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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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500년간 사랑받아 온 고전의 지혜

저자의 논리에 매료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우신' 즉, '어리석음의 여신'을 나 또한 예찬하고 있다. 우신은 최고의 신이며 신과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는 우신은 자신이 여자이면서 여자를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사로잡히는 것 또한 여자의 어리석음 때문이라 말한다. 여자들은 어리석기에 스스로를 화장하고 꾸민다. 남자들은 이런 여자에게서 시시콜콜한 대화와 쾌락을 원한다. 무언가 반박의 여지가 있을 듯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탄탄한 주장을 펼친다. 어리석음의 신의 논리적 주장에 우리는 쉽사리 어리석은 주장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리석은 자의 주장이란 말이 틀린말도 아니게 된다.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도입부에서는 조금 어려웠다. '우신은 누구인가'로 부터 시작하는 내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우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단계는 저자 에라스무스 혹은 박문재(옮긴이)님과의 만남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책 내용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키득거리게 된다. 1511년에 출간된 책 내용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름이 없음에 놀랍고 그 해학과 풍자의 방식에 또 놀라웠다. 진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영원히 그 가치가 빛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회나 인간관계도 우신인 나 없이는 즐거울 수 없고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잘못 알기도 하고, 아부나 애교에 넘어가기도 하고, 알고도 모르는 척 묵인하기도 하며, 어리석음의 달콤함에 누그러지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략) 수많은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21장 요약: 우신 없이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p70)

이 구절을 읽고 감탄했다. 인간관계에서 올바른 소리만 해서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우신의 가르침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아내는 남편에게 올바른 말만 해서는 가정의 분위기가 좋게 이끌어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친구들이 만나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관계는 돈독해진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숨막히는 토론 배틀은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이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고 부드럽게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구절을 통해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분별력이란 많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현자들은 염치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반면에, 어리석은 자들은 애초에 염치가 없는 데다가 위험에 구애받지 않기에 무슨 일이든지 거침없이 달려들어 해냅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 어느 쪽이 분별력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에 더 어울리겠습니까?

29장 진정한 분별력도 우신에게서 나온다 (p88)

용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긴 겁이 없어야 용기가 나온다. 위험함을 잘 모르는 아이가 넘어지면서 걷게되고 부딛히면서 피하게 되는 것처럼 세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분별력이 생겨낸다. 다 큰 어른은 조심성이 많고 생각이 많아 덤비지 못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종종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험하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분별력을 얻게 된다. 도전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정말 현명한 것일까란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현자의 안일함에 의문이 생겨나다.

성직에 있는 어떤 사기꾼이 재미 삼아, 또는 돈벌이를 위해 고안해 낸 마법의 표시를 하고 기도문을 외우기만 하면 부귀영화, 즐거운 인생, 풍족한 삶, 무병장수, 이팔청춘 같은 노년이 주어지고, 마지막에는 천국에 가서 예수님 옆에 앉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략) 남의 것을 강탈해 모은 재산 중에서 푼돈에 불과한 금액을 헌금하면, 자신들이 평생 저지른 레르나 늪 같은 죄를 단번에 씻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돈 주고 산 면죄부 한 장으로 그동안 무수히 저질러온 (중략) 범죄들에 대한 값을 다 치렀다고 믿게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새롭게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40장 가톨릭에 만연한 온갖 미신들 (p126)

가톨릭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어 1559년 금서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가톨릭에 대한 실랄한 비판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나 역시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태 신앙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까지 성당에서 활동하며 많은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러다 종교라는 곳 역시 돈에 의해 유지가 되며 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모순이 가득한 성당의 모습에 환멸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 책에서 에라스무스가 꼬집은 면죄부의 행위인 고백 성사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 받는 느낌도 든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며 착실히 살아감이 더 중요한데 주말에 성당에 나가지 않는 자체가 죄로 치부되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헌금과 교무금 없이는 성당을 유지할 수도 지을 수 없어 집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2차 헌금을 종용하는 모습은 천국을 빌미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종교의 숨겨진 민낯이 아닐까.

"진짜가 없는 곳에서는 진짜와 닮은 것이 최고다." 또한 "적절한 때에 어리석은 척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다"라는 시구도 옮게 여겨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중략) 에피쿠로스 철학자들 중에서 (중략) "적당히 어리석어야 매력적이다", "영리해서 알아차리고 화내기보다 멍청해서 모르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62장 우신을 칭송한 저술가들 (p212)

우신을 칭송하는 속담들 명언들이 세상에 참 많음을 알게된다. 세상을 숫자와 정답으로 접근하고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다. 정답을 나름 맞춰가며 비교적 바르게 살아온 나지만 때로는 어리석음을 통해 내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알았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꼬집는 내용에 공감하는 측면도 있으나 이런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철학적 접근을 해보는 과정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 본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기독교는 일종의 어리석음과 가까운 종교이며 지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중략) 그들은 신앙을 위해서라면 전 재산도 아낌없이 바치고, 부당한 대우나 모욕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속아도 참고, 친구와 원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쾌락을 혐오하고, 수많은 금식과 철야와 눈물과 고생과 천대를 감수하고, 삶을 멸시하며 죽는 날만을 기다립니다.

66장 기독교인의 행복은 광기와어리석음이다 (p234)

기독교(당시의 카톨릭)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우신예찬'에서 어쩌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66장에 담겨 있다. 그런데 어라? 세상에 어리석음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하는 대목들이 많았는데 기독교가 어리석음과 가까운 종교라고 한다면, 이건 과연 긍정인가 부정인가. 순간 혼란스럽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음을 알기에 찬양의 대상인 어리석음을 기독교와 결부시켜 혼란스럽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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