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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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부러진 나사의 정체




'한자와 나오키'를 통해 처음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만났다. 그의 소설은 가독성이 좋으며 재미있다. '일곱 개의 회의'를 선택한 이유는 '한자와 나오키'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이다. 이번 소설 역시 '이케이도 준' 스타일이 한껏 묻어나는 회사원의 야이기를 담은 소설이다. 회사원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나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회사원들의 고뇌와 고민, 생각과 생활이 담겨 있다.



공감되는 회사원의 일상이 이야기에서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곳곳에 복선이 담겨 있고 묘한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끌고 간다. 옳고 바르게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의 이야기는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회사원들에게 힘을 북돋는다. 이 소설을 읽고 알수 없는 묘한 위안을 받는다. 회사원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희망의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런 건 속임수예요." 하라시마의 가슴속 깊은 곳에 던져진 작은 돌 같은 말이었다.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p41

소닉의 자회사 '도쿄겐덴'은 다양한 물건을 제조와 판매하는 중견기업이다. 영업 2팀 과장 하라시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옴니버스 형태로 각 장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형태다. 하라시마 과장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1장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며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의 서막을 알린다.

핫카쿠가 단언했다. "기대하면 배신당하지. 대신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하는 일도 없어. 나는 그걸 깨달은 거야. 그랬더니 희한한 일이 일어나더군. 그때까지는 그저 힘들고 괴롭기만 했던 회사가 아주 편안한 곳으로 보이더라고. 출세하려 하고 회사나 상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니까 괴로운 거지. 월급쟁이의 삶은 한 가지가 아니야.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게 좋지."

p47

핫카쿠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한 때 잘나가던 영업부의 인재가 현재 만년 계장의 모습이 되었는지는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월급쟁이의 삶에서 정답이란 과연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서 승진해서 인정받는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적당히 업무를 소화하고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은 잘못하는 것인가. 나 역시 가졌던 의문이고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기에 핫카쿠의 말에 깊은 생각에 빠진다. 흘러가듯 툭툭 던지는 멘트들에 감성이 짜릿해지는 것은 '이케이도 준'의 진면목이다.

왜 핫카쿠가 사카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했는지, 왜 기타가와가 사카도를 경질하려 했는지, 왜 임원회의가 그것을 승인했는지. 이제 전부 이해되었다. "꽃 같은 1과, 지옥 같은 2과라..."

입 밖으로 내어보니 이 말에는 아무래도 허무한 울림이 있었다.

p49

영업 1팀 과장 사카도 노부히코와 1팀의 만년 계장 핫카구(야스미 다미오)의 사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다. 매사 불성실한 핫카구를 나무라던 사카도를 지목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사카도는 인사 발령 대기 상태가 된다. 단순하게 처리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사카도가 대기 발령 상태가 된 사실은 뭔가 이상하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서서히 밝혀진다.

도쿄겐덴의 사내 규정에 따라 'R'로 시작하는 제조번호가 '의자'라는 것은 알겠지만 정확히 무슨 의자인지는 알 수 없다. 사노가 눈으로 물었다. 나구라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열차 의자입니다."

옆에서 고니시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노를 향한 시선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p311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되면서 각 등장인물의 배경을 이해하고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모두가 각자 살아가는 배경이 다르고 현재의 모습을 있게 하는 과거가 존재한다. 옳고 그름은 없지만 불행한 과거는 현재의 잘못된 선택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각자의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지만 잘못된 선택을 용납할 만큼은 아니다.


"일이란 말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즐겁거든. 그렇게 하면 돈은 나중에 따라와. 손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장사는 망해."

아버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던 만큼 이 말은 무라니시의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p365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손님을 상대하면서 장사하는 분들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주변인들을 보면서 그리고 소설 속 장사에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장사란 참 어렵고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반면 회사에서 나와 도넛 장사를 하는 하마모토 유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인지에 대해서고 고민하게 된다.


*****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주변 사람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재미있는 소설이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는 말을 덧붙인다. 소설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만난다. 그 중 나와 닮은 이도 있고 나의 아내를 닮은 사람도 나온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상의 소재를 잘 버물여 소설에 녹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그만의 전개 방식은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다. 한 개의 장을 읽고 난 뒤 어서 다음 장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회사 생활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케이도 준'의 소설 '일곱 개의 회의'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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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심리학 - 돈, 관계, 인생을 컨트롤하는 힘
바리 테슬러 지음, 이영래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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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의 심리학

나와 돈과의 관계를 마주하다




돈과 심리학의 만남,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은 매우 깊숙하게 우리의 삶과 연관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오히려 꺼려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돈이 아주 중요하면서도 회피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은 가난한 사람들만 고민의 대상인가? 부유한 사람은 돈 걱정이 없을까? 우리는 돈에 휘둘리지 않고 굳건한 중심을 지키고 있는가?



누구나 돈 문제가 있고 돈에 의해 상처와 수치심을 받는다. 재무 치료의 선구자이자 재무 코치, 재무 테라피스트, 머니 스쿨 '돈의 기술'의 설립자 '바리 테슬러'는 재무 상담과 심리 치료를 접목해 돈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보디 체크인은 처음 무언가를 익히느라 어려움을 겪을 때, 깊은 내적 탐구가 필요할 때 힘이 된다. (중략) 이 방법은 바로 지금 돈과 함께하는 여정을 처음 시작하는 당신에게 힘을 실어 줄 완벽한 기본기다.

p67

돈을 마주하고 불안할 때 저자는 우리에게 '보디 체크인'을 추천한다. 일단 멈추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나의 감정을 관찰한다. 마음 챙김, 심호흡, 명상이라는 단어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 '보디 체크'인을 기억하자. 돈에 대한 자극, 스트레스 상황, 돈에 대한 수치심과의 조우, 머니 스토리를 되짚을 때 등 보디 체크인을 통해 신경을 누르고 맑은 정신을 채우는 일종의 작은 의식을 수행하자.

우리가 돈과 관계를 맺는 과정은 어린이의 성장 과정과 아주 비슷하다. 우리 모두가 돈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모든 사람의 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거치는 공통적인 주제와 단계가 있는 것이다.

p103

우리가 애써 부정하고 모른 척하며 살아왔던 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삶을 컨트롤하고 또는 지배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돈에 대한 생각은 현재 돈을 흥청망청 쓰거나 지나치게 절약하는 등 현재의 나의 모습에 반영된다.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부터 켜켜히 쌓인 내면의 치부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나는 과연 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좋은 친구 관계인가 적대 관계인가. 돈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는 치유가 필요할 수 있다.

돈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비교적 크게 키운 첫 번째 방법은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돈을 많이 벌지는 않았지만 정확히 얼마를 갖고 있는지 명확히 알려고 있다. (중략) 명확히 하는 것이야말로 명민하고 차분하며 현실적이다. (중략) 돈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이것과 정확히 반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중략) 나는 그에게 처음에는 확인 횟수를 하루에 한 번으로, 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라고 제안했다.

p168

돈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 한 가지 방식만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돈과의 관계가 모두 다르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존재한다. 이 내용을 접하고 내 스스로를 돌아본다. 현재 나는 나름 계획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있으나 대출 이자와 많은 지출들로 인해 약간은 무방비 상태다. 그간 스스로 옥죄며 돈 관리를 했던 내 자신을 돈에서 약간은 해방되어 있는 상태랄까. 적당하게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나 약간 놓아 둔 상태랄까. 내 자신을 알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돈과의 관계가 애먼한 상태다.

돈 지도는 수입과 지출을 추적하고 그 결과를 당신의 삶과 목표에 부합하기 위한 도구다. 이는 당신의 내면으로부터 결정된다. 당신만의 창조물이며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반영한다.

p335

인생에서 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돈은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해외 여행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금 마련이 필요하다거나, 전원 생활을 위한 전원 주택 마련 등 돈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돈 지도를 한 번 그려보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친다. 돈 지도는 단순한 예산 계획보다 유연하고 유의미한 활동이다. 나의 삶의 방향을 정해보고 생각해보는 이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돈 지도를 적을 때 기본적 욕구 수준, 안락한 삶의 수준, 삶의 최고 수준으로 단계를 나눠 적는다.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고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으며 모두 자신에게 맞는 수준을 정해 적으면 된다. 이로 인해 나의 목표가 정해지고 우선 순위를 선정하게 된다. 나의 현재 수준을 진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건설적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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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만 괜찮습니다 - 섬에서 보내는 시 편지
시린 지음 / 대숲바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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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괜찮지만 괜찮습니다

제주의 감성을 만나다





스스로 '도시촌년'이라 칭하며 제주의 자연에 흠뻑 빠진 그녀의 글에는 제주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바다, 꽃, 말, 돌, 바람, 풀, 숲, 태풍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이 유독 더 진하게 빛나는 제주다. 자연을 한껏 바라보며 누리는 제주의 시간이 그저 부럽다.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녀의 글에서 위안을 받는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저자 '시린'은 언제나 여행 중이고 싶어 제주에 머물고 있다. 그녀의 뷰파인더와 글을 통해 접하는 제주 이야기는 나에게 제주의 청명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글과 사진에 담긴 제주는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제주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바라보게 한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주로 떠나고 싶어진다.




*****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한라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기 위해.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무덤과 작은 풀씨 하나, 모래알 하나까지 아껴품고 있는 저 산이 말한다.

괜찮다. 여기 있어도 된다고. (중략)

괜찮다. 슬프면 목놓아 울어도 되고 다시 웃어도 된다.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p28)

제주를 여러 번 갔지만 아직 한라산에 가지 못했다. 제주 섬 전체가 한라산이라 봐도 무방하다 할 정도로 제주를 품고 있는 한라산의 위용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한라산은 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죽은 존재들까지 안고 있는 땅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제주의 어디서든 맑은 날에는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그 언젠가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하루쯤은 내키는 대로 가다가 아무 데서나 멈춰 느릿느릿 걸어보자. 맘에 드는 곳을 찾으면 앉는다.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소리를 듣거나. 우리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의 시작, 소나기 (p121)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목적없이 자연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여행. 시간에 쫓기듯 하는 여행이 아닌 유유자적하는 여행. 자연을 벗삼아 노니는 여행. 회사 생활을 하다 얻는 휴가는 뭔가 빡빡한 일정 안에서 여행을 하게 된다.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하다 보면 여행은 끝이 난다. 맛집도 가야하고 구경도 하느라 여행은 휴가라기 보다 일에 가깝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행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다음에는 느릿느릿 즐기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숲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멈춰서 버린다. 말을 잃게 하는 풍경. 원시림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사람을 압도한다. 곧고 높은 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숲은 어두울 지경이다. 초록이 깊다 못해 온통 갈맷빛이다. 드물게 파고드는 햇살은 아주 잠깐 연둣빛을 반짝 뿌리고 이파리에 닿자마자 스며든다. 이파리를 쓸며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는 바람에도 새소리에도 초록이 묻어 있다.

숨어 있기 좋은 숲 (p164)

저자가 좋아하는 색은 초록이다. 나 역시도 초록을 좋아한다. 숲을 좋아하는 저자의 모습에 공감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라생태숲에 가보고 싶다. 세상과 담을 쌓은 듯 나무로 둘러 싸인 숲 속에서 지나친 초록을 즐기고 싶다. 좋아하는 초록을 마음껏 보고 싶다. 말을 잃게 하는 풍경을 만나고 싶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사무실 한 켠의 작은 화문에 위안을 삼는다.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 어떤 이에게는 비 오는 날 커피숍. 어떤 이에겐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 누군가에겐 밤을 새워 밤하늘의 별과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겨울바다.

낭만 하면 겨울 바다(p269)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의 2월은 겨울 바다를 즐기기에 딱 좋다. 봄의 문턱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이 시기에 제주의 바다는 어떠할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겨울에 제주로 떠나기가 쉽지는 않다. 따뜻한 나라로 떠나거나 실내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나중에 그 언젠가 제주의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에 빠져보고 싶다.

*****

사진과 글을 통해 만나는 제주의 모습은 나의 기대를 뛰어 넘는다. 그저 좋다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좋음을 저자 '시린'은 자신만의 언어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표현들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제주를 느낀다. 글은 한계를 가지지만 그 한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섬 제주의 아름다움과 멋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제주에 몇 번 여행 다녀온 나에게 제주는 돈이 많이 드는 여행지로 변모했다. 남들 다 가는 휴가철에만 가야하기에 자금 압박이 있는 여행지다. 남들 열심히 일할 때 훌쩍 제주로 여행을 가고 싶다. 한달 살기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한가로이 제주를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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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시집
나태주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슬로우어스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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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 시집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시를 공부하던 나는 의문이 있었다. 시는 읽을 때마다 나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답이 있는 국어의 시는 나에게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시험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지금도 시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시를 읽을 때마다 학창 시절의 시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파블로의 개가 된 기분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는 시를 만났다. 아무런 걱정없이 그저 내가 중요하다고 다독이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만났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의 시는 나를 웃음짓게 한다. 공감되는 시의 내용들은 마음에 담고 싶었다. 지금까지 필사는 해본 적이 없다. 필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필사 시집을 읽으니 필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나에게 어서 적어달라며 빈 공백을 들이미는 이 시집은 마치 또 하나의 힐링 도구같다. 컬러링 북에 이은 또 하나의 신드롬 '필사 시집'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응원해본다.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할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다

뾰로통한 네 얼굴, 무덤덤한 표정

때로는 매정한 말씨

그래도 좋다.

그래도 (p22)

유독 이 시 '그래도'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나의 생각과 같아서다. 아내를 보고 언젠가 내가 가졌던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은데 글솜씨가 없기에 이 시처럼 적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시인이고 그 감정을 시로 옮겼다면 이렇게 옮겼을 것만 같다. 그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나 대신 나태주 시인이 시로 표현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 사진을 아내에게 보냈다. 여전히 매정하지만 내 마음은 눈치챈 듯 하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 3 (p102)

풀꽃 시인답게 '풀꽃 3' 시가 나의 뇌리에 박힌다. 이 짧막한 시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나 싶다. 고작 세 줄 밖에 안되는 시이거늘, 고작 15글자 밖에 되지 않는 시이거늘, 어찌 이토록 나에게 용기를 북돋는지. 기죽지 말고 살아보라는 이 흔한 말이 꽃을 피워보는 말과 만나고 '참 좋아'라는 말로 끝 맺으며 탄탄한 완성미를 뽐낸다. 초원의 풀꽃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 놀라운 능력의 시는 찬사 받아 마땅하다.





'풀꽃 3'을 노트에 한 번 적어봤다. 책에 적고 싶었으나 책에 펜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본성이 반대하여 노트에 필사해 봤다. 나의 첫 필사다. 내 글씨로 바라보는 시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직접 내가 글로 적어 그런 것인지 시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자기애가 발현되나 보다. 시로 한 번의 힐링, 그리고 필사로 또 한 번의 힐링이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부탁 (p54)

책에서 나태주 시인의 필사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부탁' 시가 참 멋지다. 멀리 가지 말라는 부탁을 좀 들어주었으면 한다. 사랑을 걱정하는 마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사랑을 위한 것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나를 위한 걱정으로 읽혀진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 읽는 이 시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오늘의 꽃 (p150)

나태주 시인의 시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한글의 맛을 한 껏 살린 시는 읽어도 읽어도 지루함이 없고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예쁜 꽃이 떠오르고 웃는 예쁜 꽃이 떠오른다. 그리고 웃는 네가 웃지 않는 네가 눈을 감은 네가 떠오른다. 시를 읽고 내 마음의 이미지가 폴라로이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와 나의 기억이 조화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시는 참 신기하다. 이 짧은 글이 나를 들었나 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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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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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엄마'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들의 마음





이목을 끄는 제목이지만 선뜻 손길이 다가서지 않는다.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유골을 먹는다'는 표현은 그 속뜻을 알기 전까지 그저 살짝 미뤄두고 싶은 책이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골'이라는 충격적 단어에 빠져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 앞 부분인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다. 책 제목을 심플하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커녕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그저 흔한 책이겠거니 하며 역사 속에 묻힐 것이 분명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심정과 엄마와 함께한 에피소드들을 담은 '만화 에세이'다. 이 내용을 기반으로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저자와 어머니의 일화들은 한국의 정서와 매우 닮아 이질감이 없다. 엄마와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읽어나갈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엄마가 만들어준 카레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우리 엄마가 만든 닭볶음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유골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의 가장 강렬한 감정이었다고 느꼈고, 제목으로는 이 이상의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토록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도 누군가를 향해 품는 것이 가능했구나'라는, 그런 용기도 생겨나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p175)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은 저자의 충동은 엄마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만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상식적인 방식으로나마 상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방식일지라도 영영 떠나버리는 엄마를 어떤 방식으로든 보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깊이 공감된다. 엄마의 유골이 내 몸에 들어온다면 평생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랄까. 그 누가 엄마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큰 공감을 이끌어 낸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진첩을 정리하는 엄마에게 버럭 분노를 표출하는 아들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병실에서 힘들게 잠들며 힘들어 하는 엄마의 옆에서 아들은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고 있다. 그 순간 아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를 골며 잠이 든 엄마 옆에서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 앞에 무기력한 모습이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곳곳에 남은 엄마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p40

엄마가 떠난 후에도 세상에 남은 엄마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엄마의 물건에 적힌 엄마의 글자, 엄마와 함께 가던 마트, 엄마가 좋아하던 딸기... 그 흔적들은 매우 강렬해서 지울 수가 없다. 엄마가 남긴 흔적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 언제쯤 무뎌지고 적응이 될까 싶다. 저자의 상황에 내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눈 앞이 캄캄하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이러한데 다들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내고 있을까. 세상의 어떤 상실감이 이보다 힘들까.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엄마의 죽음이 다음 날 커다란 상실감으로 바뀌고

그 순간부터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p100

저자에게는 그래도 엄마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가 가능했다. 암이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엄마도 아들도 가족들도 엄마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 상실감은 이 상황을 겪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울만큼 커다란 것이다. 감히 상상되지 않는 크기다.







어쩐지 저 멀리 시골에서 엄마가 아직 건강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p142

저자의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건강하신 엄마의 모습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떻게서든 올 엄마의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준비가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애써 외면하고 멀리하고 싶은 죽음이다. 실감나지 않을 것 같다. 엄마는 평생 건강하게 나와 함께 하실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최대한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다. 방심하는 순간 눈물샘이 터질 수 있으니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지금은 그저 건강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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