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원판이 영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영어에서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뭔가 어색한 표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을수록 어떻게 이 책의 원판이 영어일 수가 있지?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옮긴이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걸까? 아니면 원본이 한국적 표현을 잘 담고 있었던 것일까? 매우 한국적인 표현들에 마치 한국 작가의 글처럼 이질감이 전혀 없었고 김주혜 작가와 박소현 옮긴이까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김주혜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홉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살았다. 물론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깃든 가족들과 생활을 했고,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가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지만 미국의 문화 안에서 살았기에 이 책에 담긴 매우 깊은 한국적 정서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론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적 시대 정신이 내 안에 자리 잡았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기에 그저 김주혜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 생각해본다.
공을 많이 들여 책을 발간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려 6년이라는 집필 기간에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데뷔 소설이란 사실도 놀랍다. 첫 작품임에도 10여 개가 넘는 나라에 판권을 팔고, 전미 40여개 매체 추천 도서로 소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각 종 매거진에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소개되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와라 (중략) 내 이름은 야마다 겐조다." 남경수는 야마다 쪽을 빤히 바라봤다. (중략) 야마다는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은제 담뱃갑을 꺼내 남경수의 손에 쥐어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옆면을 쓸어 보였다.p48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와라 (중략) 내 이름은 야마다 겐조다." 남경수는 야마다 쪽을 빤히 바라봤다. (중략) 야마다는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은제 담뱃갑을 꺼내 남경수의 손에 쥐어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옆면을 쓸어 보였다.
p48
담담하지만 묵직하다. 각자의 삶에서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이었고 인생이었다. 일제강점기 그 시대가 주는 우리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슬며시 건드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이런 힘든 시절을 겪어낸 이들, 그저 살아가는 자체가 생존이고 치열한 전투임을 소설을 통해 경험한다.
1917년 평안도부터 1965년 제주도까지 한 시대와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소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과 그 시간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질긴 인연이다. 세대를 아우르며 이어지는 인연은 오묘하고 신비롭다. 대하 드라마의 화면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p250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p250
많은 등장인물이 가끔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정리하고 보면 더욱 더 재미있고 풍성하다.
1) 은실 (기생), 예단(=단이, 은실의 사촌, 기생), 남경수 (사냥꾼), 백씨
2) 월향 (은실 큰 딸), 연화(은실 작은 딸), 옥희 (은실의 기방에 10살에 팔려옴), 남정호 (남경우 아들), 한철 (인력거꾼)
3) 성수 (출판사 사장, 부잣집 아들, 일본 유학), 명보 (독립군 도움, 성수와 함께 일본 유학)
4) 야마다(일본 장교), 이토(일본인)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p512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p512
<작은 땅의 야수들>은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의 새로운 주역이라고 소개한다. <파친코>처럼 드라마 시리즈 혹은 영화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아직 <파친코>를 접하지 못해 반대로 <파친코>에 관심이 생겨난다. K-컨텐츠가 나라의 경계 없이 세계에서 회자되는 현실이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