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시집
나태주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슬로우어스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 시집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시를 공부하던 나는 의문이 있었다. 시는 읽을 때마다 나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답이 있는 국어의 시는 나에게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시험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지금도 시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시를 읽을 때마다 학창 시절의 시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파블로의 개가 된 기분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는 시를 만났다. 아무런 걱정없이 그저 내가 중요하다고 다독이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만났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의 시는 나를 웃음짓게 한다. 공감되는 시의 내용들은 마음에 담고 싶었다. 지금까지 필사는 해본 적이 없다. 필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필사 시집을 읽으니 필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나에게 어서 적어달라며 빈 공백을 들이미는 이 시집은 마치 또 하나의 힐링 도구같다. 컬러링 북에 이은 또 하나의 신드롬 '필사 시집'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응원해본다.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할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다

뾰로통한 네 얼굴, 무덤덤한 표정

때로는 매정한 말씨

그래도 좋다.

그래도 (p22)

유독 이 시 '그래도'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나의 생각과 같아서다. 아내를 보고 언젠가 내가 가졌던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은데 글솜씨가 없기에 이 시처럼 적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시인이고 그 감정을 시로 옮겼다면 이렇게 옮겼을 것만 같다. 그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나 대신 나태주 시인이 시로 표현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 사진을 아내에게 보냈다. 여전히 매정하지만 내 마음은 눈치챈 듯 하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 3 (p102)

풀꽃 시인답게 '풀꽃 3' 시가 나의 뇌리에 박힌다. 이 짧막한 시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나 싶다. 고작 세 줄 밖에 안되는 시이거늘, 고작 15글자 밖에 되지 않는 시이거늘, 어찌 이토록 나에게 용기를 북돋는지. 기죽지 말고 살아보라는 이 흔한 말이 꽃을 피워보는 말과 만나고 '참 좋아'라는 말로 끝 맺으며 탄탄한 완성미를 뽐낸다. 초원의 풀꽃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 놀라운 능력의 시는 찬사 받아 마땅하다.





'풀꽃 3'을 노트에 한 번 적어봤다. 책에 적고 싶었으나 책에 펜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본성이 반대하여 노트에 필사해 봤다. 나의 첫 필사다. 내 글씨로 바라보는 시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직접 내가 글로 적어 그런 것인지 시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자기애가 발현되나 보다. 시로 한 번의 힐링, 그리고 필사로 또 한 번의 힐링이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부탁 (p54)

책에서 나태주 시인의 필사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부탁' 시가 참 멋지다. 멀리 가지 말라는 부탁을 좀 들어주었으면 한다. 사랑을 걱정하는 마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사랑을 위한 것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나를 위한 걱정으로 읽혀진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 읽는 이 시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오늘의 꽃 (p150)

나태주 시인의 시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한글의 맛을 한 껏 살린 시는 읽어도 읽어도 지루함이 없고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예쁜 꽃이 떠오르고 웃는 예쁜 꽃이 떠오른다. 그리고 웃는 네가 웃지 않는 네가 눈을 감은 네가 떠오른다. 시를 읽고 내 마음의 이미지가 폴라로이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와 나의 기억이 조화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시는 참 신기하다. 이 짧은 글이 나를 들었나 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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