 어리석음을 통해 내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알았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꼬집는 내용에 공감하는 측면도 있으나 이런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철학적 접근을 해보는 과정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 본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기독교는 일종의 어리석음과 가까운 종교이며 지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중략) 그들은 신앙을 위해서라면 전 재산도 아낌없이 바치고, 부당한 대우나 모욕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속아도 참고, 친구와 원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쾌락을 혐오하고, 수많은 금식과 철야와 눈물과 고생과 천대를 감수하고, 삶을 멸시하며 죽는 날만을 기다립니다.

66장 기독교인의 행복은 광기와어리석음이다 (p234)

기독교(당시의 카톨릭)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우신예찬'에서 어쩌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66장에 담겨 있다. 그런데 어라? 세상에 어리석음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하는 대목들이 많았는데 기독교가 어리석음과 가까운 종교라고 한다면, 이건 과연 긍정인가 부정인가. 순간 혼란스럽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음을 알기에 찬양의 대상인 어리석음을 기독교와 결부시켜 혼란스럽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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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제주! - 한 걸음 더 제주 생활 문화 산책
이영재 지음 / 모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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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제주!

이 책을 읽으니 또 제주 여행을 가고 싶다

저자소개를 보고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제주에 살고 싶어 제주 발령을 자원해서 20년간 제주에서 살았단다. 제주에서의 호사를 마음껏 누리고 이제는 강릉으로 갔다고 한다. KBS 아나운서 이영재의 제주 이야기 <진심, 제주!>는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살면서 마음껏 누린 자신의 제주 이야기를 담았다. 타지 출장을 갔다 제주로 돌아오면서 느끼는 제주의 멋이 그렇게도 좋다고 한다. 그렇게도 좋을까 싶으면서도 정말 부럽다.

책을 읽으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은 사진도 함께 첨부되어 있고 그곳의 이야기와 작은 에피소드들은 글을 더욱 맛깔나게 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제주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에 나도 모르게 이런 에세이에 빠져드는 듯 하다. 책을 읽는 그 자체가 힐링이 되니 이 책을 제주 힐링 에세이라 칭하고 싶다.

수산리의 자랑인 천연기념물 제441호 수산리 곰솔의 모습이다. 4백 년 이상의 수령에 둘레가 4.7미터에 달하는 당당한 체구의 소나무다. 나무의 껍질이 검어서 '흑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략) 수면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가 곰솔의 밑동보다 2미터나 낮게 처져 있다. 참으로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p47

이미 유명한 나무일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수산리 곰솔 일명 '흑송'의 자태가 비록 사진일지라도 너무 멋있게 보였다. 애월읍 수산리 자체가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제주의 멋을 제대로 품고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멋들어지고 광활한 제주의 풍경은 항상 제주를 동경하게 한다. 저자 역시 그런 풍경을 좋아하는 듯 하다. 소개하는 곳들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하긴 제주는 어디나 풍경이 멋있을 수 밖에 없기에 오히려 피하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박공지붕에 빨간 벽돌이 눈을 상쾌하게 만드는 풀무질의 외관이 꽤 매력적이다. 생각보다 많은 책을 구비해놓은 내부에서는 근엄하진 않지만 단단한 포스를 감지할 수 있다.

p191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책에서 세화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매우 익숙했다. 올해 가족과 방문했던 제주 세화의 그 빨간 의자의 모습에 '나 여기 갔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금세 정이 깃든다. 특히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제주 풀무질이란 독립서점에 가보고 싶다. 내가 방문했던 숙소 근처에 풀무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뭔가 반갑기도 하고 미리 알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나중에 제주에 가서 풀무질에서 꼭 책 한 권을 구매하련다. 제주까지 가서 무슨 책인가 싶은데,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작은 행위가 나만의 작은 하나의 추억이 될 것만 같다. 점차 독립책방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내가 방문하는 그 날에도 풀무질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희한하게도 오름은 가을에 더 그리워진다. 좋은 사람들과 오름에 올랐을 때가 우연찮게 주로 가을이었다는 점도 작용하겠지만, 제주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보이는 오름의 능선이 다른 계절의 인상과는 분명히 달라서도 그런 듯하다.

p216

삼백육십여개에 달하는 제주의 오름은 제주만의 특징이자 자연의 선물이다. 제주에 방문할 때면 최소한 하나의 오름에는 방문하자라는 생각이 있다. 처음 오름에 올랐을 때의 황홀함 때문이다. 매우 작은 오름이라 생각했으나 오름에 오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 나온다. 다음에 제주에 방문한다면 물론 하나의 오름을 선택에 오를 것이다. 또한 저자가 소개한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도 방문하고 싶다. 오름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은 갤러리에서 사진에 담긴 오름의 멋을 느껴보고 싶다. 이미 유명한 곳이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니. 제주에 아직도 방문하지 못한 유명한 곳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저 놀랍다. 또 가고 싶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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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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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원판이 영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영어에서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뭔가 어색한 표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을수록 어떻게 이 책의 원판이 영어일 수가 있지?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옮긴이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걸까? 아니면 원본이 한국적 표현을 잘 담고 있었던 것일까? 매우 한국적인 표현들에 마치 한국 작가의 글처럼 이질감이 전혀 없었고 김주혜 작가와 박소현 옮긴이까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김주혜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홉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살았다. 물론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깃든 가족들과 생활을 했고,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가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지만 미국의 문화 안에서 살았기에 이 책에 담긴 매우 깊은 한국적 정서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론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적 시대 정신이 내 안에 자리 잡았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기에 그저 김주혜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 생각해본다.

공을 많이 들여 책을 발간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려 6년이라는 집필 기간에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데뷔 소설이란 사실도 놀랍다. 첫 작품임에도 10여 개가 넘는 나라에 판권을 팔고, 전미 40여개 매체 추천 도서로 소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각 종 매거진에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소개되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와라 (중략) 내 이름은 야마다 겐조다." 남경수는 야마다 쪽을 빤히 바라봤다. (중략) 야마다는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은제 담뱃갑을 꺼내 남경수의 손에 쥐어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옆면을 쓸어 보였다.

p48

담담하지만 묵직하다. 각자의 삶에서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이었고 인생이었다. 일제강점기 그 시대가 주는 우리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슬며시 건드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이런 힘든 시절을 겪어낸 이들, 그저 살아가는 자체가 생존이고 치열한 전투임을 소설을 통해 경험한다.

1917년 평안도부터 1965년 제주도까지 한 시대와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소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과 그 시간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질긴 인연이다. 세대를 아우르며 이어지는 인연은 오묘하고 신비롭다. 대하 드라마의 화면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p250

많은 등장인물이 가끔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정리하고 보면 더욱 더 재미있고 풍성하다.

1) 은실 (기생), 예단(=단이, 은실의 사촌, 기생), 남경수 (사냥꾼), 백씨

2) 월향 (은실 큰 딸), 연화(은실 작은 딸), 옥희 (은실의 기방에 10살에 팔려옴), 남정호 (남경우 아들), 한철 (인력거꾼)

3) 성수 (출판사 사장, 부잣집 아들, 일본 유학), 명보 (독립군 도움, 성수와 함께 일본 유학)

4) 야마다(일본 장교), 이토(일본인)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p512

<작은 땅의 야수들>은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의 새로운 주역이라고 소개한다. <파친코>처럼 드라마 시리즈 혹은 영화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아직 <파친코>를 접하지 못해 반대로 <파친코>에 관심이 생겨난다. K-컨텐츠가 나라의 경계 없이 세계에서 회자되는 현실이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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